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동국(38·전북)의 애창곡은 김민종의 '어느날'이다.
지난달 전북클럽하우스에서 만난 이동국은 "1998년 프랑스월드컵 당시 많이 듣던 노래다. 당시엔 테이프로 들었고 요즘은 휴대폰으로 즐겨듣는다. 가사가 와 닿는다. 내 축구인생을 돌이켜보게 만든다"고 말했다.
'어느날'의 도입부는 이렇다.
'내일을 모르는 건 마찬가진데. 왜 나만 그 발걸음을 두려워하나. 세상을 살아감은 마찬가진데. 왜 나만 외로운듯 이 길에 서있나'.
돌이켜보면 이동국의 축구인생은 외로운 사투의 연속이었다. 3년 전 "이동국 만큼 비운한 스포츠 선수가 있을까"라고 이동국에게 물은 적이 있다. 당시 이동국은 말 끝을 흐리면서 "저 같은 선수가 또 있을까요…"라고 답했다.
이동국은 열아홉살이던 1998년, 프랑스 월드컵 네덜란드전에서 통쾌한 중거리슛을 날리며 혜성처럼 등장했다. 하지만 2002년 한·일월드컵을 앞두고 거스 히딩크 감독에게 '게으른 천재'로 낙인찍혀 최종엔트리에서 탈락했다. 이동국은 차마 한국경기를 보지 못한채 한달 내내 술로 아픔을 달래며 폐인처럼 지냈다.
2006년 독일 월드컵을 앞두고는 골감각이 절정이었지만 오른 무릎 십자인대 파열로 꿈을 접어야했다. 2010년 남아공 월드컵 우루과이와 16강전에서는 빗물을 잔뜩 먹은 잔디 탓에 결정적인 득점 찬스를 놓쳤다.
이동국의 월드컵은 그렇게 악몽으로 끝나는 듯했다.
그런데 지난 14일 이동국은 이란(8월31일), 우즈베키스탄(9월5일)과의 2018년 러시아 월드컵 아시아 최종예선 9, 10차전을 앞두고 2년10개월 만에 태극마크를 달았다. 3위 우즈베키스탄에 승점 1점 앞선 2위 한국은 조2위까지 주어지는 본선행 티켓을 위해 나머지 2경기에 사활을 걸어야한다.
신태용 대표팀 감독은 "마흔 다 된 이동국이 뛰는데 후배들이 안뛰겠나"라며 이동국을 깜짝 발탁했다. 이동국은 한물 갔다는 세상의 편견에 맞서 싸웠다. K리그 최다골(196골)을 경신하고 있고 요즘도 전매특허인 발리슛을 쏜다. "이동국의 시계는 거꾸로 흐른다는 말"까지 나왔다.
'어느날'의 중간 가사는 이렇다.
'나를 비추는 저 하늘 별들. 아직 그 별빛 속엔 꿈이 있는데. 말없이 날 지켜보는 사람들. 그 속에서 나 이대로 주저앉고 싶지 않아.'
이동국은 주저앉고 싶을 때면 아내 이수진(38)씨와 쌍둥이 딸 재시·재아(10), 설아·수아(4), 막내아들 시안(3)를 생각하며 버텼다. 아내 이수진씨는 이동국이 시련에 부딪히면 "우리 영화를 찍고 있다고 생각하자. 엔딩이 중요하다. 마지막에 웃자"고 위로했다. 설아·수아·시안이는 최근 이동국의 하얀 축구화에 형광팬으로 낙서를 한 뒤 "사랑하는 아빠에게 주는 선물이야. '빵야(축구공을 차는 소리)' 잘해"라고 응원했다.
이동국은 부상을 당하면 잘 때도 아이싱을 한다. 체중도 1998년 프로 데뷔 때처럼 80㎏대를 유지하고 있다. 늘 "축구선수라면 태극마크의 무게감을 소중하게 생각해야한다"고 말한다.
'5번의 월드컵, 출전시간 총 51분'. 이동국에게 월드컵은 여전히 풀지 못한 숙제다.
미로슬라프 클로제(독일)은 2014년 브라질 월드컵에 36세 나이로 출전해 월드컵 역대 최다골 신기록(16골)을 세웠다. 황선홍(49)도 마지막 월드컵이었던 2002년 월드컵에서 4강행을 이끌며 화려하게 은퇴했다. 이동국과 전북에서 함께 뛰었던 에닝요(브라질)는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다. 브라질의 호마리우와 호나우도도 늦게까지 선수생활을 하면서 많은 골을 넣었다. 공격수는 골로 말하면 된다"고 말했다.
이동국의 애창곡 '어느날'은 이렇게 끝난다.
'눈이 부신 햇살에. 잠이 깨인 어느 날. 내가 원한 모든게 내 눈앞에 펼쳐질거야… 황혼 빛의 먼훗날, 바람을 안고서서. 나의 지난 인생을 웃으며 말할 그 날까지. 사랑하는 사람들과 사랑하는 나를 위해서. 이젠 깨어나야해. 더 늦기 전에.'
많은 축구팬들은 이동국이 2018년 러시아 월드컵에서 축구인생을 해피엔딩으로 마무리하길 바라고 있다.
박린 기자 rpark7@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