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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yle_this week]세계 정상들, 휴가 때 더 멋지네요

중앙일보

입력

업무 복장이 아닌 일상 패션을 뜻하는 '오프 듀티 웨어'. 선글라스부터 시스루 블라우스, 반짝이는 구두 등으로 멋을 낼 수 있다. [중앙포토]

업무 복장이 아닌 일상 패션을 뜻하는 '오프 듀티 웨어'. 선글라스부터 시스루 블라우스, 반짝이는 구두 등으로 멋을 낼 수 있다. [중앙포토]

흔히 정치인 패션, 혹은 패션 정치에는 '의도'가 숨어있다. 옷차림 하나에 대중을 향한 메시지나 협상 파트너를 향한 무언의 의사 표현, 혹은 이미지 메이킹을 위한 장치 등을 내포한다는 뜻이다. 그래서 정치인의 패션은 그저 평범한 옷이 아니라 해석이 필요한 '콘텐트'가 된다.
최근 몇몇 해외 정상들이 보여준 휴가 패션은 굳이 이러한 심오한 의미를 파고들지 않더라도 그 자체로 눈길을 끈다. 가장 리얼한 '오프 듀티 웨어(off duty wear)'를 보여주기 때문이다. 오프 듀티 웨어란 업무(on-duty) 외적인, 그러니까 사적인 시간에 입는 옷차림이라는 뜻이다. 늘 격식 있는 차림만 보여주던 이 정치인들이 어떻게 일상에서 변신하는가가 정치인 휴가 패션의 관전 포인트다. 특히 요즘은 운동복을 일상에서 입는 애슬레저는 물론이요, 누구나 편하게 입을 법한 스트리트 패션이 대세가 아닌가. 출근복과 평상복의 벽이 허물어진 와중이라 평소 명확하게 온 듀티 웨어만 보여주던 이들의 '메이크 오버'에 더 눈길이 갈 수밖에 없다.

삼선 슬리퍼를 신고 일정에 나서는 모델 지지 하디드. [중앙포토]

삼선 슬리퍼를 신고 일정에 나서는 모델 지지 하디드. [중앙포토]

오프 듀티 스타일의 첫 교본은 영국의 테레사 메이 총리였다. 워낙 멋쟁이 정치인으로 정평이 난 그는 '평상복도 이만큼 잘 입어'를 여실히 입증했다. 메이 총리는 7월 말부터 3주간의 휴가 중 이탈리아 북부 호숫가 도시 데센자노 델 가르다에서 첫 5일을 보냈다. 거기서 남편 필립과 함께 마을 시내를 거니는 모습이 포착됐는데, 그때 입은 옷이 분홍색 셔츠 드레스였다. 셔츠 드레스의 기본색인 블루나 화이트를 피해 쨍한 파스텔톤 컬러를 택한 과감함, 무릎 위를 살짝 올라오는 길이의 경쾌함이 돋보이는 차림이었다. 해변에서 볼 법한 화려한 무늬나 노출 없이도 세련된 도시 여행자의 이미지를 충분히 보여줬다.

7월 25일 이탈리아 북부 데센자노 델 가르다에서 휴가를 보낸 영국 테레사 메이 총리. 핑크색 드레스 셔츠로 도시 여행자의 분위기를 연출했다. [AP 연합뉴스]

7월 25일 이탈리아 북부 데센자노 델 가르다에서 휴가를 보낸 영국 테레사 메이 총리. 핑크색 드레스 셔츠로 도시 여행자의 분위기를 연출했다. [AP 연합뉴스]

