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매 맞더라도 문재인 정권과 한국사회의 문제점은 짚겠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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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직히 책 제목이 지나치게 자극적이었다는 생각을 하고 있다. (제목 때문에) 나도 피해를 입었지만, 그래도 문재인 정권이나 한국사회의 문제점에 대해서는 지적하고 싶었다.”

혐한서 출간 무토 전 주한 일본대사, 日 언론 인터뷰 #"번역서 출간 제안...읽지도 않고 비난할 것 알아 거절" #"G20 발언 보면 문 대통령 관심사는 온통 북한. #문 정권의 대북 대화노선에 국제사회 대북강경론 힘 잃어" #대북 대화 지지자들만 곁에 둔 '도모다치(친구) 내각' #"평창동계올림픽 공동개최 제안, 최저임금 인상 정책 # 너무나 현실과 동떨어진 정책에 놀라울 뿐"

무토 마사토시 전 주한 일본대사.

무토 마사토시 전 주한 일본대사.

지난달『한국인으로 태어나지 않아 다행이다』라는 책을 일본에서 출간해 혐한 논란을 빚고 있는 무토 마사토시(武藤正敏·69) 전 주한 일본 대사가 14일 일본 인터넷 언론인 ‘뉴스 소쿠라’와의 인터뷰에서 이같이 밝혔다.

‘뉴스 소쿠라’는 연예와 가십 뉴스를 배제한 정통 뉴스보도를 표방하는 인터넷 매체로, 니혼게이자이 신문 기자 출신의 쓰치야 나오야(土屋直也)씨가 2014년 사이트를 개설했다. 이날 인터뷰도 쓰치야 편집장이 직접 맡았다. 쓰치야 편집장은 “한국의 돌팔매(袋叩き)를 예상하면서도 책을 낸 진의를 (무토 전 대사에게) 물었다”고 했다.

2010년 8월부터 2년 2개월간 주한 일본대사로 재임했던 무토 전 대사는 한국에서 총 12년을 근무한 한국통이다.

무토 전 주한 일본대사가 쓴 책 『한국인으로 태어나지 않아 다행이다』의 표지

무토 전 주한 일본대사가 쓴 책 『한국인으로 태어나지 않아 다행이다』의 표지

무토 전 대사는 ‘무토 전 주한대사, 혐한서 비판에 대한 반론’이라는 제목의 인터뷰 기사에서 “거의 모든 한국 언론들이 ‘혐한서적’이라는 제목을 달았지만 책 내용을 냉정하게 소개해준 언론들도 적지 않았다”며 “특히 보수 진영 측에서는 ‘제목은 자극적이지만 내용은 납득할 만하다’는 의견도 있었다”고 말했다. 이 책을 한국어로 번역하고 싶다는 제안도 3건 있었는데 모두 거절했다고 한다. 그는 그 이유를 “한국인들이 냉정하게 이 책을 읽어주지 않을 걸 알고 있기 때문”이라고 했다.

“이 책의 내용은 일본 내 혐한파가 아닌 보통 일본인의 시점에서 정리한 것입니다. 하지만 문재인 정권 지지율이 80%를 넘는 지금, 특히 젊은 세대는 책을 읽어보지도 않고 혐한이라고 반응할 겁니다. 젊은 세대가 아니더라도 한국사회 전반적으로 ‘괘씸하다’는 반응이 나올게 분명합니다.”
무토 전 대사는 이어 “책 제목이 지나치게 자극적이었다는 생각은 솔직히 하고 있다”고 했다.

무토 전 대사는 지난 7일 열린 한일 정상회담과 한중·한미 정상회담에 대해서는 “발언을 잘 분석해보면 문재인 대통령의 최대 관심사는 북한문제”라며 “한국이 주도권을 쥐고 대화로 북한문제를 해결하겠다고 각국 정상들에게 전달한 것이다. 아베 신조 일본 총리와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에게도 모두 북한과의 대화노선을 주장했다”고 말했다.

주한 일본대사 시절 한국언론과 인터뷰하고 있는 무토 마사토시 전 대사. 

주한 일본대사 시절 한국언론과 인터뷰하고 있는 무토 마사토시 전 대사.

그는 “지난 20년을 돌이켜보면 대화로 북한 핵과 미사일 개발을 중단시킬 수 없다는 것은 자명한 사실”이라며 “문재인 대통령은 진심으로 대화노선을 강조하고 있다. 적어도 중국과 러시아는 대화노선이 자기들에겐 유리할수도 있다는 생각을 할 지 모르겠다”며 북한과의 대화에 회의적인 입장을 나타냈다. 그러면서 “문재인 정권의 대화노선 때문에 대북 압박을 강화하자는 (국제사회의) 의견이 힘을 받지 못하고 있다.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어떻게 나올지가 관건”이라고 말했다.

