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혁재사진전문기자의네모세상] 통영 판데목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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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다의 새벽을 깨우듯 여남은 척 조각배가 까불까불 바다를 흔든다. 갈퀴 단 대여섯 발 긴 장대를 물밑 바닥 깊이 집어넣고 어깨에 걸어 일렁일렁 훑어 바지락을 끌어올린다. 한려수도를 이어주는 물길이라 수시로 오가는 배들의 파문에도 여지없이 흔들리는 조각배지만 갈퀴질하는 손놀림은 하루 온종일 쉼 없다.

"요기가 바로 판데목입니더. 임진왜란 당시 왜군이 이순신 장군에 쫓겨 도망가려고 땅을 파서 물길을 넓혔다고 판데목이지예. 그때 죽은 왜군이 하도 많아서 송장목이라고도 하고요. 내가 어릴 땐 발가벗고 여기 통영에서 건너편 미륵도까지 헤엄쳐 다녔는데 벌써 환갑이 넘었다 아잉교. 바지락도 예전엔 많았었는데, 내가 수십 년을 잡아묵어서 없어졌는지 요새는 담뱃값이나 건질 뿐입니더. 그래도 배운 게 도둑질이라꼬 비가 오나 바람이 부나 갈쿠리로 물속을 긁어야 맘도 시원해지는 기라요. 요놈의 장대가 바닥에 닿을 때 사글사글하면 조개가 있지만 물컹물컹하면 아무 것도 없는 기라요. 그래도 여기 바지락만큼 시원한 것은 없을 낍니더. 통영보다 물 맑은 데가 어디 있던교."

사진엔 주제뿐 아니라 소재가 적절히 어우러져야 한다. 멀리 원경으로 처리된 조선소의 크레인과 바다에 내려앉은 햇살이 조각배와 어울려 고즈넉한 분위기를 만들어준다. 역광 상태에서 빛이 직접 닿아 생기는 렌즈 플레어도 소재로 이용하면 색다른 효과를 만들 수 있다. 조리개 수치와 렌즈 플레어의 크기는 반비례하므로 조리개를 조절하며 촬영한다.

권혁재 사진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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