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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괴적 혁신의 시대 창의력 없으면 진보 없어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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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40호 26면

[Neo 커뮤니케이션] 칸 라이언스 크리에이티브 페스티벌

1 지난달 프랑스 칸에서 열린 ‘칸 라이언스 크리에이티브 페스티벌’에 참여한 페이스북이 해변에 자체 코너를 설치했다.

1 지난달 프랑스 칸에서 열린 ‘칸 라이언스 크리에이티브 페스티벌’에 참여한 페이스북이 해변에 자체 코너를 설치했다.

국제영화제로 명성이 높은 프랑스 남부 휴양 도시 칸에서는 ‘크리에이티브 페스티벌’도 열린다. 지난달 17~24일 개최된 ‘칸 라이언스 국제 크리에이티브 페스티벌’에 다녀왔다. 이 행사는 전 세계 광고·마케팅·미디어·디자인 등 크리에이티브 업계 종사자들이 주로 참석해서 ‘국제 광고제’로 널리 알려져 있었다. 2011년부터 지금의 이름으로 바뀌었으며 헬스케어, 이노베이션, 엔터테인먼트 분야로 행사가 확장됐다. 시상식 외에 강연·포럼·워크샵·시연·교육·네트워킹프로그램이 컨벤션센터와 해변 등에서 다채롭게 이뤄진다.

인공지능·빅데이터 강연만 20개 #혁신 위한 융복합 플랫폼의 잔치 #페북 ‘좋아요’ 분석한 코진스키 #“버튼 누르면 디지털 행적 드러나 #트럼프, SNS 등 모든 정보 분석 #대선 잠재적 지지층 가려내 광고”

올해 무엇보다 눈에 띄는 현상은 인공지능(AI)과 빅데이터(Big Data)의 등장이다. 이를 제목에 명시한 강연만 해도 20개 가까이 됐다. 옴니콤 그룹의 미디어 회사인 PHD의 글로벌 CEO 마이크 쿠퍼는 “새로운 미디어 기술들은 효율성을 높여줄 뿐 아니라 소비자의 일상에 개입하는 다이내믹 크리에이티브 캔버스가 되고 있다”고 평했다. 알고리즘에 마케팅하는 시대가 왔다는 이야기다.

알고리즘에 마케팅하는 시대

2 ‘마케터가 정치에서 배워야 할 것들’ 세션에서 영화 ‘her’의 포스터 사진을 보여 주고 있다.

2 ‘마케터가 정치에서 배워야 할 것들’ 세션에서 영화 ‘her’의 포스터 사진을 보여 주고 있다.

새로운 기술·자본·인재·데이터가 모이고 그러한 파괴적 혁신 기업들이 다양한 융복합 협력으로 비즈니스 모델을 창의적으로 만들어 가다 보니 변화의 속도가 무섭다. 칸 라이언스라는 캔버스에서 벌어지는 업계 변화의 복잡한 모습을 그래픽으로 정리해 봤다(오른쪽 그래픽 참조). 광고 마케팅 산업에서의 변화의 모습이지만 다른 산업에서도 비슷하게 나타나는 현상이다. 그림을 그려 보니 미국과 중국에서 소셜, 디지털 혁명을 이끌어 가는 구글·페이스북·알리바바·텐센트·바이두 등 거대 플랫폼 회사들이 페스티벌의 새로운 주역으로 자리 잡았다는 것이 분명히 드러난다. L2 컨설팅 펌의 창업자이자 뉴욕대 스턴 비즈니스 스쿨 스콧 갤로웨이 교수는 ‘2017년 디지털에서의 승자와 패자’ 세션에서 “칸 라이언스에서도 해마다 해변에 페이스북의 행사장이 커지는 것을 보지 않느냐”라고 큰소리로 외치기도 했다.

미국 대선에서 활용된 데이터 기술에 대해 토론하는 스탠퍼드 대학 코진스키 박사(왼쪽)와 가디언지의 사브리나 시디퀴 기자. [칸 라이언스]

미국 대선에서 활용된 데이터 기술에 대해 토론하는 스탠퍼드 대학 코진스키 박사(왼쪽)와 가디언지의 사브리나 시디퀴 기자. [칸 라이언스]

