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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팩트체크]세종대왕도 머쓱해질 민주당의 주장…“‘근로’는 근로정신대에서 유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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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금만 찾아봤어도 무리한 주장이라는 걸 알텐데 얼마나 법안을 성의없게 만드는 걸까요.”
21일 수화기 속 전해진 A교수의 목소리는 다소 격앙되어 있었다. 20일 박광온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대표 발의한다고 밝힌 법안 때문이었다. 근로기준법과 근로복지기본법을 비롯한 12건의 관련 법률 용어 수정을 골자로 한 내용이다. 이 법안이 통과되면 모든 법률안에 사용된 ‘근로’라는 단어는 ‘노동’으로 바뀌게 된다. 이에 따라 법명도 바뀌는데 근로기준법은 노동기준법으로, 근로복지기본법은 노동복지기본법으로 된다.

박광온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20일 모든 법안에서 ‘근로’라는 명칭을 ‘노동’으로 바꾸도록 하는 내용의 법안을 20일 발의했다. [중앙포토]

박광온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20일 모든 법안에서 ‘근로’라는 명칭을 ‘노동’으로 바꾸도록 하는 내용의 법안을 20일 발의했다. [중앙포토]

박 의원은 그러면서 “‘근로’는 근로정신대에서 유래한 일제강점기의 유물”이라며 “국제노동기구와 세계 입법례에서도 ‘근로자’란 용어는 쓰지 않고 한자 문화권인 중국ㆍ대만ㆍ일본 노동법에서도 사용하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결론부터 말하면 이는 사실과 다르다. ‘근로(勤勞)’란  단어의 연원은 더 깊다.『조선왕조실록』에서 이를 찾아볼 수 있으니 말이다.
“황보개(皇甫盖) 등 213인도 또한 조정 안에서 근로(勤勞)하기도 하고 밖에서 분주(奔走)하기도 하여 세월이 오래 되었으니, 내가 매우 이를 장하게 여긴다.” (『태조실록』 2권, 태조 1년 10월 9일)
태조 1년, 1392년 태조 이성계가 조선 건국에 공을 세운 최윤수ㆍ황보개 등 213명을 원종 공신에 책봉했다는 내용이다. 한 연구자는 “조선 건국 직후에 사용된 것으로 봤을 때 이미 고려시대부터 사용한 우리 민족의 말일 것”이라고 말했다.

『조선왕조실록』에는 ‘근로’라는 단어가 198회 등장한다. [중앙포토]

『조선왕조실록』에는 ‘근로’라는 단어가 198회 등장한다. [중앙포토]

또한 박 의원은 “노동절은 박정희 정권이었던 1963년에 근로자의 날로 변경됐다”며 “(근로라는 용어의 사용은) 노동을 이념적 언어로 불온시하고, ‘모범 근로자’ 양성이 목적이었던 사용자 중심의 갑질 경제 체제의 폐단”이라고 지적했다. 박정희 정부가 노동운동을 부정적으로 본 것은 맞지만 ‘근로’라는 단어가 그간 익숙하게 사용되어 온 측면도 무시하긴 어렵다.

“각도의 해도 만호가 선군을 역사시켜 둔전하고, 미역을 따고 고기를 잡으니, 거두는 이익은 매우 적은데, 종일 노동(勞動)하다가 밤이 되어 곤하게 잠을 자므로, 경비를 능히 하지 못하여 실수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태종실록』 11권, 태종 6년 4월 20일)

“근로(勤勞)한 공력(功力)도 없으면서 높은 자리를 차지하여 녹만 먹음이 너무 심하온데…” (『세종실록』 90권, 세종 22년 8월 10일)

윗글은 병사들이 각종 사역 때문에 경비에 충실하기 어렵다는 내용을 호소한 전라도 관찰사 박은의 상소이고, 아랫글은 세종 시대에 고위직을 역임했던 판중추원사 조말생에 제출한 사직서 내용 중 일부다.
조선시대에 ‘근로’와 ‘노동’, 두 단어롤 모두 사용했지만『조선왕조실록』에서 ‘근로(勤勞)’라는 단어가 198회 검색되는 것에 비해 노동(勞動)은 28회 사용됐다. 오히려 노동보다는 근로라는 단어가 더 익숙하게 사용됐다는 사실을 유추할 수 있다.

『세종실록』. ‘근로(勤勞)’라는 단어는 세종 시기에서 22회 사용됐는데, 이는 성종 시기(35회)에 이어 두 번째로 많은 횟수다. [중앙포토]

『세종실록』. ‘근로(勤勞)’라는 단어는 세종 시기에서 22회 사용됐는데, 이는 성종 시기(35회)에 이어 두 번째로 많은 횟수다. [중앙포토]

 참고로『조선왕조실록』에서 ‘근로(勤勞)’라는 단어는 세종 시기에 22회 사용됐는데, 이는 성종 시기(35회)에 이어 두 번째로 많은 횟수다. 또한 세종과 성종은 모두 조선시대에 민생을 안정시킨 ‘명군’으로 평가받는 대표적인 군주다.

