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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도 예산안]‘큰 정부’로의 전환 공식화한 문재인 정부 첫 예산…나랏돈 씀씀이 증가율 9년만에 최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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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픽=차준홍 기자 cha.junho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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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큰 정부’와 ‘작은 정부’를 나누는 주요 기준 중 하나는 재정 지출 정도다. ‘적극적 재정’을 통해 나랏돈을 많이 쏟아붓는 게 큰 정부다.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 7월 국가재정전략회의에서 “작은 정부가 좋다는 맹목적인 믿음은 버려야 한다”고 말하며 큰 정부로의 전환을 선언했다. 전 정부의 ‘작은 정부’ 기조가 재정을 적시에 활용하지 않고 저성장ㆍ양극화 심화를 방치했다는 게 현 집권층의 생각이다. 박근혜 정부 시절 재정지출 증가율은 연 3% 수준이었다. 우원식 민주당 원내대표는 지난 18일 예산안 당정 협의에서 “재정 역할을 방기했던 지난 정권의 과오를 타산지석으로 삼아야 한다”고 말했다.

내년 예산 429조원..전년 대비 7.1% 증가 #글로벌 금융위기 여파 있던 2009년 이후 최대 #전체 예산 3분의 1 이상은 복지..일자리 예산도 12% 늘려 #SOC 예산은 전년 대비 20% 삭감 #한정된 나랏돈, 복지 지출 증가 속도 너무 빨라 #성장 투자는 '찔끔' ..R&D 예산 거의 늘지 않아.."성장 투자 부족"

정부가 이런 기조를 담은 문재인 정부 첫 예산안을 내놨다. 정부는 29일 국무회의를 열고 ‘2018년도 예산안’을 정했다. 내년도 예산 총 지출액은 429조원이다. 올해(400조5000억원)보다 7.1% 늘었다. 글로벌 금융위기 여파로 경기가 고꾸라졌던 2008년에 짠 2009년(10.7%) 예산안 이후 9년 만에 가장 높은 증가율이다. 예고한 대로 올해 경상성장률 전망치(4.6%)보다 높여 잡았다. 김동연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올 하반기 경기가 회복 모멘텀에 있지만, 양극화 심화와 같은 구조적인 문제로 서민의 삶은 나아지지 못하고 있다”라며 “재정의 적극적ㆍ선도적 역할이 필요하다”라고 말했다.

적극적 재정의 주 타깃은 일자리 창출을 비롯한 복지다. 문재인 정부가 지향하는 소득주도 성장을 뒷받침하기 위해서다. 정부는 내년도 보건ㆍ복지ㆍ노동 분야에 146조2000억원의 예산을 배정했다. 전체 예산의 34.1%를 차지한다. 전년 대비 증가율도 12.9%로 가장 높다. 보건ㆍ복지ㆍ노동 예산 중 일자리 예산은 19조2000억원이다. 전년 대비 12.4% 늘었다. 문재인 정부의 국정 과제 이행 비용이 대거 담겼다. 공공임대 주택 확대에 2조5000억원, 기초연금 인상에 1조7000억원이 쓰인다. 아동수당 지급에는 1조1000억원이 든다. 최저임금 인상으로 인건비가 늘어나는 중소기업 및 영세 자영업자를 돕기 위한 일자리 안정자금에는 3조원이 책정됐다.

교육 분야 예산은 64조1000억원으로 전년대비 11.7% 늘었다. 누리과정을 중앙 정부에서 전액 지원키로 하면서 이 예산이 1조2000억원(9000억원->2조1000억원) 추가로 반영된다. 지방교육 재정교부금은 올해 42조9000억원에서 내년 49조6000억원으로 늘어난다. 국방과 문화ㆍ체육ㆍ관광 예산은 각각 전년 대비 4% 증가했다.

반면 내년도 사회간접자본(SOC) 예산은 22조1000억원으로 전년 대비 20% 삭감됐다. 김동연 부총리는 “물적 투자는 적정 수준으로 관리하고 대신 복지 및 인적투자를 늘리겠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산업ㆍ중소기업ㆍ에너지 예산도 전년 대비 1.5% 줄었다.

자료 기획재정부

자료 기획재정부

이런 기조는 문재인 정부 내내 이어질 전망이다. 정부가 이날 함께 발표한 ‘2017~2021년 국가재정운용계획’에 따르면 올해부터 2021년 까지 연평균 재정지출 증가율은 5.8%를 기록한다. 2021년에는 재정 지출 규모가 500조9000억원으로 500조원을 돌파하게 된다. 불과 1년새 씀씀이도 대폭 커졌다. 지난해 기획재정부가 내놓았던 ‘2016~2020년 국가재정운용계획’에서 2020년 지출 계획 규모는 443조원이었는데 올해 계획에 따르면 476조7000억원으로 불어난다. 보건ㆍ복지ㆍ고용 지출은 2021년까지 해마다 9.8% 늘어난다. 지난해 재정운용계획에서 이 분야 연평균 지출 계획 증가율은 4.6%였다. 반면 SOC는 연평균 7.5% 줄인다.

한정된 재원 속에서 복지 지출 증가 속도가 너무 빠르다는 우려가 나온다. 정부 계획대로라면 2021년에 보건ㆍ복지ㆍ고용 예산이 전체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37.6%로 내년(34.1%)보다 3.5%포인트 늘어난다. 이 추세는 지속할 가능성이 크다. 복지에 한번 돈을 집어넣으면 이를 돌이키기 어려워서다. 최종찬(전 건설교통부 장관) 국가경영전략연구원장은 “복지가 필요하다면 당연히 돈을 써야 한다”라며 “하지만 효율적으로 쓴다는 전제 없이 무작정 돈을 쓰면 재정 사정만 악화시키고 효과는 거의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최 원장은 “복지를 늘리겠다면 이와 맞물려 대통령이 직접 재정 개혁을 주도해야 한다”라고 말했다.

SOC 예산 감축 속도가 가파르다는 지적도 있다. 이인실(전 통계청장) 서강대 경제대학원 교수는 “그간 SOC 투자가 과한 측면이 있었다”라면서도 “한국의 경제성장률에서 건설투자가 큰 비중을 차지하는 점에 비춰볼때 너무 빨리 감축하면 성장에 악영향을 줄 수 있다”라고 말했다.

무엇보다 미래 먹거리에 대한 고민은 보이지 않는다는 우려가 계속 나온다. 연구ㆍ개발(R&D) 예산의 경우 내년에 19조6000억원으로 올해보다 0.9% 늘어나는데 그쳤다. 2021년 까지 연평균 증가율도 0.7%에 머문다. 김정식 연세대 경제학부 교수는 “혁신을 통해서 새로운 기술을 창출하고 생산성을 높이는 길을 확보해야 한다”라며 “이런 성장에 대한 투자가 부족하다”라고 말했다. 강경훈 동국대 경영학과 교수는 “복지 재원을 통해 소득만 늘려주는 정책에는 한계가 있다”라며 “향후 혁신 성장을 위해 중요한 역할을 할 중소ㆍ벤처기업에 대해 보다 구체적인 지원 시스템을 만들어야 한다”라고 말했다.

세종=하남현ㆍ이승호 기자 ha.namhyu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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