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소 아끼면서 모은 돈 5000만원, 해군 순직장병 유자녀 위해 기부한 김영배 동국대 명예 교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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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배 동국대 명예교수

김영배 동국대 명예교수

“지난달 적금 하나가 만기가 돼 어떤 일에 쓸까 고민하다 결정했다. 별일 아니다.”

4일 ‘바다사랑 해군 장학재단’에 5000만원을 기부한 김영배(86) 동국대 명예교수는 기부 이유에 대해 이렇게 설명했다. 바다사랑 해군 장학재단은 해군 순직장병 유자녀를 위한 기금이다. 그는 지난해 1월엔 동국대에 발전기금 5000만원을 냈다. 해군과 학교에 낸 돈을 두곤 “평소 아끼면서 모았다”고 했다.

김 교수는 6·25 전쟁 당시 해군에서 복무하면서 상관의 배려로 공부를 할 수 있었다. 1931년 평안북도 영변에서 태어난 그는 광복 이후 북한 지역에 공산정권이 들어서자 48년 고등학교 졸업을 앞두고 아버지와 함께 월남했다. 작은 무역회사에서 일하며 가족의 생계를 돕다 49년 해군본부 군악학교의 신병 모집 광고를 보고 해군에 지원했다. 그는 “당시 공부를 계속하고 싶었는데 ‘학교’라는 두 글자에 끌렸다”고 말했다.

김 교수가 신병 14기로 해군에 입대한 뒤 1년 후인 19세 때 6·25 전쟁이 일어났다. 고교 교육을 받은 사람도 드물었던 때라 함정의 정비계획을 담당하는 해군본부 함정국 행정병이 됐다. 거기서 평생 은인인 권태춘 제독(당시 중령)을 만났다. 권 제독은 그의 재능을 보고 부산에 내려와 있던 동국대 국어국문학과 야간 수업을 들을 수 있도록 해줬다. 김 교수의 등록금을 대주기도 했고 유엔군사령부가 있었던 일본에 출장을 다녀올 때면 책도 구해다 주곤 했다.

김 교수는 54년 군 복무를 마친 뒤 고교 국어 교사로 근무하면서 박사학위를 받았고 모교인 동국대 국문학과 교수가 됐다. 남북한 방언 연구 등 학문적 성과로 97년 국민훈장 모란장을 받았다.

김 교수에게 학문의 길을 열어준 권 제독은 1962년 세상을 떠났다. 김 교수는 해마다 호국 보훈의 달인 6월에 국립서울현충원의 권 제독 묘역을 참배한다고 한다. 그는 “해군에 입대하지 않았다면 권 제독과 같은 훌륭한 분을 만나지 못했을 것이고 지금 이 자리에 있지도 못했을 것”이라며 “올해 7월은 해군에 입대한 지 68주년이다. 이제야 그 은혜를 갚게 돼 부끄러울 따름”이라고 말했다.

이철재 기자 seajay@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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