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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사랑한 호텔]브래드 피트·조지 클루니…셀럽의 은신처 '선셋 마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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업데이트

뒤편 언덕 어딘가에 배우 조니 뎁의 대저택이 있다고 한다. 아래쪽 사거리에 있는 월마트에는 후줄근한 트레이닝복을 입은 가수 비욘세가 수시로 출몰한단다. 미국 캘리포니아의 도시 웨스트할리우드에 있는 호텔 선셋 마퀴(Sunset Marquis)에서 들은 이야기다.
햇살 찬란했던 2017년 4월 이 호텔에서 이틀밤을 묵었다. ‘웨스트할리우드 최고의 럭셔리 호텔’이란 수식어가 따라다니는 곳이었는데 사실 이런 설명은 썩 흥미롭지 않았다. 대신 기라성 같은 뮤지션이 단골로 찾는 호텔이란 사실이 중요했다. 어릴 적 동경했던 로커들의 흔적을 더듬는 것만으로 이 호텔에 머무는 경험이 값질 것만 같았다.

미국 웨스트할리우드 최고의 럭셔리 호텔로 꼽히는 선셋 마퀴. 세련된 분위기와 완벽한 사생활 보장으로 예부터 셀럽들이 단골처럼 이용한다. [사진 선셋 마퀴]

미국 웨스트할리우드 최고의 럭셔리 호텔로 꼽히는 선셋 마퀴. 세련된 분위기와 완벽한 사생활 보장으로 예부터 셀럽들이 단골처럼 이용한다. [사진 선셋 마퀴]

할리우드가 아니다. 웨스트할리우드다. 이름 그대로 미국 영화의 중심지인 할리우드 서쪽에 있는 도시다. 인구는 3만5000명에 불과하지만 번듯한 시청도 있는 엄연한 시(市)다. 로스앤젤레스 카운티를 이루는 88개 시 중 하나로, 미국에서도 가장 스타일리시한 도시로 통한다. 명품숍과 개성 강한 부티크숍이 줄지어 있고, 미국에서 손꼽히는 게이바와 클럽이 수두룩하다.

비버리힐스가 할리우드 배우들의 베드타운이라면, 웨스트할리우드는 그들의 놀이터로 통한다. 

그러니까 이역만리 한국에서 날아온 필부에게는 영 낯설고 어색한 도시라는 말이다.

명품 브랜드숍과 편집숍이 즐비한 웨스트할리우드 거리.

명품 브랜드숍과 편집숍이 즐비한 웨스트할리우드 거리.

럭셔리 호텔이란 수식어와 달리 선셋 마퀴의 입구는 비좁았다. 프론트데스크에서 키를 받아 객실을 찾아갔다. 굳이 ‘찾아갔다’고 한 건 내부가 반듯반듯한 비즈니스 호텔과 달리 선셋 마퀴의 구조가 독특해서다. 수영장을 지나 레스토랑과 정원을 통과해 엘리베이터를 타고 두 층을 올라가 또 다른 수영장을 지난 뒤 야트막한 뜰을 걸어올라서야 배정받은 객실에 도착했다. 주황색 지붕을 얹은 하얀 건물과 만개한 부겐베리아, 야자수가 어우러진 풍경은 바라보는 것만으로 여유가 느껴졌다. 호텔측은 지중해 오아시스풍 디자인이라고 설명했다.

주황색 지붕 얹은 하얀 건물. 그리고 야자수와 푸른 하늘이 어우러진 풍경을 보는 것만으로도 깊은 휴식을 누릴 수 있다. [사진 선셋 마퀴]

주황색 지붕 얹은 하얀 건물. 그리고 야자수와 푸른 하늘이 어우러진 풍경을 보는 것만으로도 깊은 휴식을 누릴 수 있다. [사진 선셋 마퀴]

호텔 로비쪽에 있는 수영장.

호텔 로비쪽에 있는 수영장.

호텔 상부에 있는 수영장. 지중해 어디에선가 본듯한 풍경이다. [사진 선셋 마퀴]

호텔 상부에 있는 수영장. 지중해 어디에선가 본듯한 풍경이다. [사진 선셋 마퀴]

객실 내부는 다소 어두운 톤으로 차분한 분위기였다. 테이블에는 호텔에서 선물한 조각 케이크가 있었다. 접시는 Peace(평화)·Love(사랑)·Music(음악)이라고 초콜릿으로 장식되어 있었다. 욕조에는 어린이를 위한 오리 고무인형이 있었는데 인상이 예사롭지 않았다. 기타를 들고 머리를 풀어헤친 채 인상을 찌푸리고 있는, 한마디로 ‘록 스피릿’이 충만한 인형이었다. 과연 음악으로 유명한 호텔다웠다.
객실은 안온했지만 침대에 널브러져 있을 순 없었다. 록음악에 심취해 밴드까지 결성해 기타를 튕겼던 10~20대 시절의 아련한 기억 때문이었다.

객실 욕조에 있던 범상치않은 '로커' 오리 인형.

객실 욕조에 있던 범상치않은 '로커' 오리 인형.

호텔 곳곳에는 지미 헨드릭스·비틀스·엘튼 존·U2 같은 전설적인 뮤지션의 사진이 걸려 있었다. 

모두 이 호텔에 묵은 손님이었다. 호텔 로비에는 갤러리도 있는데 미국의 셀레브리티(셀럽) 사진 전문가인 티모디 화이트가 운영하고 있다. 역시 뮤지션 사진만을 전시하고 판매하는 갤러리다. 어릴 적 음악잡지를 보며 감탄했던 사진들이 큰 액자에 걸려 있었다.

