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원전, 선진국은 차근차근 … “에너지 다양화로 기초체력 키워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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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재생에너지 비중을 높이는 것은 세계적인 추세다. 미국 에너지정보청(EIA)은 2012년부터 2030년까지 세계 전력 생산 중 신재생에너지 비중이 21.9%에서 28.1%로 늘어날 것으로 전망한다. 우리는 탈원전을 선언했지만 원자력 발전도 아직 건재하다. EIA는 같은 기간 원자력 비중도 10.9%에서 12.8%로 증가할 것으로 전망했다. 글로벌 에너지 정책의 흐름은 ‘원전의 종말’이라기보다 ‘에너지 믹스(Mix)’의 조정, 즉 에너지원 다양화라고 할 수 있다.

독일, 첫 제안 후 25년 걸쳐 논의 #프랑스, 원전 비중 낮춰도 “신중” #고에너지산업 한국, 정전 땐 휘청

선진국들은 신규 원전 건설을 줄이고 노후 원전을 폐쇄하는 중이다. 대신 신재생 에너지 쪽으로 정책의 무게를 옮기고 있다. 각국이 2030년까지 정한 신재생에너지 목표 비중은 미국 25%(뉴욕·캘리포니아주 등은 50%), 영국 40%, 프랑스 40%, 일본 23% 등이다. 이런 선진국들의 ‘에너지 이동’은 오랜 시간을 두고 진행됐다. 갑자기 전 국토의 원전을 닫고 신재생에너지로 전환한 사례는 없다.

[김주원 기자 zoom@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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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원전’ 우등생으로 꼽히는 독일조차 1986년 체르노빌 원전 사고를 계기로 원전 폐지 논의가 시작된 지 25년 만인 2011년에야 탈원전 시행을 묻는 절차에 들어갔다. 이 과정에서 독일 정부는 발전사들이 원전 가동 중단으로 입은 수십조원의 손실을 물어주게 됐다. 전기요금도 크게 올랐다. 프랑스는 2025년까지 원자력 비중을 현재 75%에서 50%로 낮추는 법을 통과시켰지만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은 “(원전 중단을) 계속 논의하겠다”는 신중한 입장이다. 경제에 충격을 줄까 두려워서다.

대한전기학회장을 지낸 구자윤 한양대 전자시스템공학과 명예교수는 “에너지는 우리 생체와 같아서 끊기거나 균형이 무너지면 안 된다”며 “백업 전원이나 신재생 에너지 단가 인하 등 탈원전을 위한 기초체력부터 키워야 한다”고 말했다.

특히 한국은 철강·화학·건자재 등 고(高)에너지 산업이 뿌리를 이루는 데다 정전에 치명적인 반도체와 전자소재·부품 업종의 경제 의존도가 높아 치밀한 준비 작업이 필수다.

김창섭 가천대 에너지IT학과 교수는 “에너지는 선악의 개념이 아니다”며 “에너지 수입이 많은 한국은 에너지 안보를 지키고 새로운 먹거리를 만든다는 차원에서 원전 외에 연료의 다변화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 특별취재팀=손해용·이소아·김유경·문희철·윤정민 기자 sohn.yo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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