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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분수대

아나키스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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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5면

박정호 기자 중앙일보 수석논설위원
박정호 논설위원

박정호 논설위원

지난해 7월 중국 룽징(龍井) 명동촌을 찾은 적이 있다. 시인 윤동주, 영화감독 나운규의 고향이다. 명동촌에서 뜻밖의 안내판을 봤다. ‘송몽규 고거(故居)’. 새로 만든 듯 말끔했다. 지난해 초 개봉한 이준익 감독의 ‘동주’에서 윤동주의 고종사촌으로 나온 독립운동가 송몽규가 살던 집임을 알렸다. 역시 영화는 힘이 셌다.

이 감독의 신작 ‘박열’도 화제다. 전국 관객 200만이 코앞이다. 경북 문경 박열기념관을 찾는 이도 크게 늘었다. 이곳 장성욱 연구사는 “지난달 말 개봉 이후 관람객이 두 배 늘었다. 주말에는 200~300명에 이른다. 대부분 기념관조차 몰랐던 외지인”이라 했다.

영화에 충실하게 그려졌듯 박열은 독특한 독립운동가다. 1923년 일본 간토(關東)대지진의 희생양이다. 대참변에 격앙된 민심을 잠재우려 했던 일본 내각은 황태자 폭탄 암살을 꾀한 혐의로 박열을 대역(大逆) 죄인으로 몰아갔다. 그의 일본인 아내 가네코 후미코와 함께다. 박열·가네코 부부는 1920년대 대표적 아나키스트(무정부주의자)였다. 영화는 그간 음지에 가려졌던 아나키스트를 양지로 끌어냈다. 일제의 만행을 고발한다는 표면적 대의 외에 부당한 권력과 체제에 맞서는 개인의 결단에 방점을 찍었다.

이 감독은 영리했다. 일본 진보·보수지를 대표하는 아사히·산케이신문 기사를 고증해 이념적 편향을 걷어냈다. 덕분에 일본에서도 왜곡 시비가 아직 없다. ‘아나키스트≒공산주의자’로 보던 우리의 통념도 뒤집었다. 일례로 신채호·이회영 등 많은 독립운동가가 아나키스트였고, 최근 우리 청춘들이 열광한 체 게바라 또한 아나키스트였다. 차별·억압을 부정하고 자유·평등을 옹호하는 아나키즘은 민주주의 원리와 통한다. 낭만적 이상주의자라는 비판은 둘째 문제다.

6·25 때 납북된 박열의 유해는 평양 애국열사릉에 안치돼 있다. 한국 정부는 89년 건국훈장 대통령장을 추서했다. 남북한 공동 자산인 셈이다. 일본과도 연결된다. 간토대지진 당시 ‘조선인이 우물에 독약을 탔다’는 것에 비견되는 ‘가짜 뉴스’도 드물 터다. 핵무기에 몰두하는 김정은 정권, 우경화로 치달은 아베 신조 정권에 박열을 돌아보라면 ‘쇠귀에 경 읽기’일까. 타인을 배제하는 체제는 의미가 없다.

박정호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