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단독]“글쓰기는 치매 예방과 건강관리에 도움”…82세 늦깎이로 소설가 등단한 ‘복싱 해설의 대부’ 전 MBC 복싱 해설위원 한보영씨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37년간 복싱 해설을 해오다 여든이 넘은 늦은 나이에 소설을 쓰기 시작했습니다. 청소년 시절부터 희망이었던 소설가의 꿈을 이룬 지금 너무 즐겁습니다.”

82세 늦깎이로 소설가에 등단한 ‘복싱 해설의 대부’ 전 MBC복싱 해설 위원 한보영씨. 전익진 기자

82세 늦깎이로 소설가에 등단한 ‘복싱 해설의 대부’ 전 MBC복싱 해설 위원 한보영씨. 전익진 기자

82세 늦깎이로 소설가에 등단한 ‘복싱 해설의 대부’인 전 MBC 복싱 해설위원 한보영(경기도 양주시)씨의 말이다. 그는 지난 4월 월간문예지 조선문학 4월호에 단편소설 ‘너와 나의 끈’이 당선되면서 소설가로 당당히 등단했다. 이어 이달 초에는 월간문예지 문학세계 7월호에 ‘부나비의 꿈’이란 단편소설을 소설가로서 처음 발표했다.

1980년부터 현재까지 37년간 한국 복싱 해설 #82세에 월간문예지에 단편소설 작가로 등단 # #기자 생활 오래했지만 소설 쓰기는 또다른 영역 #내년부터는 장편소설 작가로 자리매김 준비

“신문기자 출신이기도 하지만 사실 청소년 시절부터 꿈은 소설가였습니다. 하지만 복싱 해설가로서 한 시대를 풍미하는 인생 여정에 최선을 다하는 가운데 저의 꿈은 점점 멀어져만 갔습니다.” 그는 1980년부터 2007년까지 MBC 복싱 해설위원으로 활동했다. 한국 프로복싱 중흥기였던 1970, 80년대를 관통하며 그는 복싱 해설가로 복싱팬들의 사랑을 받아왔다. 요즘은 복싱 경기가 거의 없다시피 해 간혹 지방에서 경기가 열리면 경기장에 나가 방송 중계의 해설을 맡고 있다.

82세 늦깎이로 소설가에 등단한 ‘복싱 해설의 대부’ 전 MBC복싱 해설 위원 한보영씨. 전익진 기자

82세 늦깎이로 소설가에 등단한 ‘복싱 해설의 대부’ 전 MBC복싱 해설 위원 한보영씨. 전익진 기자

“‘글쓰기(writing)는 뇌 운동(치매 예방)과 건강관리에 도움을 준다’는 어느 뇌 전문의의 글을 읽고 소설가로 변신하기로 마음먹었다. 아픈 곳은 없지만 80대 들어 치매 예방과 건강 관리의 중요성을 절감하고 있던 차에 신선한 충격을 받아 소설가로 변신했습니다.” 그의 소설가 변신은 화려한 일면이 있다. 집필한 소설을 도전을 겸해 평가도 받아볼 요량으로 월간 문예지의 신인 작가 공모에 응모한 첫 작품이 당당히 당선되면서 소설가로 등단하고 첫 작품인 단편소설이 문예지에 소개된 것이다.

소설가로 변신에 나선 것은 지난해 4월. 이후 원고지 80매 분량의 짧다면 짧은 단편소설 첫 작품을 구상하고 세상에 선보이기까지 1년이란 긴 시간이 필요했다. 그는 “서울신문·스포츠서울·월간지·주간지 등에서 63년부터 92년까지 29년간 기자로 재직한 경험이 글쓰기에 도움이 많이 됐다”고 말했다.