독일 앙겔라 메르켈 총리는 '휴가지에서도 지킬 건 지키자'의 모범 사례였다. 7월 말부터 3주간 예정으로 휴가를 떠났는데, 장소는 벌써 9년째 가는 똑같은 곳이다. 좀더 상세히 설명하자면 7월 말 열리는 독일 남부 바이로이트에서 열리는 오페라 축제에 참석한 뒤, 이탈리아 북쪽 끝 동부 알프스의 솔다 스키 리조트에서 하이킹을 하며 시간을 보내는 코스다.
여기에서 메르켈 휴가 패션의 포인트는 두 곳에서의 차림이 확연히 다르다는 사실이다. 먼저 오페라 축제에서는 평소 입는 재킷·바지 정장 대신 드레스·스커트를 차려 입는다. 일년 중 거의 유일하게 그가 완벽하게 드레스업 한 걸 볼 수 있는 때다. 공식 석상에 나오기를 극도로 꺼리는 총리의 남편 요아힘 자우어도 이때만큼은 턱시도를 입고 동행한다. 올해 메르켈 총리는 8월 5일 잘츠부르크 음악 축제에도 화사한 롱재킷을 입고 등장했다.

7월 25일 열린 바이로이트 오페라 축제에 참석한 메르켈 총리 부부. 평소 공식 석상에서 재킷과 바지 정장을 즐겨 입는 총리도 휴가 중 공연 관람에서는 드레스 업을 했다. [EPA 연합뉴스]

7월 25일 열린 바이로이트 오페라 축제에 참석한 메르켈 총리 부부. 평소 공식 석상에서 재킷과 바지 정장을 즐겨 입는 총리도 휴가 중 공연 관람에서는 드레스 업을 했다. [EPA 연합뉴스]

8월 5일 잘츠부르크 음악축제 기간 중 '맥베드 부인' 프리미어 공연을 관람한 메르켈 총리. 화려한 패턴과 컬러의 재킷을 걸쳤다. [AFP 연합뉴스]

8월 5일 잘츠부르크 음악축제 기간 중 '맥베드 부인' 프리미어 공연을 관람한 메르켈 총리. 화려한 패턴과 컬러의 재킷을 걸쳤다. [AFP 연합뉴스]

하지만 딱 여기까지. 솔다 리조트에서 들어가는 순간 그는 180도 달라진다. 8월 2일 영국 데일리메일은 “메르켈 총리는 2013년부터 5년째 똑같은 빨간 셔츠와 흰색 바지를 입고 이탈리아 북부 산을 방문했다”며 그의 휴가 사진을 공개했다. 아무리 휴가라도 차려입어야 할 때는 제대로, 그렇지 않은 곳에서는 남들 시선에 아랑곳없이 편안한 옷을 입은 셈이다. 이처럼 장소와 목적에 따라 극과 극을 오가는 메르켈의 휴가 패션은 메이와는 또 다른 '입을 땐 제대로 입어'의 패션철학을 말해준다.

메르켈 총리는 9년째 이탈리아 북부 휴양지를 찾아 휴식을 취하고 있다. 매년 트레킹하는 모습을 담은 사진을 포스팅한 트위터. [트위터 캡처=연합뉴스]

메르켈 총리는 9년째 이탈리아 북부 휴양지를 찾아 휴식을 취하고 있다. 매년 트레킹하는 모습을 담은 사진을 포스팅한 트위터. [트위터 캡처=연합뉴스]

마지막으로 언급해야만 하는 정상은 바로 러시아의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이다. 놀러간 티를 팍팍 내고 싶을 때, 휴가를 통해 스스로 이미지 반전을 꾀할 때 그의 전략을 참고하면 좋다. 크렘린궁은 8월 1~3일 남시베리아 투바공화국에서 휴가를 보낸 푸틴의 영상과 사진을 대거 공개했다. 웃통을 벗은 채 일광욕을 즐기는가 하면 잠수복 차림으로 강에 들어가 물고기를 낚는 등 기대를 충족시키는 다채로운 장면들이었다.
하지만 역설적으로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 초콜릿 복근이나 다이어트에 성공한 몸매 등을 과시하는 일반인들과 다르지 않았다. 옷차림은 대놓고 드러내진 않았지만 면밀하게 준비한 걸 알 수 있다. 밀리터리 점퍼, 다이빙 슈트, 티셔츠에 트레이닝 팬츠 등이 그 상황에 맞춰 자연스럽게 어우러졌다. 미국 CNN방송은 “푸틴의 인간적 면모를 부각하려는 크렘린의 시도가 새삼스럽지는 않다”고 꼬집었지만 휴가를 통해 '원래 이런 사람이야'를 드러내는 홍보 효과는 톡톡히 누렸다.