박 의원이 ‘근로’라는 단어의 연원이라고 주장하는 근로정신대는 일본이 태평양전쟁에 민간인을 강제 동원하기 위해 만든 조직이다. 이보다 앞서 만들어진 근로보국대도 1937년 만주사변 이후 조직됐다. 국내 언론에서 ‘근로정신대’는 1940년부터, ‘근로보국대’는 1938년부터 등장한다.

근로보국대에 동원돼 노역을 하고 있는 학생들. 근로보국대는 1937년 만주사변 이후 전쟁 활동을 지원하기 위해 동원단 단체다.[중앙포토]

근로보국대에 동원돼 노역을 하고 있는 학생들. 근로보국대는 1937년 만주사변 이후 전쟁 활동을 지원하기 위해 동원단 단체다.[중앙포토]

하지만 ‘근로’는 그 이전 신문기사에서도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다.
“장년된 자는 근로에 대하여 필요한 생활비를 주고 일반 국민을 빈부의 차별이 없이”
1922년 5월 18일자 고려공산당의 체포를 다룬 동아일보 기사에서 공산당의 강령을 설명하는 내용이다. 근로보국대나 근로정신대가 등장하기 훨씬 전부터 ‘근로’라는 명칭을 사용한 셈이다.

몽양 여운형이 1947년 창당한 근로인민당을 떠올려봐도 일제의 수탈적 의미로 시작된 단어는 아닐 가능성이 높다. 근로인민당은 주요 강령으로 주요 산업의 국유화, 금융기관의 국유화, 주요 교통기관의 국유화 및 농업의 국유화, 민주적 노동법의 제정ㆍ실시 등을 내걸었다. 근로인민당이 당시 38선 이남에서 가장 진보적이고 친노동적 정당이었다는 것에 이의를 제기하는 학자는 거의 없다. 그럼에도 당명에 ‘노동’ 대신 ‘근로’를 채택했다. 좌우 이념에 관계 없이 근로와 노동이 통용됐다는 의미다.

1947년 근로인민당 창당식에서 기념사진을 찍은 몽양 여운형 (오른쪽) 근로인민당은 해방공간에서 가장 친 노동자적 색채를 가진 정당으로 평가받는다.[중앙포토]

1947년 근로인민당 창당식에서 기념사진을 찍은 몽양 여운형 (오른쪽) 근로인민당은 해방공간에서 가장 친 노동자적 색채를 가진 정당으로 평가받는다.[중앙포토]

 박 의원의 말대로 63년부터 ‘노동’이란 단어가 사실상 ‘공식 언어’에서 사라진 건 맞다. 박정희 정권 내내 그랬다. 박 의원의 단언과 달리 그 연원 자체는 경제적 요인보다 북한과의 체제 경쟁 차원이 크다고 봐야 한다. 북한의 조선노동당과의 적대적 관계 말이다. 북한에서 근로란 말이 사라졌듯, 남한에서 노동이란 단어가 희귀해졌다. 사회경제적 요인은 70년대 더해졌다고 봐야 한다. 하지만 이 같은 ‘금기’는 권위주의 통치가 기울어가는 80년대 후반부터 풀렸다. 남한에선 두 단어 모두 사용되는 시기가 도래했다.

정리하자면 ‘근로’는 일제의 단어가 아니다. 박정희 정권이 선호한 어휘였으나 북한의 조선노동당이란 대립재 탓이 크다. 박 의원이 내세운 법안 명분이 잘못된 사실에 기반했거나 편협한 인식에서 비롯됐다고 볼 수 있는 이유다.

현 여권에선 앞서 ‘건국절’ 논란 때도 유사한 역사 인식을 드러냈었다. 문재인 대통령이 ‘1919년 건국’을 주장하자 이를 지지하는 진보 진영에선 “1948년 건국 주장에 대해 친일파를 비호하려는 의도”라고 공격했다. 그러나 몽양 자신이 1945년 ‘조선건국준비위원회’를 조직했다. ‘48년 건국’이 오히려 당대엔 광범위 지지를 받았다는 걸 보여주는 방증이다.

A교수는 여권의 이 같은 드라이브에 ‘일본’ 딱지 붙이기라고 지적했다.
“우리 사회에서 자신들이 싫어하거나 배격하고 싶은 것에 대해 ‘일제 잔재’라는 딱지를 붙여 불온한 존재처럼 만들려는 분위기가 있는 것도 사실아닙니까. 근로는 우리말인 반면에 더불어민주당에도 사용된 ‘민주주의(民主主義)’야말로 일본에서 만든 조어인데 이것도 바꿀까요?”

유성운 기자 pirat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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