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말기 자급제 거론에 떨고 있는 골목 대리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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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6면

정부가 가계 통신비 인하에 팔을 걷어붙인 가운데 단말기 ‘완전자급제’가 대안으로 떠오르고 있다. 국내 이동통신업계 1위인 SK텔레콤이 지난 27일 “완전자급제 도입을 검토할 수 있다”고 밝히면서다. 이상헌 SK텔레콤 CR전략실장은 이날 콘퍼런스콜에서 “정부와 논의해 (통신비 인하에 대한) 합의점을 도출하겠다”며 “단말기 (완전)자급제 등 모든 가능성을 열어 놓을 것”이라고 했다. 완전자급제가 정부와 이동통신사 간 극명한 입장 차이를 줄이는 절충안이 될 수 있음을 언급한 것이다.

통신비 인하 대안 놓고 셈법 엇갈려 #통신 3사선 SK텔레콤만 긍정 반응 #소비자는 불필요 지출 줄일 수 있어 #제도 바뀌면 대형 유통망 중심 재편 #영세업자 “6만 명 생계 위협” 반발

완전자급제의 핵심은 소비자에게 불리한 유통구조 개선이다. 지금껏 이통사는 삼성전자·LG전자 같은 제조사로부터 휴대전화를 구입한 뒤 대리점 등을 통해 소비자에게 판매해 왔다.

완전자급제는 휴대전화 유통을 제조사가 맡는 제도다. 이통사가 중심이 된 중간유통 과정은 없어진다. 그간 이통사들은 타사에 점유율을 빼앗기지 않기 위해 막대한 ‘판매장려금’을 지급해 가며 유통망(대리점·판매점) 유지에 힘써 왔다. 완전자급제가 도입되면 이런 비용이 줄어들면서 이통사가 통신비를 깎아 줄 여력이 커진다.

소비자 입장에선 이통사들이 단말기와 이동통신 서비스를 묶어 팔 때 발생하던 불필요한 낭비를 줄일 수도 있다. 금액을 한정하는 특정 요금제에 의무적으로 가입할 필요가 없어져서다. 윤문용 녹색소비자연대 ICT정책국장은 “이통사들이 가입자 유치를 위해 차별화된 요금제를 내놓는 등 가격 경쟁이 치열해지면서 소비자 혜택도 늘어날 것”으로 관측했다.

SK텔레콤이 완전자급제에 수긍하는 태도를 보인 이유는 두 가지로 해석된다. 먼저 조 단위로 들던 마케팅 비용을 아껴 신사업에 투자하는 편이 낫겠다는 속내다. SK텔레콤은 박정호 사장이 올 초 인공지능(AI)·사물인터넷(IoT) 등에 11조원을 투자하겠다고 밝히는 등 신사업 확장에 의욕적이다.

다음으로 정부에 ‘성의’는 보이되 비교적 피해를 덜 보는 쪽이 완전자급제라는 속내다. 정부는 6월 국정기획자문위원회가 내놨던 ‘선택약정 요금 할인율 상향(20→25%)’ 방안을 그대로 적용, 9월부터 시행키로 한 상태다. 국내 선택약정 가입자 수는 약 1300만 명으로 추산된다. 이통사들은 그만큼 수익성에 큰 타격을 받을까 우려하고 있다. SK텔레콤 외에도 KT·LG유플러스 등 이통 3사가 “법이 보장하는 사업자의 자율성을 침해할 수 있다”며 소송 가능성까지 제기하고 나선 이유다. 다만 제조사나 다른 이통사는 미온적인 입장이다. 삼성전자와 LG전자는 유통전략 수립부터 유통망 관리까지 직접 신경과 비용을 쓸 부분이 많아지는 상황이 달갑지 않다. 삼성전자 관계자는 “수요를 예측하고 자체 유통망을 확대하면서 개별 소비자를 상대해야 하는데 쉽지 않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KT와 LG유플러스도 자칫 SK텔레콤만 유리해지지 않을까 조심스러운 분위기다.

더 큰 문제는 대리점 등 영세 유통업자들의 거센 반발이다. 이들은 대형 유통망을 중심으로 시장이 재편되면서 골목상권이 위축될 것을 우려한다. 전국이동통신유통협회 관계자는 “6만 명에 달하는 중소 상인 대부분이 생계를 유지하기 어려워질 것”이라고 지적했다. 김민철 정보통신정책연구원 연구위원은 “유통업자들의 피해를 최소화하면서 소비자에게 실익이 돌아가도록 정책 방향을 연구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단말기 자급제

휴대전화 유통을 이동통신사 대신 제조사가 맡는 제도. ‘제조사→이통사→대리점→판매점’으로 이어지던 이통사 중심의 중간유통 과정을 없앤다는 취지다. 이통사의 판매장려금을 줄이고 가격 경쟁은 부추겨 통신비 인하를 유도할 수 있는 제도로 꼽힌다.

이창균 기자 smile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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