1~3일 남시베리아 투바공화국에서 휴가 중 웃통을 벗고 일광욕을 즐기는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 그간 아이스하키, 행글라이더, 잠수함 타기 등을 보여준 그는 이번엔 낚시와 작살로 물고기 잡기에 도전했다. [AFP 연합뉴스]

1~3일 남시베리아 투바공화국에서 휴가 중 웃통을 벗고 일광욕을 즐기는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 그간 아이스하키, 행글라이더, 잠수함 타기 등을 보여준 그는 이번엔 낚시와 작살로 물고기 잡기에 도전했다. [AFP 연합뉴스]

푸틴 대통령은 숲 속 캠핑 활동에 맞춰 밀리터리 재킷과 모자를 착용했다. [EPA 연합뉴스]

푸틴 대통령은 숲 속 캠핑 활동에 맞춰 밀리터리 재킷과 모자를 착용했다. [EPA 연합뉴스]

카무플라주 패턴의 티셔츠와 카키색 팬츠를 입고 산책하는 푸틴 대통령. [EPA 연합뉴스]

카무플라주 패턴의 티셔츠와 카키색 팬츠를 입고 산책하는 푸틴 대통령. [EPA 연합뉴스]

사실 이들 정치인의 오프 듀티 패션에 앞서 이미 하나의 교본이 된 사례가 있다. 고(故) 다이애나 영국 왕세자빈이다. 스타일 아이콘으로서 그가 보여준 건 드레스나 정장만이 아니었다. 때로는 하버드 대학 로고 티셔츠에 쇼트 팬츠, 데님 점프 수트, 야구 모자에 웨스턴 부츠 등을 걸친 모습을 자연스럽게 보여줬다. '최대한 평범한 것이 가장 짜릿하다'는 그의 생전 발언처럼 또래 젊은 엄마들의 생기 넘치는 옷차림을 가장 먼저 선보여 왔다.

업무 외 복장 뜻하는 오프 듀티(off duty) 웨어 #슬리퍼 끌고 출근하는 요즘엔 유명무실 #평소 정장 입는 정치인 휴가 패션으로 빛나

1989년 볼캡에 재킷을 입은 다이애나 왕세자비. 최신 스트리트 패션 스타일과 흡사하다.[사진 핀터레스트]

1989년 볼캡에 재킷을 입은 다이애나 왕세자비. 최신 스트리트 패션 스타일과 흡사하다.[사진 핀터레스트]

영국 가디언은 최근에 '다이애나의 듀티 오프 스타일이 새로운 패션 뮤즈를 만든다'는 기사를 내보내며 가수 리한나와 비욘세, 그리고 알렉사 청 등 패셔니스타들의 일상복에 다이애나의 이런 옷차림이 영향을 끼쳤다고 분석하기도 했다. 이도은 기자 dangdol@joongang.co.kr

컬러 포인트가 들어간 감색 운동복에 화이트 스니커즈를 신은 다이애나의 1985년 모습.[사진 핀터레스트]

컬러 포인트가 들어간 감색 운동복에 화이트 스니커즈를 신은 다이애나의 1985년 모습.[사진 핀터레스트]

1995년 프린트가 찍힌 스웨트 셔츠에 쇼트 팬츠를 짝지은 다이애나의 스타일링은 리한나, 비욘세 등이 즐겨 입는 옷차림이다. [사진 핀터레스트]

1995년 프린트가 찍힌 스웨트 셔츠에 쇼트 팬츠를 짝지은 다이애나의 스타일링은 리한나, 비욘세 등이 즐겨 입는 옷차림이다. [사진 핀터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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