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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평생 흙수저’ 아니다?…계층 이동성 높아도 비관적인 까닭은

중앙일보

입력

부모의 재산과 사회적 지위가 대물림된다는 ‘수저계급론’이 확산하는 가운데, 한국의 소득계층 이동 가능성은 의외로 높다는 주장이 나왔다.
 한국경제연구원(한경연)이 8일 개최한 ‘사회이동성에 대한 진단과 대안 모색: 흙수저는 금수저가 될 수 없는가’란 세미나에서 나온 결론이다.

부모소득에 영향받는 '소득탄력성' 낮은편 #20년 전보다는 사회이동률 감소 #87년생 이후 청년층 '수저론 체감지수'↑ #

 경제개발협력기구(OECD) 회원국의 세대 간 소득탄력성을 분석한 결과 한국의 소득탄력성은 0.29로 뉴질랜드(0.29), 스웨덴(0.27)과 유사한 수준으로 나타났다.

 소득탄력성이란 부모의 소득이 1% 변화할 때 자식의 소득이 몇% 변화하는지를 의미한다. 소득탄력성이 낮을수록 부모 재산에 큰 영향을 받지 않아 소득계층의 이동가능성이 높다고 볼 수 있다.

김주원 기자 zoom@joongang.co.kr

김주원 기자 zoom@joongang.co.kr

 한국의 경우 부모의 소득이 100원 늘면 자신의 소득은 29원 늘고 100원 줄면 29원 준다고 볼 수 있다. 일본은 0.34, 미국 0.47, 독일 0.32로 우리보다 높았다. 이진영 한경연 부연구위원은 “한국의 소득탄력성은 OECD 17개 회원국 중 8번째로 낮아 소득이동이 비교적 잘 되는 나라”라고 말했다.

 박재완 성균관대 행정학과 교수(전 기획재정부 장관)도 “우리나라의 소득분배상태는 선진국 평균에 가깝다”며 “‘헬조선’이나 ‘금수저’ 주장의 근거는 약하다”고 주장했다.
 박 교수에 따르면 2011년에서 2012년까지 각 소득계층이 동일한 계층에 잔류할 확률을 추정한 결과 저소득층의 경우 29.8%, 중산층 38.2%, 고소득층 32.0%로 나타났다. 나머지는 계층 간 이동이 가능하다는 얘기다. 박 교수는 다만  외환위기 이후 계층 이동이 둔화하고 있는 것은 특히 고령층을 중심으로 빈곤이 굳어지고 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그렇다면 한국에서 최근 들어 수저계급론이 폭발적인 공감대를 얻고 있는 이유는 뭘까.
가장 큰 원인은 현재 젊은 세대가 과거에 비해 실제로 수저계급을 체감하고 있다는 점이다.

 한준 연세대 사회학과 교수는 “과거와 현재의 사회이동 비율을 분석해보니 20년 전에 비해 사회 이동률이 85%에서 81%로 감소한 것으로 나타났다”고 말했다. 즉 1990년대의 청년층(1966년~75년생)에 비해 최근 청년층(1987년~94년생)은 부모보다 더 나은 직업을 얻는 ‘상승이동’ 비율이 약 12% 포인트 줄어들었다. 반면 더 못한 직업을 얻은 ‘하강이동’ 비율은 약 8% 포인트 높아졌다. 사회이동이 부정적인 방향으로 일어난 셈이다.

 한 교수는 “문제는 주관적으로 느끼는 이동기회의 감소가 실제보다 더 크다는 점”이라고 지적했다. 통계청 조사에 따르면 ‘상위 계층으로 올라가기 어렵다’는 부정적 인식이 2005년 29%에서 2015년 51%로 10년 만에 22%포인트나 늘었다.

 박재완 교수는 “수저론이 대두된 원인은 경제적 격차보다 청년 취업난과 학력·사회적 지위의 대물림 강화, 자격·면허 등 정부규제와 이에 편승한 기득권, 비교·쏠림 성향과 상대적 박탈감, 열악한 사회자본 등을 꼽을 수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수저론을 완화하려면 청년 일자리 창출이 절실한데 그 지름길은 경제 자유화를 위한 구조개혁”이라며 “선진국의 사례를 보면 구조개혁은 일자리를 늘릴 뿐 아니라 저소득층에도 도움이 된다”고 말했다.

 한준 교수는 “사회이동 가능성을 높여야 사회 활력이 살아나고 사회가 통합될 수 있다”면서 “저소득 취약계층 자녀들의 신체·정신적 건강과 학업에 대한 열망, 인지적 능력을 돌보는 정책적 노력이 필요하며, 저소득 취약계층 거주지역이나 농어촌 지역의 학교들에 대한 집중적 지원이 이뤄져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소아 기자 lsa@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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