82세 늦깎이로 소설가에 등단한 ‘복싱 해설의 대부’ 전 MBC복싱 해설 위원 한보영씨. 전익진 기자

82세 늦깎이로 소설가에 등단한 ‘복싱 해설의 대부’ 전 MBC복싱 해설 위원 한보영씨. 전익진 기자

“신문기사와 소설 쓰기는 비슷한 점도 많지만 확연히 다른 면이 있어 처음엔 고충이 많았습니다. 신문 기사는 육하원칙에 따라 사실을 적는 것인데 반해, 작가의 상상력으로 창조된 소설은 독자가 상상력을 불러 일으킬 수 있도록 생략과 파격, 과장과 절제 등을 넘나들며 이야기를 전개하는 방식이 완전 다름을 배웠습니다.” 그가 단 한 차례의 노크를 통해 소설가로 등단한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 서라벌예대 문예창작과 출신이며 소설가가 꿈이었던 문학청년 시절 그는 당대의 최고의 문학가인 고 김동리, 고 서정주 선생으로부터 문학을 배웠다. 또한 16세 때부터 60여 년간 이어오고 있는 일기 쓰기 습관도 글쓰기 능력 향상에 도움이 많이 됐다고 소개했다.

등단 작품의 소재는 할아버지와 손자와의 사랑 이야기다. 자신의 얘기를 바탕으로 썼다. 그가 이달 초 소설가로서 선보인 첫 작품은 복싱선수 이야기다. 과거 이국의 링에서 세계 타이틀전에 도전했다가 14회 KO패를 당한 뒤 안타깝게 숨을 거둔 한 프로권투 선수의 가슴 아픈 실화를 모티브로 소설을 썼다. 이 소설을 통해 극한의 고통 속에 목숨을 걸다시피하고 링에 오르는 권투선수들에게 삶에 대한 희망가를 전했다.

82세 늦깎이로 소설가에 등단한 ‘복싱 해설의 대부’ 전 MBC복싱 해설 위원 한보영씨. 전익진 기자

82세 늦깎이로 소설가에 등단한 ‘복싱 해설의 대부’ 전 MBC복싱 해설 위원 한보영씨. 전익진 기자

“올해까지는 단편소설로 내공을 충실히 다진 뒤 내년부터는 본격적으로 장편소설 집필에 나설 계획입니다. 소재는 정했습니다, 60∼70년대 연예부 기자 시절 체험한 실화를 바탕으로 그 시절 갖은 풍파에 시달렸던 여성 배우의 삶을 조명하는 내용을 쓸 생각입니다.” 그는 63년 기자 생활을 시작한 뒤 55년간 글쓰기 연륜을 쌓았지만 글쓰는 일은 재미있으면서도, 가장 힘든 일이라고 했다. 80대 연세에 어울리지 않게 노트북으로 능숙하게 글을 쓰는 그는 이제는 나이를 감안해 하루 1시간 이상은 글을 쓰지 않는다고 했다. 그만큼 집중력과 체력이 필요한 때문이라고 덧붙였다.

그의 소설 쓰는 버릇은 썼다 지웠다를 무수히 반복하며 최고의 문장과 최상의 구성을 엮어내려 하고 있다는 점이다. 가장 글이 잘 써지는 카페에서 진한 원두커피를 마시며 글을 쓰는 것도 버릇이다. 그리고 각종 문예지에 소개된 젊은 작가들의 소설작품을 탐독하는 것도 취미이자 글쓰기 공부 방법이라고 귀띔했다.

현역 복싱 해설가이며 한국권투위원회 부회장을 역임한 그는 “날로 인기가 시들해지는 한국 복싱이 다시 살아나기만 두손 모아 고대하고 있다”며 “소설을 통해서도 한국 복싱이 옛날과 같은 인기를 회복할 수 있도록 일조할 생각”이라고 말했다. 그는 “소설을 읽게 되면 영화와 달리 생각이 깊어지면서 풍부한 상상력을 더해 다양한 타인의 삶을 간접체험할 수 있게 된다”고 말했다.

양주=전익진 기자 ijjeon@joongang.co.kr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