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靑 “국민 알권리 우선” 공세 … 野 “여론몰이 아니냐”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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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41호 11면

‘박근혜 청와대’ 문서 공개 일파만파

박수현 청와대 대변인이 지난 20일 춘추관 대브리핑실에서 박근혜 정부 당시 생성된 문건이 국정상황실과 안보실 등에서 대량으로 발견됐다고 발표하고 있다. 청와대사진기자단

박수현 청와대 대변인이 지난 20일 춘추관 대브리핑실에서 박근혜 정부 당시 생성된 문건이 국정상황실과 안보실 등에서 대량으로 발견됐다고 발표하고 있다. 청와대사진기자단

박근혜 정부 때 만들어진 청와대 문건이 공개됐다. 은밀하게 유출된 게 아니라 현 정부의 청와대 대변인을 통해서다. 박수현 대변인은 지난 14일과 17, 20일 등 세 차례에 걸쳐 청와대 민정·정무수석실 등에서 발견된 문건의 규모와 내용을 공개했다. “최순실 국정 농단 관련 자료로 판단된다”면서다.

전 정권 뇌관 허술한 관리 미스터리 #“재판 중 자료 공개 부적절” 지적도 #역풍 우려 속 야 3당 대응 온도 차

정치권에서는 현직 대통령 탄핵과 조기 대선이란 특수한 상황이 빚어낸 결과라는 분석이 적잖다. 실제로 문재인 정부가 인수위도 없이 출범하면서 박 전 대통령과 청와대 관계자들은 쫓기듯 집을 비워줘야 했다. 청와대 구석구석에 각종 서류 뭉치 등 흔적이 남아 있는 이유다.

관전 포인트는 세 가지로 좁혀지고 있다. 문건의 작성 주체는 누구고 내용은 얼마나 부적절한가, 청와대의 대국민 발표는 과연 적절했는가, 향후 관련 재판이나 정국 운영엔 어떤 영향을 미칠까 등이다.

“안보실 문건 검토에 굉장히 시간 걸릴 것”

청와대의 설명에 따르면 지난 3일 민정비서관실 공간을 재배치하던 중 한 캐비닛에서 300여 종의 문건이 발견된 게 사건의 시작이다. 청와대는 해당 문건이 대통령기록물인지 여부를 판단하기 위해 열흘 넘게 검토 작업을 했다. 그 결과 대통령기록물은 맞지만 비밀 표기가 없기 때문에 대통령지정기록물은 아니라고 판단했다. 대통령지정기록물로 지정되면 일정 기간 외부에 공개할 수 없다.

지난 14일 브리핑에서 박 대변인은 해당 문건에 세월호 유가족대책위의 대리기사 폭행 사건, 삼성그룹 경영권 승계 지원 방안 검토, 국민연금기금 의결권 행사 지침 등의 내용이 포함돼 있다고 밝혔다. 고 김영한 민정수석의 자필 메모로 추정된다며 일부 내용을 그대로 공개하기도 했다. 박 대변인은 “문건 내용이 위법 소지가 있는 지시를 담고 있다고 판단했고, 국민의 알 권리 보장을 위해 관심도가 높은 사안에 대해 공개를 결정하게 됐다”고 발표의 정당성을 강조했다.

브리핑 직후 정무수석실에선 1361건의 문건이 추가로 발견됐다. 18일에는 국정상황실에서 문서 504건이 나왔고 국가안보실에서는 이보다 더 막대한 분량이 발견돼 분류 작업을 하고 있다고 청와대는 밝혔다. 청와대의 릴레이식 브리핑이 계속되자 야당에선 “박 전 대통령 재판에 영향을 미치려고 청와대가 여론몰이를 하는 것 아니냐”는 비판이 나왔다. 일각에선 특수용지와 파쇄기까지 사용하면서 보안에 신경을 썼던 박근혜 정부가 과연 뇌관이 될 만한 문건을 이처럼 허술하게 관리했겠느냐는 의구심도 제기된다.

이 때문에 청와대가 추가 발표에 신중을 기하고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청와대 관계자는 “안보실에서 발견된 문건들을 발표할 경우 국익에 얼마나 영향을 미치는지 따져보고 있다”며 “발표하지 않는 쪽으로 의견이 모이곤 있지만 단정적으로 말할 수는 없는 단계다. (검토에) 굉장히 시간이 걸릴 것 같다”고 말했다.