이들뿐 아니라 데이터를 모으고 분석하고, 예측하는 기술을 갖고 있는 기업들, AI 관련 기술(머신 러닝, 이미지 분석, 딥러닝, 로봇공학, 음성 인식 등) 또는 위치 기반 AR(증강현실)과 VR(가상현실) 관련 스타트업 회사들, 비즈니스 컨설팅의 디지털 자회사들도 대거 참여했다. 칸 라이언스가 광고 커뮤니케이션 마케팅 업계의 크리에이티브 영감을 얻기 위한 어워드 페스티벌에서 비즈니스 모델 혁신과 협업을 위한 융복합 플랫폼들의 잔치로 바뀐 것이다. 그러다 보니 칸 라이언스의 터줏대감 격인 전통적인 커뮤니케이션 회사들의 불만도 터져 나왔다. 퍼블리시스의 아서 새돈 회장이 “내년에는 참가하지 않겠다”고 발표했고, WPP의 마틴 소렐 회장도 로이터와의 인터뷰에서 “WPP도 향후 참석 여부를 고민하겠다”고 말했다. 커뮤니케이션 산업에도 이처럼 디지털 기술 혁신의 여파가 급격히 밀려오고 있다. 그 변화의 중심에는 데이터와 인공지능이 있다.

스탠퍼드대 미하일 코진스키 박사는 ‘마케터가 정치에서 꼭 배워야 할 것들’이란 세션에 패널로 참석했다. 코진스키는 심리학자와 함께 개발한 페이스북 앱(myPersonality)을 통해 당사자 동의를 받고 제공받은 자료를 분석해서 해당 이용자의 성별, 인종, 정치적 성향, 성적 취향까지 분석할 수 있었고 그 결과 가장 친한 친구나 가족들보다 더 정확하게 이들의 성향에 대해 파악할 수 있었다고 설명했다. 그는 “사람들이 무심코 올리는 페이스북의 ‘좋아요’ 버튼이 그 사람의 디지털 행적을 포괄적으로 파악할 수 있게 해 주는 도구가 된다는 점에서 경각심을 주고자 연구를 했다”고 말했다. 코진스키는 페이스북을 이용하는 실험 참가자들에게 100개 문항의 설문조사와 그들이 페이스북에서 ‘좋아요(Like)’를 누른 내용을 결합해 개인의 성격을 구분하는 알고리즘을 2013년 최초로 개발해서 주목을 받은 바 있다.

이번 페스티벌에서 참가자들은 데이터를 유전(油田)·보석·자원이라고 불렀다. 데이터를 확보하고, 활용하는 전쟁이 치열해지는 가운데 산업의 경계를 넘어 융복합 컬래버레이션으로 새로운 가치가 창출되며 생태계가 계속 변화하고 있는 것이다.

이미 글로벌 기업들은 이러한 변화 속에서 새로운 비즈니스 기회를 찾고 있다. 많은 온라인 플랫폼 기반 기업들이 다양한 개인정보 데이터를 바탕으로 개인의 성향을 파악하고, 의사결정을 예측하고, 이에 기반해 사용자의 의사결정을 유도하기 위한 마케팅, 광고, 서비스를 제공한다. 고객들은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개인 맞춤화된 광고, 상품 서비스 같은 새로운 변화와 혜택에 익숙해져 가고 있다.  서비스 분야뿐 아니라 정치나 공공 영역에도 해당이 된다.

코진스키 박사는 2016년 미국 대선을 깊이 취재한 가디언지의 사브리나 시디퀴 기자와 토론하며 캠페인의 백스테이지에서 어떤 일이 벌어지는지에 대해서 실감나게 설명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대선에서 더욱 정밀한 타겟팅을 해 잠재적 지지자를 찾아냈다고 한다. 선거를 6개월 남겨 두고 데이터 과학 전문가가 합류해서 다양한 여론 조사 자료와 더불어 소셜의 모든 링크, 페이스북 ‘좋아요’ 정보들을 모두 모아 분석한 뒤 기존의 정치권에서 타겟팅하지 않았던 투표권자들을 정확히 가려내 효율적으로 개별 광고를 하고 유세 지역 우선 순위까지 정해서 캠페인을 진행했다는 것이다. 이 서비스를 한 회사에 대해 비난의 목소리도 있었다. 그러나 선거에 나간 정치인이 유권자들에게 개개인의 관심사와 연결된 맞춤형 정책과 메시지를 전달할 수 있다면 득표할 가능성이 커지는 것은 당연한 일이니 놀랄 것도 없다는 것이다.

이처럼 새로운 커뮤니케이션 방식에서부터 시작된 ‘파괴적 혁신’의 흐름은 무서울 정도로 빠르게 우리 사회 곳곳을 변화시키고 있다. 기업·학교·정부 등도 앞으로는 이러한 인간과 인공지능과 알고리즘과의 커뮤니케이션, 융복합된 비즈니스 모델의 변화와 흐름을 이해하지 못하면 도태되기 쉽다. 복잡한 기술과 빠른 사회적 변화에 적응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할까? 다양한 논의가 있을 수 있겠지만 무엇보다도 창의적인 생각과 태도가 중요하다.

