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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를린필' 16년 이끈 사이먼 래틀, 리더십의 비밀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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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를린필하모닉을 16년 이끌고 내년 런던으로 떠나는 지휘자 사이먼 래틀. [사진 베를린필하모닉]

베를린필하모닉을 16년 이끌고 내년 런던으로 떠나는 지휘자 사이먼 래틀. [사진 베를린필하모닉]

 베를린 필하모닉 오케스트라(베를린필)를 2002년부터 이끌고 있는 지휘자 사이먼 래틀(62). 26일(현지시간) 오스트리아 잘츠부르크의 축제 공연장 대기실로 래틀은 쾌활하게 걸어들어왔다. 리버풀 태생으로 버밍햄 시립 오케스트라를 18년 이끌었고 그 후 세계 정상의 오케스트라인 베를린필로 직행했던 영국 지휘자다운 활발함이 보였다. 그는 내년 초 베를린필을 떠난다. 16년 만에 계약을 연장하지 않았다. 대신 다음 달 런던 심포니 오케스트라의 음악 감독 역할을 시작한다.
16년 동안의 베를린필 예술감독은 어떤 종류의 경험일까. 어떤 리더십이 135년 역사의 오케스트라, 그것도 헤르베르트 폰 카라얀과 클라우디오 아바도 같은 지휘자가 거쳐 간 악단을 이끌 수 있었을까. 잘츠부르크에서 만난 래틀에게 물었다.

내년 베를린필 떠나는 지휘자 사이먼 래틀 인터뷰 #"영국인 지휘자가 보수적 독일 악단 맡기 쉽지 않아. 하지만 공통의 언어 생겨" #"나는 베를린필의 이민자, 최대한 들으려 했다" #다음달 런던 심포니 음악감독 취임,11월엔 마지막 내한공연도 #"한국 청중은 누구보다 감정적으로 듣는다"

꼭 30년 전인 1987년에 베를린필을 처음으로 객원 지휘했다. 기억할 수 있나.

“정확히 기억한다. 32세 지휘자가 이런 오케스트라를 지휘하면 당연히 두려움과 공포를 가진다. 게다가 그때는 아티스트 매니저라는 것도 없었다. 나는 부모님과 함께 택시를 잡아타고 말러 교향곡 6번을 연주하기 위한 모든 재료를 들고 있었다. 이틀 전 런던에서 연주한 곡이었다. 무거운 연주복 케이스와 악보를 세 명이 나눠 들고 연주자 출입구를 찾기 시작했는데 문을 찾을 수가 없었다. 리허설 5분 전에야 도착했는데 시작 후 15분 동안 ‘굿모닝’ 같은 인사를 할 생각도 하지 못했다.”

처음 지휘대에서 들은 오케스트라 소리는 어땠나.

“리허설 15분쯤 지나고부터 갑자기 이게 엄청난 즐거움이라는 걸 깨닫게 됐다. 내 지휘에 따라 빠르게 반응하는 연주자를 보는 것만으로도 즐거웠다. 다른 오케스트라에서 못 본 새로운 소리를 발견했다. 약간의 ‘카라얀 사운드’가 남아있는 것 같았다. 크고 깊은 소리였고 최저음의 베이스부터 가장 높은 목관악기까지 모든 섹션이 들렸다.”

실제로 베를린필을 맡고 난 후 그 소리와 음악의 비밀을 발견했나.

“세대와 세대로 이어진 전통인 것 같다. 단원들이 음악을 만들어는 핵심에 잘 맞닿아있다.”

영국 지휘자가 독일의 명문 악단을 맡았다. 문화 차이는 없었나.

“물론! 언제나 있다. 음악은 경계가 없는 언어이지만 영어와 독일어는 안 그렇다. 예를 들어 영국식 유머가 문제였다. 우리 영국인들은 문제가 있을 때 벽에 부딪혀서 돌파해보려다가 쓰러지지 않는다. 대신 유머를 사용해서 돌아간다. 그런데 내가 오케스트라 앞에서 유머를 섞어 말하면 독일 단원들은 ‘아, 이제 쉬는 시간이구나’하고 생각했다. 그들에게 유머는 쉬고 놀 때만 하는 것이니까. 내 유머에 억지로 적응한 단원들이 몇년 후엔 내가 유머를 섞으면 ‘아, 정말 심각한 문제가 있구나’하고 생각하게 됐다고 한다. 이거 정말 어려운 문제 아닌가?”