야당의 대응에는 온도 차가 있다. 가장 반발이 심한 건 자유한국당이다. 김태흠 최고위원은 “대통령지정기록물 여부조차 판단할 수 없다면서 문건을 먼저 공개하고 특검에 사본을 전달한 건 대통령기록물법 위반”이라고 반발했다. 19일엔 박 대변인을 공무상 비밀 누설 및 대통령기록물관리법 위반 등의 혐의로 검찰에 고발했다. 전희경 대변인은 “위법성 지적과 고발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여론전을 계속하는 청와대는 치외법권이라도 가진 것이냐”고 비판했다.

바른정당은 “문건의 존재 자체가 본질”이라는 데 공감하면서도 정치적으로 악용될 여지는 차단하겠다는 입장이다. 이혜훈 대표는 22일 중앙SUNDAY와의 통화에서 “청와대가 문건을 조작했을 것 같지는 않다”며 “다만 문건의 작성자와 작성 시점, 남겨진 경위 등은 명확히 밝혀져야 하고 그 후 검찰이 증거로 쓸 수 있는 건 쓰면 된다”고 말했다. 이 대표는 “진실을 규명하는 게 최우선인 만큼 청와대든 여야든 문건을 정쟁의 도구로 이용해선 안 된다”고 덧붙였다.

국민의당도 원론적 수준에서 비판적 입장을 견지하고 있다. 박주선 국민의당 비대위원장은 “청와대가 수사기관도 아닌데 재판이 진행 중인 상황에서 자료를 공개하고 중계방송하는 것은 대단히 잘못됐다”고 지적했다. 하지만 당내엔 제보 조작 사건으로 위기에 처한 당의 재정비가 발등의 불인 상황에서 굳이 청와대와 각을 세울 필요는 없다는 현실적 판단도 만만찮다.

야당은 이번 사안을 추경안 심사 등 다른 현안과 연계하지 않았다. 문건의 내용을 정확히 모르는 상황에서 청와대가 정략적으로 침소봉대했다고 섣불리 공격했다간 되레 역풍을 맞을 수도 있는 만큼 좀 더 추이를 지켜보겠다는 신중한 입장이다.

파장 컸던 정윤회·NLL 등 청와대 문건

청와대 문건이 세상 밖으로 나온 건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2014년 말에는 세계일보가 청와대 내부 문건을 입수해 보도하면서 파장이 일었다. 박근혜 정부 비선 실세 의혹을 받던 정윤회씨가 이른바 문고리 3인방(정호성·이재만·안봉근 전 청와대 비서관)과 자주 만나며 국정에 개입했다는 의혹을 담은 민정수석실 산하 공직기강비서관실의 문건이었다. 최순실의 전 남편인 정씨는 1998년부터 2004년까지 박 전 대통령을 지근거리에서 보좌했다. 박 전 대통령은 당시 “찌라시에나 나오는 얘기들에 나라 전체가 흔들리는 건 정말 부끄러운 일”이라며 검찰의 철저한 수사를 지시했다.

검찰은 이후 조응천 전 청와대 공직기강비서관과 문건 작성자인 박관천 전 경정 등을 공무상 비밀 누설 등의 혐의로 기소했다. 하지만 조 전 비서관은 무죄 판결을 받았고 박 전 경정은 17개 문서 중 1건의 유출만 유죄로 인정돼 징역 8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았다.

2013년에는 이미 국가기록원으로 넘어간 대통령기록물을 열람하는 사건도 벌어졌다. 2012년 대선을 앞두고 “노무현 전 대통령이 2007년 남북 정상회담에서 서해북방한계선(NLL) 포기 발언을 했다”는 주장이 제기되면서다. 그해 7월 여야는 국회 본회의 표결을 거쳐 국가기록원에 자료 열람을 공식 요구하고 열람위원단을 구성해 자료 확보에 나섰지만 회의록 원본은 끝내 발견되지 않았다.

그러자 새누리당은 검찰에 수사를 의뢰했다. 검찰은 노 전 대통령 지시로 회의록이 고의로 폐기됐다는 결론을 내렸다. 백종천 전 청와대 외교안보실장과 조명균 전 안보정책비서관(현 통일부 장관) 등도 불구속 기소했다. 새누리당은 당시 의원이던 문재인 대통령도 노무현 정부 민정수석으로서 책임이 있다며 함께 검찰에 고발했지만 결국 불기소 처분됐다.

김경희 기자 amator@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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