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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의학 흥미로워 … ‘한국 인삼 연구’ 만화로 풀어낼 것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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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9면

“집안에 작은 마당과 나무가 있는 풍경이 참 예뻐요. 밀어서 여닫는 문도 이국적이고. 침대 없이 담요(요와 이불)만 깔고 잘 오늘 밤이 기대됩니다.”

미국 천재 만화가 크레이그 톰슨 #자전적 『담요』로 만화계 오스카상 #아날로그 좋아 종이·펜으로 그려 #“명상하며 좀 더 천천히 살아가야”

지난 24일 서울 계동의 한옥 게스트하우스에서 만난 크레이그 톰슨(42·사진)은 미국이 자랑하는 천재 만화가다. 스물여덟 살인 2003년 발표한 그래픽노블 『담요』는 이듬해 만화계의 오스카상이라고 불리는 하비상을 비롯해 아이스너상, 이그나츠상, 프랑스만화비평가협회 ACBD상 등 만화계의 주요 상들을 석권했다. 타임이 선정한 ‘2005년 역대 최고의 그래픽노블 10권’에도 선정됐다.

그래픽노블은 문학성·예술성을 겸비한 만화 장르다. 개성 있는 그림과 공감을 불러일으키는 이야기가 탄탄히 맞물려야 한다. 『담요』는 미국 위스콘신주 시골 마을에서 어린 시절을 보낸 톰슨의 자전적인 이야기다. 엄격한 부모와 복음주의 기독교 때문에 숨이 막혔던 소년에게 첫눈처럼 포근하게 다가온 첫사랑과 서늘한 성장통을 그렸다.

『담요』 의 한 페이지. 고등학교 성경 캠프에서 만난 레이나는 톰슨의 첫사랑이었다. [미메시스]

『담요』 의 한 페이지. 고등학교 성경 캠프에서 만난 레이나는 톰슨의 첫사랑이었다. [미메시스]

『담요』 이후의 작품 『하비비』 도 걸작으로 꼽힌다. 겉모습은 남녀의 러브 판타지이지만 코란과 성경, 환경보호와 산업화를 오가며 극단주의자들을 향해 정치·사회적 메시지를 던진다. 작가가 손으로 일일이 쓰고 그려 넣은 아랍 글자와 기하학적 문양은 이 책의 백미로 꼽힌다.

“현재 기독교와 이슬람의 갈등은 종교의 문제가 아닙니다. 경제(자본주의) 시스템이 파생시킨 불평등의 문제죠. 이 책을 쓰기 위해 많은 무슬림을 만나봤지만 종교가 무엇이든 그들도 우리와 같은 생각을 하는 사람들이었어요.”

톰슨은 아날로그 방식을 좋아한다. 3개월 동안 모로코·프랑스·스페인 홍보여행을 다닌 경험을 기록한 『만화가의 여행』(2004)에 들어찬 수많은 풍경과 캐릭터는 모두 그의 기억으로 완성된 것들이다. 여행 당시 그는 카메라도, 휴대폰도 없었다. 13년이 지난 지금도 그는 꿋꿋이 종이와 펜만으로 그림을 그린다.

“더욱더 천천히 살아야겠다는 다짐 같은 거죠. 요즘처럼 ‘사진 찍기’에 중독된 시대일수록, 명상을 하듯 특별한 장소·시간·대상과 충분히 소통하고 관계를 맺기 위해 정성을 들이는 거죠. 아직도 어떤 나라들에선 사진을 찍히면 영혼을 뺏긴다고 믿는데 일리가 있는 말이에요. 허락 없이 다른 사람을 찍는 행위는 폭력이고, 과시욕을 위한 사진 찍기는 영혼이 없는 행위죠.”

톰슨의 그림은 독자들에게도 천천히 깊게 사유하며 살 것을 권한다. 책마다 그림이 들어앉은 공간은 여유가 많고, 스토리 진행도 느리다. 톰슨의 그래픽노블이 ‘어른들을 위한 만화’로 불리는 이유이자, 500페이지를 훌쩍 넘는 두께를 갖는 이유다.

지난 23일 폐막한 제20회 부천국제만화축제 초청으로 처음 한국을 찾은 그는 이번 여행에 동생 필과 동행했다. 두 사람은 지금 ‘인삼’을 주제로 이야기 구상 중이다.

“위스콘신은 미국 내 ‘인삼의 고장’이에요. 우리는 6살, 9살 때 인삼밭에서 아르바이트를 한 적도 있죠. 인삼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한의학에선 양의학과 달리 문제의 원인과 해법이 모두 연결돼 있다고 믿는다는 게 흥미로워 인삼 연구를 시작했죠.”

두 사람은 인터뷰 다음날 금산 인삼축제도 둘러봤다. 9월 위스콘신 인삼 페스티벌에 참가한 후 겨울부터 본격 작업에 들어갈 예정이다. 톰슨의 새 작품 속에서 한국과 인삼은 어떤 이미지로 그려질까.

글=서정민 기자, 사진=오종택 기자 meantre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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