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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삼에서 추출한 약 투여받으면 완치”…암 환자 속여 3억원 챙긴 ‘의료 사기단’ 구속

중앙일보

입력

말기 암환자들을 속여 불법 의료행위를 하고 3억원을 받아 챙긴 김모(56)씨 일당이 경찰에 붙잡혔다. 이들은 전문의약품 등을 합성해 만든 가짜약을 '암 완치 신약'이라고 속였다. [사진 서울지방경찰청 국제범죄수사대]

말기 암환자들을 속여 불법 의료행위를 하고 3억원을 받아 챙긴 김모(56)씨 일당이 경찰에 붙잡혔다. 이들은 전문의약품 등을 합성해 만든 가짜약을 '암 완치 신약'이라고 속였다. [사진 서울지방경찰청 국제범죄수사대]

간암 말기인 A(65)씨는 지난해 1월 암을 완치한 의사가 있다는 소문을 듣고 김모(56)씨를 찾아갔다. 자신을 의학박사라고 소개한 김씨는 A씨에게 “세포를 재생시키는 신(新)물질이 있는데, 이를 투약하면 2~3개월 내에 암을 완치할 수 있다”고 말했다. A씨는 미심쩍었지만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주사약을 맞았다.

그러나 김씨의 말은 모두 거짓이었다. 주사약은 진통제ㆍ국소마취제ㆍ항생제ㆍ비타민 등의 전문 의약품을 합성한 것으로 의약품 제조 자격이 없는 유모(50)씨가 불법으로 만든 것이었다. 김씨 역시 ‘가짜 의사’였다.

서울지방경찰청 국제범죄수사대는 말기 암환자들을 속여 불법 의료행위를 한 뒤 3억원 상당의 부당이득을 챙긴 김씨 등 4명을 ‘보건범죄 단속에 관한 특별조치법’ 위반 혐의로 검거해 이중 3명을 구속하고 1명을 불구속 입건했다고 2일 밝혔다. 이들은 ‘산삼 줄기세포를 이용한 세포재생 신약’이라는 가짜약을 만들어 주사하는 방법으로 피해자 13명으로부터 1인당 400만~7500만원의 치료비를 받은 것으로 드러났다.

사기단 총책인 김모(56)씨가 소지하고 있던 청진기와 전문의약품. [사진 서울지방경찰청 국제범죄수사대]

사기단 총책인 김모(56)씨가 소지하고 있던 청진기와 전문의약품. [사진 서울지방경찰청 국제범죄수사대]

김씨는 한의사 자격을 가진 신모(45)씨와 오모(45)씨를 고용해 가짜 치료약을 주사토록 했다. 링거나 전문의약품을 주사하는 것은 한의사의 진료 영역을 벗어난 행위다. 신씨와 오씨는 약을 투여받은 환자들의 증상이 호전되는 것을 보고 김씨를 맹신한 것으로 조사됐다. 하지만 이는 가짜약에 포함된 진통제 등의 스테로이드 성분에 의한 일시적 현상이었다.

이들은 한국과 베트남을 오가며 법망을 피했다. 자신들을 찾아온 환자들에게 “한국에서는 불법이니 베트남에 가 있으면 치료를 하겠다”고 말한 뒤 미리 임차해 둔 베트남 하노이의 한 아파트로 유인하는 수법을 썼다. 김씨는 과거에도 암환자를 대상으로 비슷한 범행을 저질러 현재 집행유예기간이었던 것으로 확인됐다.

피해자 중 2명은 치료 과정에서 숨졌다. 경찰은 과실치사 혐의는 적용하지 않았다. 경찰 관계자는 “이미 병세가 많이 악화한 상황이었다. 가짜약 때문이라고 보기엔 의학적으로 명확하게 밝혀지지 않았다”고 설명했다.

현재 김씨 일당은 범행 사실을 부인하며 서로 책임을 떠넘기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경찰은 “이들이 수익금 배분 문제로 반목하고 있다는 첩보를 입수해 탐문수사를 벌였다”고 검거 경위를 설명했다.

황선기 수사팀장은 “이들이 어떻게 전문의약품을 구입할 수 있었는지 등을 집중 수사하고 있다. 13명 외에 피해자가 더 있을 것으로 보고 부정 의료행위에 대한 수사를 이어갈 예정이다”고 말했다.

하준호 기자 ha.junho1@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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