호텔 로비에 있는 갤러리. 팝 역사를 빛낸 스타들의 사진이 전시돼 있다. [사진 선셋 마퀴]

호텔 로비에 있는 갤러리. 팝 역사를 빛낸 스타들의 사진이 전시돼 있다. [사진 선셋 마퀴]

호텔은 1963년 문을 열자마자 뮤지션과 할리우드 배우들의 은신처로 인기를 끌었다. 록그룹 에어로스미스의 보컬인 스티븐 타일러가 대표적인 단골이다. 그는 “집 밖의 또 다른 집”이라고 할 정도로 선셋 마퀴를 편하게 생각했다. 로드 그륀뒤케 선셋 마퀴 호텔 총지배인은 “아늑하면서도 사생활이 보장되는 시설 덕분에 셀럽들이 몰려들기 시작했다”며

“브래드 피트, 제니퍼 애니스톤 등은 1년 가까이 객실을 계약해 별장처럼 쓰기도

했다”고 설명했다. 그는 이어 “사실 오늘도 아주 유명한 스타가 체크인 했지만 보안상 누구인지 알려줄 순 없다”며 웃었다.

선센 마퀴의 단골 고객들. 왼쪽부터 브래드 피트, 제니퍼 애니스톤, 조지 클루니.

선센 마퀴의 단골 고객들. 왼쪽부터 브래드 피트, 제니퍼 애니스톤, 조지 클루니.

선셋 마퀴에는 현재 미국에서도 가장 수준 높은 시설을 자랑하는 녹음 스튜디오도 있다. 호텔 지하에 녹음실이 생기게 된 사연이 흥미로웠다. 1992년 세계적인 기타리스트 제프 백이 호텔 객실에서 기타를 연주했는데 소음 때문에 잠을 잘 수가 없다는 투숙객의 항의가 빗발쳤다. 호텔측은 할 수없이 지하 세탁실에 제프 백을 위한 연주 공간을 마련해줬다. 함께 있던 프로듀서 제드 리버가 아예 스튜디오를 차리는 게 어떻겠냐고 호텔에 제안했다. 그렇게 탄생한 게 수많은 그래미 수상 앨범을 탄생시킨 나이트버드 스튜디오다.

호텔 지하 나이트버드 스튜디오에서 녹음한 그래미상 수상곡을 감상했다. 가수들이 바로 앞에서 노래하는 듯 생생했다.

호텔 지하 나이트버드 스튜디오에서 녹음한 그래미상 수상곡을 감상했다. 가수들이 바로 앞에서 노래하는 듯 생생했다.

마침 스튜디오를 둘러볼 기회를 얻었다. 엔지니어인 안젤로 카푸토가 안내를 맡았다. 우선 이 스튜디오를 이용한 가수들의 면면을 이야기해줬는데 마치 1990~2000년대 팝 음악 역사를 훑는 것 같았다. 특히 밥 딜런·에어로스미스·너바나·레드 핫 칠리 페퍼즈 등 귀를 스칠 때는 심장이 쿵쾅거렸다. 밴드 시절, 이들의 음악을 따라 연주했던 기억이 새록새록 떠올라서였다. 카푸토는 4억원짜리 오디오믹서, 2억5000만원짜리 피아노 등을 소개한 뒤 어 그레이트 빅 월드와 크리스티나 아길레라가 부른 ‘세이 섬띵(Say something)’을 들려줬다. 바로 이 스튜디오에서 녹음한 뒤 2015년 그래미에서 최우수 듀오상을 수상한 곡이었다. 아길레라가 바로 앞에서 흐느끼는 듯 숨소리까지 생생했다.

수억원을 호가하는 장비가 가득한 호텔 지하의 나이트버드 스튜디오.

수억원을 호가하는 장비가 가득한 호텔 지하의 나이트버드 스튜디오.

미국에 수많은 스튜디오가 있는데도 기라성 같은 스타들이 이곳을 찾는 이유가 궁금했다. 카푸토의 답은 의외로 간명했다. 최상의 녹음 환경도 갖췄지만 완벽한 사생활이 보장된다는 사실이 중요하단다. 지하 주차장에서 곧바로 스튜디오로 들어와 24시간 호텔식 서비스를 받으며 녹음을 마치고 유유히 빠져나갈 수 있으니 말이다.
체크아웃을 앞둔 마지막날 아침 호텔 주변을 달렸다. 혹시나 조깅을 하면서 트레이닝복 차림으로 배회하는 할리우드 배우나 나이트버드 스튜디오에 녹음하러 온 뮤지션을 마주치지 않을까 유치한 기대를 품고. 20대 때 즐겨 듣던 레드 핫 칠리 페퍼스의 ‘캔트 스탑(Can's stop)’을 들으며 신나게 달렸다. 너무 이른 아침이었을까. 3~4㎞는 달린 것 같은데 커다란 개를 끌고 산책하는 할머니, 할아버지 밖에 보이지 않았다. 그래도 반갑게 인사해주는 그들 덕에 아침 조깅은 상쾌했다. 그리고 왜 셀럽들이 이 도시에서 살고 싶어 하는지 알 수 있었다.

미국 웨스트할리우드 럭셔리 호텔 #지하엔 그래미 수상 앨범 낸 녹음실 #곳곳에 팝스타 사진·악기 전시 #없던 록스피릿까지 흔들어 깨워 #완벽한 사생활 보장이 매력

◇선셋 마퀴(sunsetmarquis.com)는 웨스트할리우드 최대 번화가인 선셋 블루바드에서 아래쪽으로 난 길 알타 로마 로드(Alta Loma rd)에 있다. 객실은 모두 152개로, 가장 저렴한 객실이 1박 40만원 선이며, 빌라형 객실은 하룻밤 200만원을 호가한다. 로스앤젤레스 국제공항에서 자동차로 약 30분 거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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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사진=최승표 기자 spchoi@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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