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빨을 드러낸 채 활짝 웃는 원숭이가 직접 찍은 사진(셀프카메라·셀카) 사진의 저작권을 놓고 국제동물보호단체와 소송 중인 영국인 사진작가가 장기간의 법정 다툼으로 생활고를 겪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13일 영국 일간지 가디언은 지난 2015년 국제동물보호협회(PETA)로부터 제소당한 후 법정 분쟁 중인 영국인 사진작가 데이비드 슬레이터이 “변호사 비용은 물론 딸아이에게 물려줄 사진 장비 하나 없다”며 생활고를 털어놨다고 보도했다.
슬레이터는 2011년 인도네시아 술라웨시에서 여러 날 검정 마카크 원숭이 무리를 쫓아다니며 사진을 촬영하던 중 원숭이 한 마리에게 카메라를 빼앗겼다. 이 원숭이는 슬레이터의 카메라로 수백장의 셀카 사진을 찍었으며 이렇게 찍은 사진 가운데 그 ‘웃는 원숭이’ 사진이 있었다. 이 사진이 신문과 방송, 인터넷 등을 통해 유명해지면서 슬레이터는 인도네시아 여행 경비를 충당할 수 있을 정도의 돈을 벌기도 했다.
하지만 슬레이터가 2014년 온라인 백과사전인 ‘위키피디아’와 정보통신(IT) 전문 블로그 ‘테크더트’에 이 사진의 무단 도용을 중단해달라고 요청하면서 논란이 시작됐다. 업체들이 슬레이터의 요구를 무시하고, 특히 위키피디아는 원숭이가 사진을 촬영한 만큼 슬레이터를 저작자로 볼 수 없다며 반격하고 나선 것이다. PETA는 사진을 촬영한 원숭이가 ‘나루토’라는 이름이 있는 6살짜리 수컷이라며 원숭이를 대신해 슬레이터를 상대로 미국 법원에 저작권을 인정해달라는 소송을 제기했다.
법원은 지난해 동물은 저작권법 적용 대상이 아니라며 슬레이터의 손을 들어줬지만, PETA는 이에 불복해 항소했다. 지난 12일 미 샌프란시스코에선 항소에 따른 심리가 열렸다. 이날 심리에선 PETA가 나루토를 대신해 소송을 제기할 정도로 가까운 사이인지, 나루토가 저작권을 인정받지 못해 실제 피해가 발생하는지 등이 검토됐다. 슬레이터는 가디언과 인터뷰에서 “항공권을 살 돈이 없어 이 심리에 참석할 수조차 없었다”고 밝혔다. 그는 “웃는 원숭이 사진은 우연히 얻은 결과물이 아니라, 사진 속 원숭이가 셀카를 찍도록 유도하기 위해 무수한 공을 들였다”며 자신의 저작권을 강하게 주장했다.
그나마 사진이 유명해지면서 검정 마카크 원숭이가 멸종 위기에서 벗어났다는 것이 슬레이터의 유일한 위안거리다. 슬레이터는 “이 사진이 원숭이 종족을 구하는 데 도움이 됐기를 바란다. 원래 사진을 촬영한 목적도 그것이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