이제 극복된 문제인가?

“아니다. 무엇보다 내 서툰 독일어 때문에 아직도 못 알아듣는 단원이 많을 거다. 한번은 내가 리허설 중 어떤 말을 했더니 오래된 단원이 새로 온 단원에게 통역을 하고 있었다. ‘사이먼이 말한 건 이런 뜻인 것 같아’라고 하면서. 이제는 단원들이 ‘독일어에서 늘 하는 실수를 고치지 말아달라. 우리는 이제야 적응이 됐다’고 농담을 할 정도다. 단원들과의 소통은 처음부터 어려웠고 지금도 아주 어렵다. 하지만 그게 아주 나쁜 건 아니다. 왜냐하면 나는 베를린필에서 ‘이민자’다. 이민자는 잘 듣고 작은 것도 섬세하게 봐야 한다. 듣는 사람이 돼야만했고 모든 가능한 방법으로 소통하려 했다. 그게 결과적으로 좋았다.”

단원들과 잘 소통된다는 걸 느끼나.

“이제 우리는 공유하는 훌륭한 역사가 있다. 얼마 전 우리가 마침내 바그너 ‘트리스탄과 이졸데’ 오페라 전막을 연주하게 됐을 때 그 전주곡을 얼마나 많이 함께 연주했는지 깨달았다. 함께 40~50번을 연주한 곡도 많다. 이제는 단원과 나 사이에 공통의 언어가 생겼다. 독일어도 영어도 아닌 언어다.”

디지털 콘서트홀, 음악 교육 등 새로운 방법으로 오케스트라를 이끈 지휘자 사이먼 래틀. [사진 베를린 필하모닉]

디지털 콘서트홀, 음악 교육 등 새로운 방법으로 오케스트라를 이끈 지휘자 사이먼 래틀. [사진 베를린 필하모닉]

베를린필을 맡은 후 연주 음원ㆍ영상을 디지털로 제공하고(디지털 콘서트홀), 현대 음악을 연주하는 프로그램을 만들고, 키즈 콘서트 같은 교육에 힘을 쏟았다. 전통이 강한 오케스트라 단원들을 어떻게 변화로 이끌 수 있었나.

“항상 까다로운 일이다. 하지만 주제에 따라 단원들의 반응이 달랐다. 우선 교육 프로그램은 내가 취임하기 전부터 단원들과 협의 했던 일이다. 현대 음악도 100년 넘은 보수적 오케스트라 단원들이 젊은 작곡가의 곡을 연주하는 데에 거부감이 있었지만 곧 익숙해졌다.
문제는 디지털 콘서트홀이었다. 예산이 정말로 많이 필요한 사업이고, 단원들로서는 인생이 피곤해진다. 매주 자신의 연주가 녹음ㆍ녹화되고 전세계로 배포된다고 생각해보라. 게다가 돈도 더 안주면서 말이다. 만약 내가 이 아이디어를 제시했으면 단원들이 ‘미쳤다’고 했을 거다. 다행히 아이디어는 오케스트라 사무국에서 나왔다.(웃음)”

그런 반발은 어떻게 끌고갔나.

“한 장의 사진이 상징적이다. 미국 미네소타의 인디언 거주구역에서 한쪽벽에 디지털 콘서트홀의 한 장면을 띄워놓고 보고 있는 사진이다. ‘우리는 누가 우리 연주를 보게 될지 모른다’는 사실을 극명히 말해준다. 돈을 벌기 위한 사업이라고만 생각할 수 없게 된 한 장의 사진이었다. 이런 피드백이 늘어나면서 음악이 사람들의 삶 어디에나 있어야 한다는 것에 단원들도 동의하고 자부심을 가지기 시작했다.”

잘츠부르크에서 만난 사이먼 래틀. 김호정 기자

잘츠부르크에서 만난 사이먼 래틀. 김호정 기자

베를린필은 이미 최고의 오케스트라였다. 왜 계속 새로운 프로젝트를 시작했나.

“최고인 것은 없다. 음악은 올림픽의 스포츠가 아니다. 점수를 매기는 게 아니라 삶 속에서 계속 흘러가는 것 아닌가. 세계와 삶이 변화하니까 음악도 계속 바뀌면서 가야한다.”

