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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악한 인공 초지능 나온다면 …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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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43호 31면

 홍은택 칼럼

앨빈 토플러의 『제3의 물결』이 나왔을 때인 1980년 나는 고등학생이었다. 한국 사회는 제1의 물결(농업혁명)을 벗어나 제2물결(산업화)의 소용돌이 안에 있었다. 그의 말대로 제3의 물결(정보화)은 왔다. 그는 지난해 타계하기 전 공간과 속도의 혁명으로 제4의 물결이 오고 있다고 예측했다. 역사상 몇 번 안 되는 물결이 내 짧은 인생에서 너무 자주 치는 것 같다. 이러다 제5, 제6의 물결에도 휩싸이는 건 아닐지….

1·2·3·4차 산업혁명도 벅찬데 #죽을 때까지 8·9차는 갈 것 같아 #사람 능가 AI 만약 등장한다면 #인간도 가만히 있지는 않을 것

그뿐 아니다. 찰스 슈밥은 1차(증기기관의 발명), 2차(전기의 발명), 3차(컴퓨터와 인터넷의 발명)에 이어 4차 산업혁명(인공지능과 사물인터넷의 발명)이 시작됐다고 말한다. 나는 어릴 때 증기기관차를 탄 기억이 있다. 그렇다면 나는 1·2·3차에 이어 4차 산업혁명도 겪고 있는 중이고 이렇게 차수를 자주 변경하다 보면 죽을 때까지 최소 89차는 갈 것 같다. 통 크게 시대를 나누는 사람들도 있다. 기술사상가 케빈 켈리는 인공동력과 인공지능의 시대로 나누면서 2차 산업혁명이 시작됐다고 하고, MIT 경영대학원의 에릭 브리뇰프슨 교수 역시 기계가 지능을 갖게 된 지금을 2차 기계의 시대라고 한다.

칼로 물 베기 같은, 시간에 금 그으려는 시도들이 부쩍 많아진 걸 보면 뭔가 일어나고 있는 것 같다. 심지어 캄브리아기에 비유하는 사람도 있다. 5억 년 전을 전후로 1억 년 동안 고등동물들이 다양하게 출현한 그 시기와 맞먹는 변화가 일어나고 있다는 것이다. 압축 성장한 한국에서 태어난 덕분에 자고 일어나면 달라져 있는 세상을 기신기신 따라오긴 했는데 어마어마한 변화는 정작 이제부터라니 머리가 지끈거린다. 이렇게 따라갈 바에야 나도 뭔가 예측을 해 볼까나. 슈밥이나 켈리·브리뇰프슨 모두 인공지능을 중요한 변수로 보고 있는데 내가 다니는 회사도 인공지능을 연구개발하고 있어 귀동냥한 게 있다.

한국에서 인공지능이 부각된 것은 지난해 알파고와 이세돌의 바둑 다섯 판이었지만 전문가들은 2012년 10월 12일 이탈리아 피렌체에서 열린 이미지넷 컴퓨터 비전 콘테스트를 더 결정적인 사건으로 꼽는다. 스탠퍼드대 페이-페이 리 교수가 주관한 이 대회에서 딥러닝의 4대 천왕 중 한 명인 제프리 힌튼의 두 제자가 딥러닝을 써서 84.7%라는 이미지 인식률을 기록했다. 마의 80%가 깨진 것이다.

2015년에는 마침내 인간의 인식률 95%를 뛰어넘었고 지난해에는 97%까지 인식률이 올라갔다. 컴퓨터에 눈이 달린 것이다. 음성인식률에서도 서비스할 수 있는 수준인 80% 뛰어넘은 상태. 딥 러닝은 인공지능의 한 영역인 기계학습의 하위 카테고리로 신경망을 본뜬 계층적인 구조에 따라 데이터를 분류한 뒤 맞다, 틀리다를 예측하면서 결과를 학습한다.