전직 CNN 지국장이자 시나리오 작가 겸 다큐멘터리 영화감독인 칩 월터는 『사람의 아버지(Last Ape Standing)』라는 자신의 저서에서 다양한 종 가운데 호모 사피엔스가 끝까지 살아남은 이유는 “빈둥거리며 놀기를 좋아하고 가망없는 일에 도전하며 불가능을 꿈꾸는” 창의적인 특성이라고 말한 바 있다. 이는 21세기를 살고 있는 우리에게도 마찬가지로 적용된다. 산업화시대 이후 우리의 몸은 기계가 갖고 있는 정확성이나 속도를 따라잡기 힘들어졌으며, 이제 맞이하게 된 인공지능과 빅데이터의 시대에서 우리의 뇌는 인공지능처럼 많은 데이터를 한꺼번에 흡수하고 기억하거나, 객관적으로 정확하게 이해하기 힘들어졌다. 바로 그러한 점 때문에 우리는 창의적인 생각을 할 수 있는 능력이 그 어느 때보다 더 중요해진 시대를 맞이하고 있다.

다양성이 존중받는 문화 조성해야

3 올해 칸 라이언스에 참여한 기업들을 그림으로 그려 봤다. 구글·페이스북·알리바바·텐센트·바이두 등 거대 플랫폼 회사들이 새 주역으로 자리 잡았다. [사진 칸 라이언스, 플레시먼힐러드 제공]

3 올해 칸 라이언스에 참여한 기업들을 그림으로 그려 봤다. 구글·페이스북·알리바바·텐센트·바이두 등 거대 플랫폼 회사들이 새 주역으로 자리 잡았다. [사진 칸 라이언스, 플레시먼힐러드 제공]

칸 라이언스 페스티벌에서 영화 감독 헤르만 바스케는 “왜, 어떤 요인이 우리를 크리에이티브하게 만들까”에 대한 질문을 던졌다. 그는 10년이 넘게 이 답을 찾기 위해 스티븐 스필버그, 멜 깁슨, 다이앤 크루거 등 유명 영화계 인사부터 달라이 라마, 스티브 호킹 등 종교계·학계·예술계 각 분야의 영향력 있는 사람들을 인터뷰하고 함께 고민했다. 일단 크리에이티브 자체의 중요성을 의심하는 사람은 없었다고 한다. 예컨대 스티브 호킹은 “과학과 크리에이티브 중에 뭐가 더 중요한지”를 묻는 질문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좋은 과학을 하기 위해선 창의성이 필수다. 그렇지 않으면 지칠 만큼 오래된 공식을 반복하는 것뿐이다. 전혀 새롭게 되지 않게 된다.” 달라이 라마는 이렇게 말했다. “크리에이티브는 파괴적일 수도, 생산적일 수도 있다. 하지만 크리에이티브가 없다면 더 이상의 진보는 없을 것이다. 인간에게 주어진 특별한 능력 중 하나가 상상력이다.”

바스케 감독의 분석에 따르면 사람들을 크리에이티브하게 만드는 원동력은 가지각색이다. 어떤 사람들은 어린 시절이나 부모님의 양육방식에서 그 원동력을 찾기도 했고, 어떤 사람들은 야망과 돈, 섹슈얼리티 같은 충동에서 원동력을 찾았다. 반항심이나 공포와 같은 감정적 근원에서 크리에이티브의 동력을 찾는 이들도 있었고, 독창적 아이디어의 불멸성이나 운명, 영성에서 동력을 찾기도 했다. 이처럼 크리에이티브를 위한 한 가지 포뮬러는 없고 우리 각자의 영역에서 자신만의 크리에이티브를 찾는 일은 누구에게나 숙제로 남아 있다. 무엇보다 중요한 점은 이토록 다양한 원동력을 바탕으로 크리에이티브가 마음껏 펼쳐질 수 있는 환경을 만들기 위해 유연하고 다양성이 존중받는 문화를 조성해야 한다는 점이다.

칸 페스티벌을 지켜보며 기술 변화의 속도가 주는 중압감에 마음이 무거워짐을 느꼈다. ‘실행 방식은 변화하지만 원칙은 지켜야 하며, 뚜렷한 가치와 목표를 갖고 대담한 아이디어로 세상의 대화를 바꾸는 일을 할 때 우리의 가슴은 뛴다.’ 페스티벌 동안 동료들과 왓츠앱(WhatsApp)으로 서로 나눈 이야기를 다시 한 번 새겨 본다.

박영숙 연세대 경영학과를 나와 미국 텍사스주립대에서 광고학 석사를 받았다. 광고 기획, 마케팅 매니저를 거쳐 2002년 글로벌 커뮤니케이션  컨설팅펌 플레시먼힐러드에 합류했다. 다수의 공공 부문 위원회와 아름다운재단 이사 등 비영리부문에서도 활동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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