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강한 당신] 툭하면 재발 요로감염, 치료 안 하면 패혈증 위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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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주용 교수의 건강 비타민

요로(尿路)는 소변이 지나가는 길이다. 소변은 콩팥에서 만들어져 신우에 잠시 머물렀다 요관을 통해 방광에 모인다. 일정한 양이 되면 요도로 배출된다. 콩팥에서 요도까지가 요로다. 정상적인 소변은 세균 없이 깨끗하다. 또 위(콩팥)에서 아래(요도)로만 흐른다.

여성 절반 평생 한 번 이상 걸려 #성병으로 오해받을까 쉬쉬하다 #진단·치료 타이밍 놓쳐 병 키워

요로가 세균에 감염되는 경우가 있다. 주로 대장균에 감염된다. 대장균은 대장 안에 있을 땐 문제를 일으키지 않는다. 그러나 몸 밖으로 나오면 식중독 같은 여러 질환을 일으킨다. 이 대장균이 요로에 침입해 생기는 질환이 ‘요로감염’이다.

대장균이 어떻게 요로에 침입할까. 배변 활동을 할 때 장내 대장균 일부가 대변과 함께 배출된다. 용변 후 뒤처리를 깔끔하게 하더라도 항문 주변에는 대장균이 서식할 가능성이 있다. 요로감염으로 생기는 질병에는 방광염과 급성 신우신염(깔때기콩팥염)이 있다. 방광염은 말 그대로 방광에 염증이 생기는 것이다. 성관계 중 대장균이 요도를 통해 방광으로 이동하면 감염이 발생할 수 있다. 대장균의 일부가 신우로 거슬러 올라가 염증을 일으키는 것을 신우신염이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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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로감염은 여름에 많다. 땀이 많이 나 위생 상태가 안 좋을 때 감염이 잘 된다. 건강한 상태에서는 대장균이 일부 요도로 들어가도 감염되지 않는다. 면역 체계가 잘 작동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만성질환·노화로 면역력이 약해졌을 때는 얘기가 달라진다.

요로감염은 몇 가지 특징이 있다.

첫째, 여성 환자가 압도적으로 많다. 여성 2명 중 1명은 평생 한 번 이상 요로감염을 경험한다. 여성의 15%는 매년 요로감염에 걸린다. 건강보험심사평가원에 따르면 지난해 급성 신우신염 환자는 20·30·40대 여성이 같은 연령대 남성보다 약 12배 많았다. 방광염 환자의 94%는 여성이다.

여성은 남성과 달리 항문과 요도가 가깝다. 대장균이 요도로 이동하기 쉽다. 또 폐경·요실금은 요로감염 발병 위험을 높인다. 폐경 이전 여성의 요도와 질에는 세균 감염을 막아주는 방어막이 있다. 유산균이 대표적이다. 그런데 여성호르몬(에스트로겐)이 줄면서 질 표피가 얇아지고, 유산균이 줄면서 질의 산도가 증가해 대장균이 살기 좋은 환경이 만들어진다.

미국 워싱턴대 연구(2004년)에 따르면 폐경 여성이 월 1회 이상 요실금을 하면 요실금이 없는 여성에 비해 요로감염 위험이 1.74배 높았다. 그래서 성인용 기저귀를 쓸 때 주의해야 한다. 젖은 기저귀를 오래 착용하면 대장균이 증식해 요로감염 위험이 높아진다.

둘째, 요로감염은 잘 재발한다. 요로감염 환자의 25%에서 한 번 이상 재발한다. ‘재발성 요로감염’은 12개월 동안 3회 이상 요로감염이 발생하는 것을 말한다. 여성은 생식기 구조 때문에 요로감염에 취약한 데다 대장균 자체를 완전히 없앨 방법이 없다.

셋째, 성병으로 오해를 받을까봐 치료하지 않고 쉬쉬한다는 점이다. 요로감염은 비뇨·생식기계에 발생한다. 또 요로감염의 일부가 성관계와 관련이 있어 미혼 여성은 드러내기를 주저하는 경우가 많다. 이 때문에 조기 진단과 치료의 타이밍을 놓치는 경우가 적지 않다. 이렇게 되면 치료가 잘 안 되고 잘 재발한다.

일부는 요로감염을 무시한다. 삶의 질을 떨어뜨리는 질환 정도로만 생각한다. 하지만 고령 여성은 요로감염 때문에 패혈증이 올 경우 제때 치료하지 않으면 사망에 이를 수 있다.

평소 요로감염 재발이 잦았던 이모(70·여·서울 관악구)씨는 얼마 전 옆구리 통증과 발열이 나타났는데 감기와 허리 디스크 때문에 생긴 요통으로 여겨 해열진통제를 복용했다. 하지만 증상이 점점 심해져 체온이 38도까지 올라 병원을 찾았다. 소변에서 다량의 세균과 염증물질이 검출됐다. 혈액의 염증 수치도 높았다. 요로감염에 의한 패혈증이었다. 항생제 치료를 빠르게 시작해 큰 합병증 없이 좋아졌지만 자칫 심각한 결과로 이어질 뻔했다.

요로감염 예방법으로 소개된 것들이 꽤 있다. 물을 많이 마신다거나 성관계 후 바로 소변을 본다거나 헐렁한 속옷을 입거나 욕조에서 목욕하지 않는 것 등이다. 배변·배뇨 후 앞에서 뒤로 닦거나 소변을 참지 않은 것도 있다. 비데도 마찬가지다. 이 중 효과가 증명된 것은 없다. 생활 속에서 실천하기 쉽고 위생에 도움이 되므로 이런 방법들을 쓰는 게 나쁘지는 않다.

◆이주용 교수

한양대 의대 졸업, 연세대 의대 교수

이주용 세브란스병원 비뇨기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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