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지털국회] 불붙은 '아파트 반값논쟁' 어떻게 풀것인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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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파트 분양가를 파격적으로 낮추는 방안이 본격적으로 논의되고 있다. 시민단체와 야당, 서울시장 후보는 물론 정부와 주택공사에서도 아파트 가격 인하 정책에 대한 아이디어를 내놓고 있다. 정치권에서 불거진 '아파트 반값공급' 제도는 토지를 임대하고 건물만 분양하는 방식이다.

지난 92년 대선 당시 정주영 후보가 제시한 '아파트 반값공급론'은 서울시나 인근에서 땅값이 싼 지역에 아파트를 짓는 것으로 '토지임대부 주택분양'(借地) 제도와는 다소 차이가 있으나, 도입방식과 취지는 엇비슷하다.

내집마련을 꿈꾸는 서민들에게는 매우 달콤한 소식이지만 일부에서는 '막대한 토지 매입재원을 고려하지 않았다' '분양가가 인하된 것처럼 보이는 눈속임이다' '탁상공론에 불과하다' 등 반론도 만만치 않게 제기되고 있다.

◆ 정치권에서 제기한 '아파트 반값 공급'... 토지와 건물 분리, 토지 50년간 임대하고 건물만 소유하는 제도

'토지임대부 주택분양' 방식에 따라 토지와 건물을 분리하여 토지를 50년간 임대하고 건물만 소유하는 이 제도는 원칙적으로 보통 지대의 20~30%를 보증금으로 내고 토지 임대료를 매년 납부하는 방식이다. 임대료는 3년에 한 번씩 물가 상승률 범위 내에서 결정하고 토지 보증금은 50년 후 돌려받는 조건이다.

토지를 임대하기 때문에 토지와 건물을 분양받는 일반 주택보다는 가격이 상당히 저렴하다. '토지임대부 주택'은 일반 주택과 마찬가지로 50년간은 상속, 매매, 증여가 모두 가능하다. 물론 증개축도 가능하다. 매매가 불가능한 일반 임대주택보다는 소유권이 강화된 점이 특징이다.

1994년 이 제도를 도입한 일본에서는 공공기관은 물론 개인도 아파트는 물론 단독주택도 일부 이런 방식으로 개발되고 있다. 특히 일본 정부는 제도의 활성화를 위해 2005년 지주가 토지 임대료를 일시불로 받는 경우에도 세금을 50년간에 걸쳐 나눠서 부과하는 세제상 특례를 주고 있다. 임대료를 선불로 받을 경우, 지주 입장에서는 토지를 매매하는 것처럼 몫 돈을 쥘 수 있다.

이 같은 '토지임대부 주택분양'은 주택공사가 최근 보고서에서 제안한 방식이다. 또 야당의 서울시장 후보가 이를 공식 제기했고 일부 시민단체 등에서도 찬성의견을 내놓고 있다.

주공 부설 주택도시연구원은 '보증금 제도를 결합한 토지임대부 주택분양 방식'을 제안하면서 절반 가격으로 내집 마련이 가능하고 토지소유권의 공공보유로 개발이익 사유화 억제와 재건축 통제가 가능하다는 이점을 제시했다. 주공은 대신 초기 투자자금의 회수기간이 길어져 사업성이 떨어진다는 점을 우려하고 있다.

토지정의시민연대도 이 같은 토지임대-건물분양 방식 제안을 환영한다면서 '강북 뉴타운, 판교ㆍ송파 신도시 등 가능한 한 모든 곳에서 토지임대-건물분양 방식을 도입할 것'을 주장했다. 주택을 소유보다 거주의 개념으로 패러다임을 바꿀 수 있는 정책으로 평가할만 하다는 것이다.

◆ 94년 일본 도입... 재테크 수단 아닌 거주 개념 패러다임, '정기 차지권제 도입' 빠를수록 좋다

하지만 '토지임대부 주택' 제도는 ‘묘책’이 아니라 ‘마술’이다. 진짜 가격을 낮추는 것이 아니라 가격을 낮춰 보이도록 하는 일종의 눈속임인 것이다. 임대기간이 경과할 수록 주택(건물)소유자의 재산 가치는 ‘0’로 떨어진다. 50년간 안정적으로 거주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지만 재테크적인 측면에서 보면 보증금을 고스란히 되돌려 받는 전세제도보다 훨씬 불리한 제도이다.

건축 후 50년이 지나 다시 재건축할 때 입주민을 쫓아낼 수밖에 없는 상황이 오면, 처음엔 분양가가 내린 것으로 보이지만 결국 부담이 비슷한 '조삼모사'가 되는 꼴'이다. 이 때문에 아파트 반값 공급 주장이 정치인들 인기영합주의로 주기적으로 나오는 이야기일 뿐이라는 지적도 있다.

토지임대부 주택공급 방식은 현행 아파트 분양정책의 일대 전환과 건설ㆍ부동산시장, 나아가 경제 전반에 커다란 영향을 미칠 수 있어 간단히 접근할 문제는 아니다. 특히 막대한 국가재정 부담 문제 등 현실적인 적용에도 문제가 있다.

주택이 재테크 수단인 한국적인 현실을 감안하면 토지임대부 주택이 뿌리 내리기는 쉬워 보이지 않는다. 자칫 최초 당첨자들만 전매 차익을 챙기는 또 다른 ‘로또’ 복권으로 전락할 가능성도 있어 보인다.

하지만 소비자 선택의 다양화, 공급확대, 토지의 활용 측면에서 본다면 ‘토지임대부 주택 제도’의 도입을 미룰 이유는 없다고 본다. 주택이 재테크 수단이 아닌 거주의 수단, 이용의 대상이 되는 시대가 도래할 수 있기 때문이다.

집값을 하루 아침에 절반으로 낮출 수 있는 묘수는 없다. 하지만 임대주택, 토지임대부 주택 등 소비자가 선택할 수 있는 다양한 제도가 마련돼 지속적으로 주택이 공급될 수 있다면 서민들의 내집 마련은 그만큼 쉬어질 것이며 집값 문제도 사회적 관심에서 벗어날 수 있을 것이다. [디지털국회 박민선]

(이 글은 인터넷 중앙일보에 게시된 회원의 글을 소개하는 것으로 중앙일보의 논조와는 무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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