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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년중앙] 박신영 작가가 말하는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와 그녀의 시대'

중앙일보

입력 2017.08.28 10:25

업데이트 2017.08.31 11:44

앨리스와 그녀의 시대

앨리스가 태어난 19세기 영국, 앨리스 같은 소녀 드물었죠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 중에서.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 중에서.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는 반지의 제왕이나 해리 포터 시리즈로 이어지는 영국 판타지 문학의 시초가 된 작품입니다. 앨리스는 흰 토끼를 따라 굴속에 뛰어들어 이상한 나라로 가서 모험하죠. 속편 『거울나라의 앨리스』에서는 거울을 통해 커다란 체스판인 세상으로 갑니다. 앨리스는 이상한 일들을 연달아 겪으며 현실에 없는 존재들과 만납니다. 모든 것이 난센스고 이상하죠. 그러나 앨리스가 다녀온 이상한 세계 역시 당시 역사와 사회문화를 반영하고 있습니다. 작가 루이스 캐럴은 1832년에 태어나 1898년에 사망했습니다. 그가 살다간 시대는 빅토리아 시대와 거의 일치합니다. 빅토리아 여왕의 재위 기간인 1837~1901년을 빅토리아 시대라고 부르는데, 이 시기는 세계의 공장이자 해가 지지 않는 나라, 대영제국의 전성기였죠. 또한 제국의 번영을 위해 영국 내에서는 노동자와 하층민이, 영국 밖에서는 식민지 주민들이 희생당했던 시대이기도 했습니다. 박신영 역사에세이 작가로부터 앨리스가 살던 시대의 사회문화에 대해서 자세히 알아봤습니다.
글=박신영 작가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에서 앨리스는 다과회에 가서 ‘미친 모자 장수(Mad Hatter)’ 만납니다. 모자 장수는 왜 미쳤을까? 당시 영국은 모자를 대량으로 만들어 유럽과 아메리카대륙에 수출했어요. 그런데 양털로 모자의 주재료인 펠트 천을 만들 때 질산수은을 이용했기에 작업장의 사람들은 수은 중독으로 시력과 청력 장애‧경련‧우울증‧정신이상 증세를 보였죠. 그렇다면 모자장수는 미친 것이 아니라 산업재해를 당한 것입니다. 모자 장수뿐만이 아닙니다. 당시 열악한 환경에서 오래 노동하느라 병든 노동자들은 많았습니다. 이 시대 자본가들은 근무환경을 개선할 생각 없이 이익만을 꾀했기 때문이죠. 『거울나라의 앨리스』에는 같은 장소에 머무르기 위해 점점 더 빨리 달리는 붉은 여왕이 나옵니다. 성공을 위해 무조건 질주하는 자본가와 공장주들의 모습을 반영했다고 볼 수 있죠.

18세기 영국의 산업혁명은 기계를 사용해 면직물을 대량 생산하면서 시작됐어요. 제임스 와트의 증기기관은 기존 방적기를 개량해 대량 생산을 가능하게 했을 뿐만 아니라 증기기관차도 만들어 본격적인 산업혁명 시대를 열었죠. 『거울나라의 앨리스』에도 기차가 등장해요. 앨리스는 기차가 개울을 건너뛰어 하늘을 향하자 깜짝 놀랍니다. 증기기관차를 본 지 얼마 안 된 빅토리아 시대 사람들이 급속한 산업화에 대해 가졌던 두려움이 엿보이는 장면이죠.

3월 토끼의 집 앞에서 열리는 ‘다과회(A Mad Tea-Party)’를 놓고도 할 이야기가 많습니다. 차를 빼고는 영국 근대사를 말할 수 없을 정도이기 때문이죠. 16세기 아시아 무역에 나선 포르투갈이 중국차를 유럽에 들여오고 1662년 영국에도 차 마시는 문화가 전파됩니다. 찰스 2세와 결혼한 포르투갈 공주 브라간자의 캐서린 덕분이죠. 18세기 말에 이르자 영국의 모든 사람들이 차를 즐기게 됐어요. 여기에는 산업혁명기 영국의 특수한 사정이 있습니다. 당시 빈민층 여성들은 공장이나 남의 집에 가서 일해야 했기에 식사를 준비할 시간이 부족했어요. 식사 때마다 따뜻한 요리를 만드는 대신 홍차를 차가운 음식에 곁들여 간단히 먹도록 상을 차렸죠.

