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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취재일기

정권 바뀌어도 여전한 교육부 적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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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9면

전민희 기자 중앙일보 기자
전민희 사회1부 기자

전민희 사회1부 기자

“멱살만 안 잡았지 깡패나 다름없었다.”

“말 안 들으면 돈줄 조인다는 데 이게 어떻게 대학 자율인가.”

지난달 19일 교육부 고위 간부와의 간담회에 참석한 대학 입학처장들이 쏟아낸 불만이다. 간담회는 “올해부터 대입 전형료를 낮추겠다”는 문재인 대통령의 발언(13일)에 따라 후속 조치 마련을 위해 교육부가 마련한 자리였다. 참석 대상은 대입 전형료 수입이 많은 25개 대학 처장들.

당시 간담회를 주재한 교육부 관리는 ‘대학 자율’을 강조하면서도 “전형료 인하에 동참하지 않으면 실태 점검 대상으로 선정될 것”이라고 엄포를 놓았다고 한다. 올해 전형료 인하율을 정부의 재정 지원사업에 반영하겠다는 계획도 밝혔다. 한 사립대학 입학처장은 “에둘러 말했지만 결국 전형료 인하를 강요하는 분위기였다”고 전했다.

교육부는 지난달 27일에도 담당 과장이 대학 관계자들을 소집해 비슷한 내용을 재차 주문했다.

게다가 교육부는 각 대학에 4일까지 전형료 인하 계획을 제출하라는 요구와 함께 ‘25% 삭감’을 예시한 공문까지 보냈다. “예시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다”는 게 교육부 해명이지만 이를 곧이곧대로 믿는 대학 관계자는 사실상 없다.

[일러스트=박용석]

[일러스트=박용석]

서울 지역 한 사립대의 입학처장은 “상당수 대학이 25%를 ‘가이드라인’으로 여기면서 다른 대학 눈치를 보고 있다”고 말했다.

대통령이 대입 전형료 인하 같은 구체적 사안에 대해 정책 지시를 하는 것이 온당한가 하는 문제는 일단 미뤄두자. 교육부는 어쨌든 대통령 지시를 최대한 이행하려고 노력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하지만 그 방식이 문제다. 현 정부에서 ‘적폐’라고 꼽는 과거 정부의 강압적 행태와 다르지 않기 때문이다. 교육부는 이명박 정부 때 국립대 총장 직선제 폐지, 박근혜 정부 때 대학 정원 감축 등을 각종 정부 지원사업과 연계해 밀어붙였다. 정부가 손에 쥐고 흔드는 돈다발 앞에 대학들은 굴복했다.

여전히 ‘자율’을 내세우지만 실제로 재정 지원을 무기로 대학들을 옥죄는 행태가 하나도 달라지지 않았다. 현 정부의 ‘대학 자율성 강화’ 약속에도 어긋난다.

아무리 좋은 취지의 정책이라도 ‘일방통행’이나 ‘윽박지르기’로는 효과적으로 추진되기 어렵다. 대학 현장과 긴밀히 소통하며 최선의 길을 찾는 새로운 모습의 교육부가 절실히 요구된다.

전민희 사회1부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