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최민우의 블랙코드

외제차에 고개 떨군 장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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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8면

최민우 기자 중앙일보 정치부장
최민우 정치부 차장

최민우 정치부 차장

2011년, 개인적으로 국산 SUV(코란도)를 10년쯤 타 온 터라 자동차 바꿀 때가 된 듯했다. 그건 핑계였고, 솔직히 외제차 한번 폼나게 몰고 싶었다. “보수적인 신문사에서 윗사람 눈치 안 보여?”라며 주변에선 말렸지만 ‘아니 마흔 넘어 내 돈 내고 차 좀 타겠다는데 뭐, 외제차가 별거야’라고 모른 척했다. 정작 걸림돌은 돈이었다. 물정 몰랐던 탓인지 예상보다 차 값이 셌다. 결국 준중형급의 BMW3 시리즈를, 그것도 1년 넘은 중고를 3300만원에 샀다. 탈탈 털어 무리했지만 ‘옵션 많이 든 그랜저보단 싸게 외제차를 사들인, 현명한 소비’라고 애써 위로했다. 그 차, 지금도 타고 있다.

시시콜콜한 자동차 구입기를 꺼낸 건 다름 아닌 유영민 미래창조과학부 장관 후보자 때문이다. 유 후보자는 두 대의 외제차(벤츠·BMW)를 갖고 있다고 한다. 지난 4일 청문회에서 이은권 자유한국당 의원은 “어떤 연유에서 타게 됐는가”라고 따지듯 물었다. 아니 몰라서 묻나, 타고 싶으니깐 그런 거지. 더 황당한 건 답변이었다. 유 후보자는 “대단히 국민 정서에 맞지 않는다고 생각하고 송구스럽다”고 했다. 자, 이로써 외제차 오너는 그 무시무시하다는 ‘국민정서법’을 어긴 범법자로 전락하고 말았다. 혹시 한 대는 용서가 될까. 앞으론 외제차 보유 여부도 공직 인사 기준에 포함해야 하나.

물론 공직자가 되고 나서 갑자기 없던 외제차를 끌고 다닌다면 수상하게 여길 수 있다. 하지만 밑도 끝도 없이 “왜 외제차 몰아?”라고 시비 거는 것도, 국민정서 운운하며 고개 숙이는 척하는 것도 시대와 한참 동떨어진 장면이다. 굳이 한국의 자동차 수출량이나 국가경제규모 같은 수치를 들먹이지 않아도 말이다. 그래도 위화감이 들고, 커지는 상대적 박탈감은 어쩌냐고? 그게 도저히 참을 수 없다면 평범한 국민의 가슴을 철렁 내리게 한, 너무 완벽한 송중기-송혜교 커플부터 당장 국외 추방시켜야 한다.

친한 친구가 좋은 차 타면 살짝 배 아플 수 있다. 그렇다고 불법이 없는데, 탈세도 아닌데 욕망을 무조건 죄악시할 만큼 현대인의 분별력이 떨어지지도 않을 듯싶다. 결국 불만을 부채질하는 건 정치권이다. 전형적인 편 가르기요, 포퓰리즘이다. 정권이 바뀌었으니 세상인심도 달라졌을 터. 국민정서 그만 우려먹었으면 좋겠다.

최민우 정치부 차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