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유국의 꿈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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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제1막. 『우리 나라 영일만 부근에서 처음으로 석유가 나왔다』76년 정월 박정희 대통령은 연두 기자회견에서 흥분된 마음을 가라앉히고 이렇게 발표했다.
두차례의 극심한 오일 쇼크를 겪은 국민들은 우리도 산유국이 되었다는 기쁨속에 온나라가 축제기분으로 들떴다. 매스컴들은 「석유원년」이라는 표제까지 붙이고 연일 특집을 마련하기에 바빴다.
정밀물리탐사 작업도 거치지 않은 채 성급하게 발표한 「영일만 석유」소동은 그러나 어처구니 없는 해프닝에 그치고 말았다.
제2막. 84년 8월하순 7만t급의 유조선 한척이 여수항에 입항했다. 인니 마두라유전에서 우리 손으로 뽑아낸 원유 약43만 배럴을 싣고 온 유조선이었다. 이때도 「석유 자급시대」가 열렸다고 온 나라가 떠들썩했다.
정부가 해외유전개발사업에 착수, 81년부터 개발한 마두라 유전은 84년부터 하루 1만 배럴 규모의 원유를 뿜어내기 시작 했지만, 6개월도 못돼 일산 2천∼3천 배럴로 줄어들었다.
두 번째 해프닝이었다.
제3막. 동자부는 8일 울산 동남쪽 대륙붕 6광구에서 대규모 천연가스층을 발견했다고 발표했다. 그러나 매장량과 경제성은 내년 11월께나 가야 판명된다고 한다.
이번 가스층은 사전에 물리탐사를 충분히 했고, 또 석유부족 가능성이 높은 근원암도 확인했다. 그래서 영일만 때 보다 확률이 높은 것은 사실이다.
원유가 펑펑 쏟아져 나오는 유전을 발견하고도 끝내 석유개발에 실패한 사례가 세계 각국의 석유개발에는 허다하다.
하루 1백25만 배럴의 원유를 뿜어 내 「미국의 경이」라고 떠들썩했던 루카스 유전은 몇 달만에 매장량이 바닥났다.
일본에서도 대정3년에 흑천 유전을 발견, 「국가의 경사」라고 온 국민이 흥분했지만, 얼마 안가 석유가 말라버렸다.
석유의 경제성은 매장량과 입지조건, 유질, 채유시설 및 탐사경비, 산유기간 등에 의해 결정 된다. 또 석유의 국제시세와 수요에 따라 경제성이 좌우되기도 한다.
그러나 보통 시추구멍 하나에 3억 배럴의 원유가 매장되어 있고 하루 평균 5만 배럴 이상 뽑아내야 경제성이 있다고 한다.
제발 이번 「돌고래Ⅲ」지역의 가스는 또 한차례의 해프닝으로 끝나지 말았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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