베를린필과 좋은 관계를 가지고 있었고 연주도 잇따라 호평을 받았다. 왜 재계약을 하지 않겠다고 2013년부터 선언한 건가?

“미국 대통령 임기도 4년이다. 재임을 해도 8년이다. 어떤 대통령이라도 길어야 8년이다. 지치고 늙기 때문이다. 나는 미국 대통령 임기를 4번이나 했다. 충분한 시간이다. 지휘는 스스로를 완전히 소모하는 직업이다. 물론 베를린을 그리워하겠지만, 일과 관계된 것만큼은 전혀 그립지 않을 것 같다.(웃음)

과거에는 한 오케스트라에 더 오래 머무는 지휘자도 있었다.

“역사적으론 그랬다. 하지만 지금 누가 그런가? 세상이 변했다. 이제는 지휘자와 단원 사이에 독재가 아닌 평등한 관계가 필요하듯 지휘자의 재임 기간도 변화하고 있다.”(래틀은 런던심포니의 ‘상임 지휘자(chief conductor)’란 명칭을 ‘음악 감독(music director)’으로 바꾸고 그 자리로 간다.)

런던심포니 음악감독을 맡으면서 고향인 영국으로 돌아가는 기분은?

“45년이 넘은 친구들과 지휘자 대 단원으로 다시 만나게 된다. 심지어 친구의 자녀들까지 있는 악단이 런던심포니다. 긴 역사를 함께 알고 있으니 얼마나 재미있을지 기대가 된다. 베를린필이 무거운 레드 와인이라면 런던 심포니는 세련된 화이트 와인이다. 서로 너무나 다르면서도 각자 좋은 악단이다.”

버밍햄에서는 오케스트라를 세계적 수준으로 올렸다. 베를린필에는 단원들의 임금을 올려주기 전엔 계약하지 않았고 취임 후엔 여러 변화를 이끌었다. 사람들은 당신을 ‘게임 체인저’라고 부른다. 다음 달 맡게되는 런던심포니에 대한 구상은 뭔가.

“내 임무는 그저 일이 되도록 도와주는 것이다. 특히 런던심포니에서 나는 이미 출발한 기차에 올라타 여행을 즐기는 기분이다. 런던심포니에는 콘서트홀이 정말 필요한데 이미 건립이 진행되고 있었다. 나는 그걸 도와주기만 하면 된다. 현재 런던심포니가 연주하는 런던 바비칸 센터는 너무 오래됐고 충분치 못하다. 좋은 바이올리니스트에게 훌륭한 바이올린이 필요하듯, 좋은 오케스트라에는 좋은 홀이 필요하다.”

래틀은 내년 초 베를린필 예술감독을 그만두지만 가족과 함께 베를린에 계속 거주한다. "아이들이 뛰어놀고 축구하고 음악을 배우기에 너무나 좋은 도시"라고 했다. [사진 베를린필하모닉]

래틀은 내년 초 베를린필 예술감독을 그만두지만 가족과 함께 베를린에 계속 거주한다. "아이들이 뛰어놀고 축구하고 음악을 배우기에 너무나 좋은 도시"라고 했다. [사진 베를린필하모닉]

한국에도 오케스트라의 전용 콘서트홀이 늘 문제가 된다. 음악가들은 지어달라고 하고 행정가들은 소극적이다. 한 사회에 좋은 오케스트라와 훌륭한 콘서트홀이 꼭 필요한가?

“인류의 가장 오래된 조상도 아마 커뮤니케이션을 위한 리듬을 가지고 있었을 거다. 음악은 사람들이 서로를 이해하는 가장 오래된 수단이다. 언어도 필요없이 곧장 신경계에서 서로의 뜻을 주고받는다. 한 사회의 구성원이 서로 이해해야 하지 않나? 음악 없이 그게 가능한가?”

래틀은 11월 19ㆍ20일에 서울 예술의전당에서 공연한다. 래틀과 베를린필은 2005년 이후 4번 한국을 찾았다. 5번째인 이번 공연은 래틀과 베를린필이 함께 하는 마지막 무대다. 래틀은 “한국에서 연주할 때면 청중이 아주 감정적으로 반응하는 게 느껴진다”고 했다.

잘츠부르크(오스트리아)=김호정 기자 wisehj@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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