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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회창이 본 노무현…“뛰어난 언변과 돌출적 행동”, “놀라운 변신술”

중앙일보

입력

이회창 전 한나라당 총재는 22일 낸 『이회창 회고록』에서 2002년 대선에서 맞붙었던 노무현 전 대통령에 대해 여러차례에 걸쳐 언급했다.
그는 노 전 대통령에 대해 “뛰어난 언변과 돌출적 행동”을 가졌다고 말했다. 또한 “놀라운 변신술”을 가졌다며 노회한 정치인처럼 묘사하기도 했다. 반면 “승자의 대선자금을 건드리지 않는 관행을 깼다”며 긍정적인 평가도 했다. 2002년 대선 패배에 대해서는 “이미지와 연출에 대해서 완패했다”고 적었다.

이회창 전 총재와 노무현 전 대통령 [중앙포토]

이회창 전 총재와 노무현 전 대통령 [중앙포토]

①“노풍 곧 깨질 바람으로 봤다”= 이 전 총재는 먼저 “뒤늦게 정치권에 들어온 나는 그를 잘 알지 못했다”며 “내가 보기에 그는 정치에 들어온 지 꽤 오래됐었는데도 그 연륜에 알맞은 기반을 잡지 못했다. 변방으로 돌며 전두환 전 대통령 청문회에서 보듯이 뛰어난 언변과 돌출적 행동으로 자신의 존재감을 드러내는 정치를 해 온 것으로 봤다”고 회고했다.

노무현 민주당 대통령 후보가 2002년 5월10일 서울필승결의대회가 열린 국회 의원회관 대강당에서 지방선거에 출마할 후보들의 환호에 답하고 있다. [중앙포토]

노무현 민주당 대통령 후보가 2002년 5월10일 서울필승결의대회가 열린 국회 의원회관 대강당에서 지방선거에 출마할 후보들의 환호에 답하고 있다. [중앙포토]

이어  2002년 민주당 경선 후 불었던 ‘노풍(盧風)’에 대해 “이런 사람은 대체로 시대의 흐름이나 변화의 바람이 일어날 때 민감하게 이에 편승해 부상하는데 능하다. 당시 나는 ‘노무현 부상현상’은 조만간 깨질 바람이라고 봤다”고 했다.
그러면서도 “여론조사의 일시적 변동에 흔들리지 말 것을 강조했지만 마음은 착잡했다”고 당시 심경을 적었다.

"노풍은 곧 꺼질 바람으로 봤다" #말바꾸기 지적하며 "놀라운 변신술" #"대선자금 수사 관행 깬 것은 평가"

②“놀라운 변신술”=이 전 총재는 노무현 전 대통령이 경선 중 자신이 했던 말을 번복했던 사례를 지적하며 “놀라운 변신술”이라고 평했다.
이 전 총재는 노 전 대통령이 김영삼 전 대통령을 찾아가 2002년 6ㆍ13 지방선거에서 부산시장 후보로 박종웅 한나라당 의원, 문재인 변호사, 한이헌 전 한나라당 의원 등 3인의 명단을 제시하고 “의중을 따르겠다”고 말한 것을 두고 “그동안 김 전 대통령을 비난해왔던 노 후보의 놀라운 변신술”이라고 적었다. 당시 지방선거에서 한나라당이 승리한 요인 중 하나에 대해서도 “노 후보 자신의 돌출 언동”을 꼽았다.

노무현 민주당 대통령 후보가 2002 4월 30일 서울 상도동 김영삼 전 대통령 을 찾아 예날얘기를 하며 파안대소하고 있다. [중앙포토]

노무현 민주당 대통령 후보가 2002 4월 30일 서울 상도동 김영삼 전 대통령 을 찾아 예날얘기를 하며 파안대소하고 있다. [중앙포토]

또 노 전 대통령이 그해 11월 3일 ‘국민통합21’의 정몽준 후보에게 후보 단일화를 공식 제안한 것도 비판했다.
이 전 총리는 ”노무현 후보는 민주당 내에서 후보 단일화 주장이 나왔을 때, 정 후보를 겨냥해 ‘정체가 불분명한 사람’ ,‘검증을 거치지 않은 사람’과는 단일화할 수 없다고 말했는데 자기가 한 말을 간단히 뒤집은 것“이라고 꼬집었다.
하지만 양자 단일화에는 큰 위기감을 느끼지 않았다고  한다.
그는 ”여론조사 추이로 보아 2,3위의 후보끼리 단일화해봐야 크게 판을 뒤집는 결과까지는 가지 않을 것이라고 내다보았다“며 ”그러나 그게 아니었다“고 회고했다.

