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딸의 앨범 꺼내든 대구 여대생 아버지 “19년간 한 풀어주려 뛰어다녔는데 … ”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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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2면

19일 오후 대구시 중구 남산동. 정현조(69)씨의 집 거실은 한낮에도 어둠이 내려앉아 있었다. 19년 전 대학 1학년생이던 큰딸 정은희(당시 19세)양을 떠나보낸 아버지의 얼굴엔 아직도 회한이 가득해 보였다.

단죄 못한 성폭행 사망사건에 분노 #“당시 현장 근처서 딸의 속옷 발견 #경찰·검찰 수사 믿을 수가 없었다 #진실 밝혀져야 공소시효 끝나는 것”

정씨는 오랜만에 딸이 졸업한 고교 앨범을 꺼냈다. 컴컴한 거실에서 딸의 얼굴을 찾아 쓰다듬으며 연신 고개를 주억거렸다.

정양은 1998년 10월 17일 오전 5시30분쯤 대구 구마고속도로(현 중부내륙고속도로)에서 25t 화물차에 치여 숨졌다. 단순 교통사고는 아니었다. 정양이 차에 치이기 전에 성폭행당한 흔적이 발견됐다. 언론은 이 사건을 이른바 ‘대구 여대생 성폭행 사망사건’이라고 불렀다.

검경 수사가 이어지고 유가족이 백방으로 뛰어다녔지만 15년 가까이 범인을 밝혀내지 못했다. 그러다 2013년 6월 스리랑카인 K(51)가 청소년 성매매 알선 혐의로 검찰 조사를 받으면서 묻힐 뻔한 사건 해결의 실마리가 잡혔다. K의 유전자(DNA)가 정양 속옷에서 나온 DNA와 일치하는 것으로 드러나면서다. K는 기소됐다.

하지만 대법원은 지난 18일 K에게 적용된 특수강도강간 혐의에 대해 무죄 판결했다. “합리적 의심을 배제할 수 있을 정도의 증거가 부족하다”는 이유였다.

19년 전 ‘성폭행 사망사건’으로 딸을 잃은 정현조씨가 딸의 졸업앨범을 보고 있다. [프리랜서 공정식]

19년 전 ‘성폭행 사망사건’으로 딸을 잃은 정현조씨가 딸의 졸업앨범을 보고 있다. [프리랜서 공정식]

범인으로 지목된 K에게 대법원이 무죄 확정 판결을 한 데 대해 정씨는 “이미 예상했던 판결”이라고 말했다. 의외의 반응이었다. 하지만 그는 “19년간 진실을 밝혀내기 위해 뛰어다니면서 K가 진범이 아니라는 결론에 도달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진실이 밝혀질 때까지 공소시효라는 것은 없다”고 말했다. 문재인 정부가 이 사건을 재수사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다음은 정씨와의 일문일답.

처음 사건 소식을 접했을 때 상황은.
“98년 10월 17일 오전 6시쯤 시장에서 하루 장사를 시작할 준비를 하고 있었다. 아이 엄마가 ‘딸이 배가 아파 입원했으니 얼른 오라’고 전화했다. 내가 급하게 운전할까 봐 거짓말을 한 거다. 별생각 없이 병원 응급실로 들어가려 하니 영안실로 가보라고 했다. 깜짝 놀라 가보니 경찰이 사진과 유류품을 보여주면서 딸이 맞느냐고 했다. 당시 하늘이 무너지는 듯한 충격을 받았다.”
단순 교통사고가 아닌 걸 언제 알게 됐나.
“현장조사에 친척들과 함께 따라나섰는데 사고 현장 근처에서 딸의 속옷을 발견했다. 그렇게 큰 사고가 났으면 도로 위에 피가 낭자해야 하는데 그렇지도 않고 타이어 자국도 없었다. 그때부터 이상하다고 생각했다.”
이후 사건의 진실을 밝히기 위해 뛰어다녔다고 들었다.
“경찰과 검찰의 수사를 믿을 수가 없었다. 부검 결과나 감식 결과를 제대로 열람하지 못했고 수사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는 것 같았다. 무언가 숨기려고 한다는 생각도 들었다.”
진실을 밝히려 약 20년을 노력했는데.
“억울하게 죽은 딸의 한(恨)을 풀어줘야겠다는 일념이었다. 전국을 다니며 변호사와 의학 전문가를 만났다. 생업은 포기했다. 라면 한 그릇으로 하루를 때웠다. 술·담배를 하지 않는데도 간질환이 생길 정도로 스트레스가 심했다.”
대법원 무죄 확정 판결 이후 계획은.
“진실이 밝혀지고 나서야 공소시효는 비로소 끝난다. 새롭게 구성된 민주정부에 기대하는 바가 많다. 법이 살아 있어야 진정한 민주정부 아니겠나. 진실이 밝혀질 것이라고 믿는다.” 

대구=김정석 기자 kim.jungseok@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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