공장에서도 공장주의 권장으로 노동자들은 차를 마셨습니다. 당시 노동자들이 즐기던 맥주에 비해서 차는 마셔도 취하지 않았고 오히려 차에 있는 카페인 성분이 각성 역할을 해 작업능률을 올린다는 것을 알아서였죠. 지친 노동자들은 우유나 설탕을 넣은 홍차를 마셔 칼로리를 빠르게 보충했어요. 요즘 식으로 말하자면 컵라면 같은 역할을 했다고나 할까요. 반면 상류층은 고가의 수입 도자기로 격식을 갖춘 티파티를 차려서 노동자들과 다른 수준을 뽐냈죠.

영국과 관련된 세계사에서도 차는 중요한 역할을 했어요. 독립 전쟁 2년 전인 1773년, 영국의 압제에 반감을 가진 아메리카 식민지 주민들은 보스턴 항구에 있던 영국 상선을 습격해서 실려 있던 차를 바다에 버립니다. 이를 ‘보스턴 티파티(차 사건)’라 부르죠. 이에 영국은 자국에 차를 공급하기 위해 중국과 인도를 침략하고 1839년 중국에서 아편 전쟁을 일으키죠. 그리고 다른 한편으로 인도 아삼 지방에 차 재배지를 만들고 인도에 대한 직접 지배에 나섭니다. 홍차에 넣을 설탕은 서인도제도 지배를 통해 확보했죠.

이런 식으로 영국은 최고 전성기 때, 지구 전체의 5분의 1에 달하는 영토를 가졌습니다. 독립 이전의 미국‧인도‧캐나다‧호주‧뉴질랜드 그 외 섬들… 과거 대영제국을 ‘해가 지지 않는 나라‘라고 부르는데도 이유가 있어요. 이렇게 많은 영국령을 지구의 자전에 맞춰 여행하면 해가 지지 않기 때문이죠. 그렇다면 당시 대영제국의 모든 영토에서는 늘 티파티가 열리고 있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 원서의 표현 그대로, 종일 열리고 있는 미친 티파티(A Mad Tea-Party)가 아닐까요. 해가 가지지 않는 이상한 나라, 늘 열리는 미친 티 파티라니!

당시 상황은 동화에도 반영됐습니다. 당시 아이들에게 제국주의적 가치관을 심어주는 작품이 많이 나왔죠. 소년들에겐 식민지배에 참여하는 것을 모험으로 여기게 하는 모험소설이 등장했죠. 스티븐슨의 『보물섬』이 대표적입니다. 소녀들을 위해선 가정소설이 등장합니다. 아름다운 소녀들이 순종적 여성이 되어 가정을 지키는 내용이죠. 대표적 작품은 『작은 아씨들』입니다. 그 씩씩한 조도 갑자기 착해져서 나이많은 아저씨와 결혼하죠. 소년과 달리, 소녀는 모험을 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우리의 앨리스는 예외였죠. 스스로 모험을 하고 무사히 집으로 돌아옵니다. 벌 받지도, 착한 소녀가 되지도 않죠. 먼저 말 걸고 말대꾸한다고 혼나면서도 여왕을 비롯, 처음 만나는 상대에게 궁금한 것을 묻죠.

“정말 거대한 체스 게임이 벌어지고 있어. 세계를 무대로 하는. 이게 세계라면 말이야. 아, 정말 재밌겠다! 나도 체스 말이 되어 게임에 낄 수만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게임에 낄 수만 있다면 졸이라도 상관없는데. 물론 여왕이 되면 가장 좋겠지만.” 『거울나라의 앨리스』 (푸른책들(2012) 45쪽에서 인용)중에서.

바로 이 점이 앨리스의 매력입니다. 빅토리아 시대의 도덕관에서 벗어나 스스로 모험을 하는 점. 제국주의 시대의 성공관에서 벗어나 남을 해치거나 남의 것을 빼앗아 성공하지 않고 모험을 통해 성장하는 점. 끝까지 나아가 여왕이 되려하는 점. 그래서 저는 앨리스가 좋습니다. 아마 이 글을 읽는 당신도 그랬을 거라 생각해요.

▶박신영
『백마탄 왕자들은 왜 그렇게 떠돌아다닐까』 『이 언니를 보라, 세상에 불응한 여자들의 역사』의 저자, 역사에세이 작가.

▶루이스 캐럴

루이스 캐럴.

루이스 캐럴.

본명은 찰스 루트위지 도지슨. 영국 체셔 지방의 성직자 가정에서 태어나 옥스퍼드대학 수학부 교수로 일했다. 1855년 옥스퍼대학에 헨리 리델 학장이 부임해오면서 그의 어린 딸 앨리스와 친구가 됐다. 앨리스를 위해 만들어낸 이야기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를 1865년, 『거울나라의 앨리스』를 1872년에 출간했다. 그가 남긴 가장 유명한 책인 이 두 권은 150여 년이 지난 지금에도 전 세계인에게서 사랑 받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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