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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오래] 손웅익의 작은집이야기(2) 아파트 생활로 우리가 잃어버린 것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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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은 공간을 만들고, 공간은 사람을 만든다.' 더위와 추위를 피하고 휴식을 취하기 위한 집, 투자와 과시의 대상으로의 집에서 벗어나 집은 살아가는 공간 그 이상의 의미를 가진다. 건축가이자 수필가인 필자를 통해 집의 본질에 대해, 행복한 삶의 공간으로서의 집에 대해 생각해 보는 시간이다. <편집자>  

북한산에서 바라본 서울. [사진 손웅익]

북한산에서 바라본 서울. [사진 손웅익]

언젠가 젊은 부부가 서울 아파트를 처분하고 용인으로 이사하려 한다면서 단독주택 설계를 의뢰한 적이 있다. 그 부부는 각각 좋은 직장을 다니고 있었다. 사는 집도 직장에서 멀지 않은 곳에 있는 좋은 아파트였다. 그들에게는 어린 딸이 하나 있는데 둘 다 직장 생활을 하다 보니 함께 할 시간이 적었다.

복도형에서 계단형으로 바뀌며 공동체적 삶 상실 #지은지 30년 넘어가면 재건축하려는 것도 문제

부부는 어느 휴일 딸을 데리고 어린이 놀이터를 가게 되었다. 그곳 모래밭을 밟은 아이는 소스라치게 놀라서 울었다고 한다. 딱딱한 콘크리트 바닥에 익숙한 아이가 발이 쑥 들어가는 모래밭이 공포로 다가온 것이다. 부부는 딸에게 자연을 선물하고 싶다고 했다. 그들은 아파트 생활을 접고 자연으로 들어갔다.

우리의 주거환경이 단독주택에서 아파트로 급속히 바뀌면서 우리가 의도하지 않게 잃어버린 것이 많다. 그 젊은 부부처럼 적극적인 이주가 아니더라도 자연은 가끔 찾아 나서면 된다. 그러나 아파트의 구조적인 문제로 인해 공동체의 삶에서 잃어버리는 것이 있다. 아파트의 동선 구조는 두 가지다. 계단과 엘리베이터를 한 층에 두 집이나 네 집 정도가 사용하는 구조를 ‘계단실 형 아파트’라 부른다. 이와 달리 복도를 따라 여러 집이 연접해 있는 구조를 ‘복도형 아파트’라 부른다.

아파트 방충망에 붙은 매미. [사진 손웅익]

아파트 방충망에 붙은 매미. [사진 손웅익]

아파트 보급 초기엔 복도형이 대세 

우리나라에 아파트가 보급되기 시작할 때는 주로 복도형 아파트를 지었다. 복도형 아파트는 엘리베이터와 계단의 숫자를 줄이고 더 많은 세대를 배치할 수 있는 장점이 있다. 반면에 세대마다 뒤 베란다를 설치할 수 없다. 지나다니는 사람들이 많아서 현관문도 조심해서 열어야 하고 복도 쪽 창문을 열어둘 수도 없다.

이렇게 복도형 아파트는 프라이버시나 공간적으로 여러 가지 단점을 가지고 있다. 이런 몇 가지 문제점 때문에 계단실 형 아파트가 복도형에 비해 고급이라고 인식되게 되었다. 그래서 요즘에는 복도형 아파트를 거의 짓지 않는다.

그러나 복도형 아파트에 살아 본 사람들이라면 ‘공동체의 삶’이라는 측면에서 매우 바람직한 구조라는 것을 잘 안다. 복도는 길이다. 긴 복도를 걸어가다 보면 같은 방향으로 가는 주민도 있고 마주치는 주민도 있다. 자연스레 얼굴이 익고 인사를 나누게 된다. 여름에는 현관문을 열어두고 발을 쳐둔 집도 많다. 마을 골목을 지나듯이 집안에서 흘러나오는 사람의 소리를 들을 수 있다.

복도형 아파트에서 빨래를 널고 있다. [중앙포토]

복도형 아파트에서 빨래를 널고 있다. [중앙포토]

그렇게 가까워진 남자들은 휴일에 등산도 가고 족구도 한다. 비 오는 날 주부들은 한 집에 모여서 부침개를 부쳐 먹는다. 집집마다 대소사를 챙겨주기도 하고 여행계를 들어 해외여행을 다녀오기도 한다. 그렇게 살다가 이사 간 사람들이 고향을 찾듯 일 년에 몇 차례 함께 모여서 식사를 한다. 이런 삶의 모습은 필자가 결혼초기 살았던 복도형 아파트 이야기인데 지금도 진행형이다. 이러한 공동체 삶이 꼭 복도형 아파트 구조에 기인한다고는 할 수 없으나 그 구조가 큰 역할을 하는 것은 틀림없다.

아파트의 구조가 계단실 형으로 바뀌면서 우리 삶의 패턴도 바뀌었다. 계단실 형 아파트는 주차장에서 내 집까지 같은 동(棟) 주민을 거의 만나지 않고 출입하는 경우가 많다. 출퇴근 시간대나 라이프 사이클이 다른 사람들은 엘리베이터를 같이 타는 경우가 없으므로 얼굴을 전혀 모른다. 현관문을 닫으면 무인도에 사는 것 같다.

중국의 공동주거 공간 ‘토루’

토루. [중앙포토]

토루. [중앙포토]

중국 남부지방 복건성에는 ‘토루’라는 특별한 공동주거가 있다. 이 주거형태의 외부구조는 적으로부터 공동체를 지켜내기 위한 가장 견고하고 합리적인 구조다. 반면 내부 공간은 공동체가 서로 소통하기에 바람직한 구조로 되어있다. 중정(中庭)에는 넓은 마당이 있고 공동 우물과 사당이 있다. 방문객을 위한 침실도 있다.

중정을 둘러싼 거대한 공동주거의 아래층은 전부 주방과 창고이며 상부층은 침실로 구성되어 있다. 토루는 거대한 도넛 형상인데 내부 중정 주위를 복도가 둘러싸고 있다. 이 복도를 따라 걸으면 이웃과 자연스럽게 소통이 된다. 놀랍게도 가장 오래된 토루는 700여 년이 되었는데 그 구조가 유지되고 있으며 아직 주민이 살고 있다고 한다.

토루 내부. [중앙포토]

토루 내부. [중앙포토]

이렇게 멋진 공동주거 토루를 보면서 우리의 아파트 문화를 생각해 본다. 우리가 추구하는 더 편리하고 완벽하게 프라이버시가 보장되는 집이 이웃과의 소통을 더 어렵게 만든다. 형태는 공동주거인데 그 안의 삶은 철저히 이웃과 단절되어 있다. 또한 지은 지 30년만 넘어가면 집을 부수고 새로 지으려고 하는 것도 문제다. 이는 우리사회에 만연한 인스턴트 문화의 연장선이라 할 수 있겠다. 급속히 확장된 아파트 문화로 인해 우리는 많은 것을 잃었다.

손웅익 프리랜서 건축가 badaspace@hanmail.net

[제작 현예슬]

[제작 현예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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