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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찰·국세청·공정위·경찰의 전방위 기업 사정(司正)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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업데이트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에게 징역 5년의 실형이 선고되면서 재계의 긴장감이 높아지고 있다. 정부가 이번 1심 판결을 재벌개혁에 대한 국민적 공감대가 형성된 것으로 판단하고, 본격적인 재벌 개혁 드라이브를 걸 것으로 예상되면서다. 이미 주요 사정·감독 기관의 칼끝은 주요 대기업으로 향하고 있다.

JY 실형 이후 더 강화될 듯…숨죽인 재계 “앞으로가 문제” #9월 공정위 ‘기업집단국’, 국세청 ‘변칙 상속·증여 TF’ 출범 #“무리한 기획수사, 마구잡이 조사 이어지지 않을까 걱정"

27일 재계에 따르면 새 정부 출범 이후 대(對) 기업에 대한 사정(司正)은 압수수색 등 사법 수단과 함께 과징금 부과 등 행정 조치까지 전방위로 진행되고 있다. 검찰은 국내 최대 방위산업체인 한국항공우주산업(KAI)의 비리 의혹을 수사 중이다. 적폐청산의 일환으로 방위산업 비리 척결을 선언한 가운데, 항공방위산업 전반으로 수사가 넓어질 전망이다. 경찰은 조양호 회장이 자택 공사비를 회삿돈으로 지불한 혐의 등으로 대한항공 본사를 압수수색 했다. 삼성전자 등 다른 기업에 대해서도 동시다발적 수사를 진행 중이다.

재계를 겨냥하고 있는 곳은 검ㆍ경만이 아니다. 서울지방국세청 조사4국은 지난주 ㈜한화와 한화테크윈을 대상으로 세무조사를 착수했다. 조사4국은 기획 세무조사를 전담하는 조직으로, 이른바 국세청장의 ‘직할부대’로 통한다. 공정위의 행보도 빨라지고 있다. 공정위는 이동통신 3사의 요금 담합 의혹, 대기업의 일감몰아주기 등을 살펴보고 있다.

문재인 정부 출범 이후 진행 중인 기업 대상 사정(司正)

기관

대상 기업

내용

검찰

한국항공우주산업(KAI)

방위산업 비리 의혹

국세청

㈜한화, 한화테크윈

기획 조사를 전담하는 조사4국이 조사

공정위

부영

이중근 부영 회장 '계열사 누락' 검찰 고발 

이동통신 3사

요금제 담합 의혹과 관련해 현장 조사

하림

일감 몰아주기, 닭고기 가격 담합 등 조사

현대모비스

물량 밀어내기 조사에 따른 동의의결 신청

현대위아

부당 하도급 행위 과징금, 검찰고발

경찰

대한항공

조양호 회장 자택 공사비용 조사

대한항공

인천공항 라운지 불법 영업행위 의혹

삼성전자

이건희 회장 자택 공사비용 조사

아시아나항공

인천공항 라운지 불법 영업행위 의혹

현대글로비스

가짜 세금계산서 발행 혐의 

이들의 서슬에 기업이 알아서 ‘자진납세’(?)하는 분위기도 연출된다. 대한항공은 일감몰아주기 의혹을 해소하기 위해 오너일가 지분율이 100%인 ‘유니컨버스’에 대해 자체적으로 지분을 처분했다. 현대모비스는 자진해서 대리점 밀어내기를 개선하고 보상하겠다는 ‘동의의결’을 공정위에 신청했다.

사실 새 정권이 들어설 때마다 사정기관을 동원한 대기업 '군기잡기'는 늘 있어왔다. 박근혜 정권 초기에도 CJㆍ효성ㆍ동양 등이 표적이 돼 수난을 겪었다. 하지만 이번에는 최저임금 인상, 일자리 창출 등 양립하기 힘든 과제들이 한꺼번에 던져진 ‘정책 상충(相衝) 스트레스’가 큰 상황에서 사정의 강도가 높아졌다. 특히 이 부회장의 실형 선고라는 새로운 동력을 얻은 사정 기관의 칼날이 갈수록 예리해지고 있어 부담이 크다.

공정위는 다음달 대기업의 일감 몰아주기,, 내부거래 등을 전담하는 ‘기업집단국’을 출범시킨다. 노무현 정부시절인 2005년 기업 부담을 이유로 해체됐던 ‘조사국’이 다시 부활한 것이다. ‘대기업 저승사자’라고 불린 조사국은 2000년대 초반까지 5대 그룹의 부당 내부거래를 적발했지만, 패소가 많아 무리한 조사를 한다는 비판을 받았다. 국세청도 다음달부터 ‘대기업ㆍ대자산가 변칙 상속ㆍ증여 태스크포스(TF)’를 설치해 우회 거래와 위장계열사 등을 정밀 점검할 예정이다. 검찰도 공정거래 전담부서 증설을 검토 중이다.

재계는 말 한마디가 조심스럽다. 최순실 게이트 여파로 반기업정서가 커진 상황에서 섣불리 목소리를 냈다가 사정 기관의 더 큰 부메랑을 맞을 수 있다는 우려에서다. 한 대기업 부사장은 “문제는 지금부터”라며 “반기업 정서에 휩쓸려 무리한 기획수사가 이어지지 않을까 걱정된다”라고 말했다.

자칫 정치적 논리에 따른 법 적용이 늘어나며 경영이 위축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전삼현 숭실대 법학과 교수는 "정상적인 경영활동까지 문제 삼는 마구잡이 조사가 이뤄져서는 안될 것"이라며 "사정기관을 통한 '기업 옭죄기'가 최순실 게이트의 후유증을 털고 재도약을 모색하는 기업에게 새로운 외풍으로 작용할 수 있다"고 우려했다.
손해용 기자 sohn.yo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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