평창동계올림픽의 남북 공동개최에 대한 의견도 냈다. “너무나도 비현실적인 판단에 놀라고 있다. 도종환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은 내년 평창 동계올림픽의 일부 스키경기를 북한에서 치르자는 생각을 내놨다. 이는 형(김정남)을 독가스로 죽이는 사람이 통치하는 국가에 세계 일류 선수들과 언론, 응원단을 보내 경기를 치르고, 그 내용을 전세계에 생중계하자는 것이다.” 그는 국제올림픽위원회(IOC)도 북한도 이런 카드를 받아들이지 않을 걸 알면서 문재인 정부가 이를 제안하는 것이라고 했다.

무토 전 대사는 “문재인 정부의 경제정책과 재벌개혁, 남북통일 정책 그 어느것 하나 현실을 반영한 것은 없어 보인다”며 “1인당 GDP가 일본보다 낮은 한국이 최저임금을 도쿄보다 높게 인상한다고 한다. 경제를 아는 사람이라면 결코 내놓을 수 없는 정책”이라고 했다. “한국 내에서는 이런 문제에 대한 지적이 없느냐”는 질문에 무토 전 대사는 “문재인은 모두 옳고, 박근혜는 모두 그르다는 ‘감정’이 지금의 한국을 움직이고 있다. 문재인 대통령 자신도 외교를 잘 하고 있다고 확신하고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무토 마사토시 전 주한 일본대사. 그는 "문재인 대통령의 대북대화 노선 때문에 핵실험을 강행하고 있는 북한에 대한 국제사회의 강경대응론이 탄력을 받지 못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무토 마사토시 전 주한 일본대사. 그는 "문재인 대통령의 대북대화 노선 때문에 핵실험을 강행하고 있는 북한에 대한 국제사회의 강경대응론이 탄력을 받지 못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그는 향후 한반도를 둘러싼 향후 전망에 대한 우려를 나타냈다. “문재인 대통령의 대북 대화노선이 국제사회의 흐름이 될까 걱정스럽습니다. 그 조짐은 이미 나타나고 있구요. 중요한 미국이 그 방향으로 갈 수도 있음을 시사하는 사인을 제임스 매티스 미국 국방장관 등의 발언에서 느낄 수 있습니다.”

북한의 잇단 핵실험이 대화노선에 찬물을 끼얹을 수 있는 것 아니냐는 질문에 무토 전 대사는 “일시적으로는 북한을 비판하더라도 문재인 정권은 대화노선을 바꾸려하지 않을 것이다. 일종의 신념을 갖고 추진하고 있다”고 했다. 국가정보원장에 과거 두차례 남북정상회담을 경험한 서훈 전 국가정보원 제 3차장을, 또 청와대 비서실장에는 운동권 출신의 임종석 의원을 앉힌 것을 보면 이번 인사에서도 대북 대화노선에 대한 대통령의 강한 의지를 엿볼 수 있다고 했다. 그는 “이 두사람 외에도 (문 대통령 주위에는) 모두 대북 대화를 주장하는 사람들뿐”이라며 “문재인 정권은 아베 정권보다 더한 '도모다치(친구) 내각’”이라고 지적했다.

무토 전 대사는 “북한이 어쩌다 핵실험을 하더라도 문재인 대통령은 ‘외교적으로 성공하고 있다’고 주장할 것이고 외교면에서 대통령을 비난하는 큰 흐름은 형성되지 않을 것”이라며 “문재인 정권이 무너진다고 한다면 최대 요인은 경제이거나 북한과의 통일 비용이 너무 크다는 걸 모두가 알게 됐을 때”라고 했다. 대북 대화노선에 대한 반발 때문에 문재인 정권이 붕괴될 가능성은 극히 낮다는 입장이다.

무토 전 대사는 북한 핵·미사일 문제의 해결은 결국 미국과 중국이 북한의 미래 비전을 어떻게 공유하느냐에 달려 있다고 했다. 그는 “(미국과 중국이 북한 문제로 비전을 공유할때) 한국과 일본은 논의에서 배제될 것”이라며 “이는 아마도 문재인 대통령이 가장 피하고 싶은 상황”이라고 말했다.

조진형 기자 enish@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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