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이 닫히는 순간. 눈이 빠르게 돌아가며 주변을 살핀다. 지금 이 자리만 아니면 살 것 같다. 탈출을 결심한다. 톰슨가젤을 노리는 아프리카 치타처럼, 2루를 노리는 1루 주자처럼 자못 비장하다. 이런. 주변을 살피는 또 다른 눈과 마주친다. 마음이 다급해진다. 심장은 콩닥콩닥, 이마에선 땀이 또르르. 빈자리로 잽싸게 건너가 앉으려는데 의자에 얹어진 잡지 한 권이 눈에 들어온다. 그리고 들려온 옆자리 승객의 한 마디 “일행이 앉을 자리입니다. 제가 먼저 맡았습니다.” 머쓱한 표정으로 머리를 긁적이며 자리로 돌아온다. 비행기 이륙 전, 이코노미석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풍경이다.
장거리 해외여행은 물론 좋다. 하지만 2시간짜리 영화를 보는 극장 좌석보다도 더 비좁은 이코노미 좌석에서 옴짝달싹 못하고 앉아 있는 건 괴롭다. 그걸 알기에 비행기 탑승 전 모든 이코노미 승객은 다음 두 가지를 간절히 바란다. 비행기가 텅텅 비어있길, 그리고 제발 내 좌석 옆자리에는 아무도 앉지 않길. 때론 한 열 통째로 침대처럼 쓰는 횡재를 기대하기도 한다. 이런 사람들의 심리를 읽은 항공사들이 최근 관련 서비스를 내놓고 있다. 이른바 ‘옆좌석 구매 서비스’ 혹은 ‘옆좌석 비우기 서비스’ 이야기다.
국내에서 옆좌석 구매 서비스를 가장 먼저 선보인 건 제주항공이다. 2014년 제주항공은 5000원만 더 내면 옆 자리를 비워갈 수 있는 서비스를 국내선부터 시작했다. 지금은 국내선 1만원(이하 편도 기준), 일본 노선 2만원, 홍콩·마카오 노선 3만원, 동남아시아 노선 5만원을 더 내면 옆 좌석을 살 수 있다. 야간에 운행하는 괌·사이판·방콕 등 일부 노선은 옆 좌석 2개와 베개, 담요를 포함한 ‘꿈꾸좌’ 패키지를 이용할 수 있다. 편도 기준 10만원이다. 제주항공 윤예일 차장은 “좌석이 배정되지 않는 2세 미만 유아를 동반한 부모와 신혼부부가 옆좌석 구매 서비스를 많이 이용한다”고 설명했다.
제주항공 외에도 점점 빈 좌석을 파는 항공사가 늘고 있다. 이스타항공은 노선에 따라 1만~4만원을 받고, 티웨이항공은 국제선에 한해 1만5000~3만5000원을 받고 옆좌석을 판다. 다만 세 항공사 모두 미리 빈 좌석을 사두는 건 불가능하다. 출발 당일까지 남은 자리가 있는 경우에만 공항에서 살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국내 항공사가 아니라면, 출발 당일이 아니라 일찌감치 옆좌석을 살 수도 있다. 일본 저비용항공사인 피치항공이 대표적이다. 출발 24시간 전까지 콜센터로 전화해 예약하면 된다. 국제선 편도 한 좌석 기준으로 4만3000원이다. 회원 적립금인 ‘피치 포인트’를 써도 된다.
베트남항공·에어아시아 엑스 등 11개 항공사의 빈 좌석을 예약할 수 있는 흥미로운 사이트도 있다. 바로 옵션타운(optiontown.com)이다. 이코노미 좌석을 구매한 승객에 한해 옆좌석 구매, 비즈니스 좌석 업그레이드 등 서비스를 제공한다. 1000원을 내고 빈 좌석 구매 신청을 해두면, 출발 3일 전 이메일로 통보를 해준다. 좌석 구매를 결정한 뒤, 결제하면 된다. 만약 빈 좌석이 생기지 않는다면 1000원을 돌려받을 수 있다.
가령 에어아시아 엑스의 경우, 인천·부산~쿠알라룸푸르 노선 빈 좌석 1개가 1만5000원이다. 비즈니스 좌석 업그레이드는 처음부터 비즈니스 좌석을 사는 것보다 훨씬 저렴하다. 베트남항공은 편도에 약 20만~30만원을 추가하면 프리미엄 이코노미나 비즈니스 좌석으로 업그레이드 할 수 있다. 물론 출발 3일 전까지 빈 좌석이 있을 때에 한해서다.
이보다 더 싼값에 비즈니스 좌석을 경험할 수 있는 기회도 있다. 아시아나항공이 이코노미 좌석 구매자를 대상으로 3만~5만원만 추가하면 비즈니스 좌석으로 업그레이드 해주는 이벤트를 10월28일까지 진행한다. 500만원을 호가하는 미국·유럽행 비즈니스 좌석을 내주는 건 아니다. A321 기종을 투입하는 인천~창사(長沙), 부산~베이징(北京), 부산~사이판 등 단거리 13개 노선에 한해서다. 기내식, 수하물 등 서비스는 이코노미 수준으로 제공되니 조금 넓은 자리를 이용하는 것으로 만족해야 한다.
에어뉴질랜드는 ‘스카이 카우치’라는 독특한 좌석을 판매한다. 이코노미 3좌석을 소파처럼 눕기 편하게 디자인했다. 이 서비스는 어른 세명이 이용할 순 없다. 대신 어른 두 명과 어린이 한 명, 혹은 어른 한 명과 어린이 두 명을 기준으로 20만원(편도)을 추가 지불하면 이용할 수 있다. 어른 두 명, 어른 한 명과 어린이 한 명이 세 좌석을 이용하는 것은 가능하다. 60만~80만원(편도)이 추가된다. 물론 혼자서 3좌석을 모두 사는 것도 가능하다. 이코노미 항공권을 사고도 추가로 100만원 이상 지불할 의사가 있다면 말이다.
최승표 기자 spchoi@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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