③”노무현의 이미지에 패했다“=이 전 총리는 노 전 대통령에 패배한 이유에 대해 “이미지와 연출의 대결에서 완패했다”고 썼다.
그는 “노무현 후보 측이 내세운 귀족과 서민, 기득세력과 개혁세력이라는 프레임에서 벗어나 나의 이미지를 바꾸는데 성공하지 못했다”며 “나는 오랜 기간 한나라당 총재를 지내고 대선 후보를 두 번씩이나 하면서 대세론도 나오는 등 국민들에게는 지겹도록 오래 보아온 얼굴이 되어버렸다. 말하자면 기득세력의 대표주자라는 이미지가 굳어진 것”이라고 했다.

민주당 노무현 대통령 후보가 부산 자갈치시장을 찾아 상인들과 얘기를 나누고 영덕대게를 들어보고 있다. [중앙포토]

민주당 노무현 대통령 후보가 부산 자갈치시장을 찾아 상인들과 얘기를 나누고 영덕대게를 들어보고 있다. [중앙포토]

이어 “반면에 노 후보는 나보다 훨씬 먼저 정치권에 들어와 YS와 DJ 사이를 오간, 말하자면 구 정치인이었지만 돌출적인 행동과 대선 후보가 되면서 청와대와 대립각을 세우는 등 눈길을 끌었다. 특히 금수저 출신의 정몽준 후보와의 사이에 후보 단일화를 이루면서 변화와 개혁의 이미지를 각인시켰다“고 평가했다.

④정치자금 종식에 기여=이 전 총재는 대선자금 사건과 관련해 노 전 대통령의 태도를 비교적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그는  “(노 전 대통령은) 승자의 대선자금은 건드리지 않는 관행을 깨고 검찰이 자신의 대선자금을 조사하는 것을 적극적으로 막지 않았다”며 “이 사건을 계기로 과거의 관행은 이제 사라진 것처럼 보인다. 노무현 대통령이 기여한 바도 있다”고 했다.

월드컵 개막식에 참석한 이회창 전 한나라당 총재와 노무현 전 대통령 [청와대사진기자단]

월드컵 개막식에 참석한 이회창 전 한나라당 총재와 노무현 전 대통령 [청와대사진기자단]

 또, “앞일을 생각해야하는 기업이 승자에 제공한 자금 내역에 대해 사실 그대로 밝히리라고는 기대하기 어렵지만 어쨌든 검찰이 119억원의 노무현 당선자 측 불법자금을 밝혀낸 것은 과거에 없었던 일”이라고도 썼다.
하지만 검찰이 노 전 대통령에 대해 ‘봐주기 수사’를 했을 가능성도 지적했다.
그는 당시 “기업이 과연 누구를 보고 그 큰돈을 주었겠나. 당연히 저를 보고 준 것이다. 이 모든 짐을 짊어지고 감옥에 가겠다”는 자신의 기자회견 발언을 소개한 뒤 “내가 시켜서 한 것이라고 말한 이상 법적 책임을 물을 수 있는데도 불입건 처리한 것은 노 대통령과의 형평성을 고려했기 때문이라고 짐작된다”고 말했다.
또, “노 대통령은 자신의 자금은 나의 것에 비해 10분의 1에 불과하다고 말해 검찰에 대해 영향력을 미치는 발언이라는 비판을 받았다”고도 적었다.
이 전 총재는 대선 자금에 대해 “입이 열 개라도 변명의 여지가 없고 고개를 들 수 없을만큼 부끄럽고 불명예스러운 일이다. 처음엔 이 회고록도 쓰지 않으려고 했다”면서  “내가 저지른 잘못과 실수에 대해서도 어떤 생각을 하고 어떻게 대처했는지에 대해 말하는 것이 도리라고 생각했다”고 밝혔다.

유성운 기자 pirat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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