컴퓨터 눈은 자율주행차와 의료영상판독 등에, 귀는 인공지능 스피커나 챗봇에 이미 쓰이고 있는 단계인데 후각과 촉각·미각에서는 인공지능이 사람 수준에 접근했다는 말은 들리지 않는다. 그러나 이미지처럼 방대한 빅데이터가 구축된다면 인공지능은 학습하게 될 것이다. 인공지능이 오감을 인식하는 날은 온다고 본다. 그리고 디지털 정보로 변환되면 그 감각을 복제할 수 있다. 가상현실(VR)이 가능한 이유다. 현재는 시각과 청각만으로 구현되고 있는 가상현실에 후각과 촉각·미각 정보까지 결합된다면 사람이 실제 공간에서 느끼는 감각을 재현할 수 있고, 그것은 공간을 재현하는 것과 다를 바 없다. 가지 않아도 마이애미 비치의 파도와 바람 그리고 갯내음을 감각할 수 있다면 공간을 이동한 것과 다름없다.

인공지능이 감각에 이어 사람의 감정을 읽어내는 것도 시간 문제인 것 같다. 표정의 변화에서 슬픔과 노여움·싫증·반가움 등을 읽어 낼 수 있기 때문이다(표정에 변화가 없는 무뚝뚝이의 경우는 뇌파의 변화를 감지해야 하겠지만). 사람처럼 풍부하게 표정을 짓는 것도 불가능하지는 않을 것이다. 반면 우울증이나 공항장애 같은 증세를 앓을 것 같지는 않다.

언어인식도 지난 30년보다 최근 3년의 진보가 더 빨라서 기계번역은 곧 안심하고 쓰는 단계에 진입할 것으로 본다. 회화에도 해당되는 얘기여서 학원 다니시는 분들 조금 망설일 것 같다. 영어를 배우는 것보다 딥러닝의 개발 속도가 더 빠르지나 않을까. 딥러닝이 무서운 것은 기계번역에 사용된 알고리즘은 인간의 생체정보를 분석하는 데 쓰일 정도로 범용성이 있다는 것이다. 피검사를 통해 암 발병여부를 판독한다든지 별개의 데이터에서 상관관계를 밝혀내는 데도 탁월해서 적용 분야가 무궁무진하다.

하지만 인공지능이 사람과 같아지는 것은 요원할 것이다. 인공지능이 사람의 신경망 구조를 빌렸다고 하면 신경과학자들은 신경질(?)을 낸다. 사람의 신경이 그렇게 단순한 구조로 작동하지 않을 뿐더러 결정적인 차이는 사람은 소프트웨어와 하드웨어가 합체돼 있다는 점이다. 신경과학자 이대열에 따르면 인간의 뇌는 학습을 하게 되면 시냅스의 연결로 불리는 배선을 새롭게 하게 되면서 뇌의 구조(하드웨어)까지 바뀌게 되는데 인공지능의 경우 학습을 한다고 해서 자신이 들어 있는 기계의 배선을 바꿀 수는 없다.

인공지능은 하드웨어를 만들어 낼 수 없는 반면 사람은 (섹스를 통해) 하드웨어를 만들어 낸다는 차이도 쉽게 좁히기 어렵다. 물론 스스로 설계하고 부품을 조달·조립해서 하드웨어를 만들어 내는 인공지능이 안 나올 거라고 단언하는 건 문과생인 내 능력 밖의 일이다. 일각에서는 앨런 머스크처럼 기술에 대한 이해가 있는 사람들조차 인간을 능가하고 해치는 사악한 초지능까지 나올지 모른다고 우려하고 있는 상황이다. 나는 딥러닝의 4대 천왕 중 다른 한 사람인 앤드류 응의 말을 믿는 편이다. “(그것은) 화성의 인구 과잉 상태를 우려하는 것과  다를 바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런 초지능이 나온다면…. 인간도 가만 있지는 않을 것이다. 초인간으로 진화하거나 화성으로 대피하지 않을까?

ㄴ

홍은택
카카오메이커스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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