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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니얼 강 "내 손을 잡으면 아빠를 만나는 거잖아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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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니얼 강의 손에 새겨진 'just be'와 '아빠'. [중앙포토]

대니얼 강의 손에 새겨진 'just be'와 '아빠'. [중앙포토]

 대니얼 강(25)이 3일(한국시각) 미국 일리노이 주 시카고 인근 올림피아 필즈 골프장에서 열린 미국 여자프로골프(LPGA) 투어 메이저대회인 KPMG 여자 PGA 챔피언십에서 13언더파로 브룩 헨더슨(캐나다)을 한 타 차로 꺾고 우승했다. 대니얼 강은 첫 우승을 메이저 대회 우승으로 장식하고 경기 후 눈물을 흘렸다. 144번째 대회에서 처음 우승한 감격도 크겠지만 돌아가신 아버지에 대한 그리움 때문이 아니었을까. 다음은 2015년 1월 대니얼 강과 그의 아버지에 관해 쓴 기사다.

여자 PGA 챔피언십 우승 #손에 '아빠' 글자와 가르침 새겨 #화끈한 부산 사나이 아빠 닮아 #144경기 만에 감격의 우승

대니얼 강. LPGA 투어에서 뛰는 재미 교포 선수다. 약간 서구적인 눈매에 피부는 까무잡잡했다. 낮엔 파도타기, 밤엔 파티를 즐기는 보헤미안 캘리포니아 걸의 느낌이 났다. 이런 코리언 캘리포니안 중 일부는 미국 사람보다 더 미국적이다. LPGA 투어에서도 그렇다.
대니얼 강도 쉽게 다가서기 어려웠다. 외모도 그렇고 아마추어 경력이 워낙 화려해 콧대가 높지 않을까 하는 선입관을 가지기도 했다. 2014년 10월 두 주 연속 자동차가 걸린 홀에서 홀인원을 해 화제가 되지 않았다면 오랫동안 그에 대해서는 잘 몰랐을 것이다.
한국어로 인터뷰하자고 했더니 대니얼 강은 “한국어로 한 번도 인터뷰 안 해 봤는데요”라면서 말을 잘도 했다. “왜 홀인원을 많이 하냐고요? 화끈하게 핀 보고 치거든요. 아빠가 어릴 때부터 화끈하게 공 치라고 했거든요.” 부산 사투리가 만만치 않았다고 했더니 “아, 그 정도로 그러세요? 사투리 참고 있었는데 도저히 안 되겠네요”라면서 이후 진짜로 강렬한 사투리를 뿜어댔다.
그냥 느낌인지는 모르겠지만, 서울 사람으로서 요즘 부산 사투리는 예전 같지 않다. 부산 소주 알코올 도수 내려가듯 조금씩 순화되고 서울말과 비슷하게 변하고 있는 것 같다. 대니얼 강의 사투리는 삼십년 전 영도 다리 근처에서 먹어 본 부산 돼지국밥처럼 투박하고 걸진 사투리였다. 고향을 떠나 온 사람들이 고향이 그리워 조금도 손대지 않아 화석처럼 박제된 것 같은 순수한 사투리.
예쁜 캘리포니아 걸의 입에서 예전에 듣던 걸쭉한 부산 사투리가 나오는 것이 놀랍고도 약간 우스웠다. 대니얼 강의 아버지는 증권 관련 일을 했고, 어머니는 의사라고 했다. 얘기를 들어보니 그의 아버지는 정말 화끈했던 것 같다. 맞고 다니면 안 된다고 딸에게 어릴 때부터 태권도를 시켰다. 일곱 살에 검은 띠를 땄고 대회에도 나갔다. 아버지가 골프를 좋아하고 오빠도 골프를 해서 대니얼 강도 12살 때 골프를 했는데 시작한지 얼마 되지 않아 홀인원을 했다고 한다. “186야드에서 3번 우드로 팍 쌔려서...”
태권도로 단련된 몸으로, 화끈한 아버지의 지도에 따라 핀만 보고 때려서 만든 첫 홀인원이었다. 아버지가 매우 좋아했을 것 같다. 대니얼의 두 살 터울 오빠 알렉스 강은 아시안 투어에서 뛰고 있다(현재는 미국 PGA 투어 2부 투어에서 뛰고 있다). 오빠는 홀인원은 많이 못했다. “오빠는 머리가 좋아요. 그래서 핀 보고 쏘는 게 아니라 전략적으로 골프를 해요. 저는 홀 보고 그냥 때리니까 보기가 나오기도 하는데 그 성격을 어쩌지 못해요. 핀 보고 쏘면 보기가 나와도 버디도 많이 하고 홀인원도 하니까 크게 손해 보는 건 없다 싶어요.”
오빠 보다 화끈한 대니얼 강이 성격이 비슷한 아버지에 대해 더 각별했을 거다. 골프 선수로의 성장은 매우 빨랐다. 2007년 US여자오픈에서 14세로 참가자격을 받았다. 2010년 US여자 아마추어 챔피언십에서는 제시카 코다를 제치고 우승을 했다. 2011년 US아마추어 챔피언십을 다시 제패했다. 아버지가 가방을 메고 그를 도왔다. US아마추어 2년 연속 우승은 15년 만에 처음이다. 한 번 더 우승했다면 타이거 우즈처럼 US아마추어 3연속 우승 기록을 세울 수 있었을 텐데 그는 프로가 됐다.
2011년 겨울 LPGA Q스쿨에서 기대만큼 성적이 좋지 못했다. 조건부 시드를 땄다. 이듬해 조건부 시드를 풀시드로 업그레이드 했다. 그래서 2013년이 대니얼 강이 본격적으로 도약할 해로 보였다. 그러나 세상일이 마음먹은 대로 흘러가지만은 않는다. 시즌 중반 아버지의 뇌와 폐에서 암이 발견됐다. 2013년 아버지는 세상을 떠났다.
대니얼 강은 한 번 더 US아마추어에 나가 우승했다면 대 기록을 세웠을 텐데 후회하지 않느냐고 했더니 프로가 된 것을 아버지가 보셨으니까 후회는 없다고 했다. “타이거 우즈는 타이거 우즈고, 너는 너다. 항상 아빠는 너 만의 인생을 살라고 했어요.” 그러면서 자신의 오른손 검지 손가락을 보여줬다. just be yourself(있는 그대로의 네가 되라)의 약자인 ‘just be’라는 문신이 새겨져 있었다.

“문신 새긴다고 하니까 아버지가 ‘이왕 하려면 화끈하게 용이나 호랑이 문신을 크게 하고 다니지 그게 뭐냐’고 하데예. 아빠도 나도 화끈하니까요. 그래서 진짜 해볼까 하고 팔에 용 문신 스티커 같은 걸 붙이고 다녀봤어요. 그러다 진짜로 온 몸에 용문신 하면 ‘문신녀’로 텔레비전에 나올 것 같아, 그건 쫌 아닌가 싶다 해서 안했어요.”
그의 입에서 아빠라는 단어는 골프라는 단어만큼 자주 나왔고 아버지 얘기를 할 때 대니얼의 눈시울이 가끔 젖었다. 아버지는 2014년 US오픈에 대니얼 강을 응원하러 갔다가 쓰러지셨다고 한다.
암과 싸우는 아버지 때문에 집중을 할 수가 없었다. 아직도 마음을 가누기가 쉽지 않다. 아버지가 갑자기 보고 싶은 때가 있는데 그 감정들과 싸우는 것이 힘들다고 한다. “마지막으로 아빠와 함께 간 대회가 지난해 미즈노 클래식이었는데 올해 가지 않았어야 했어요. 가니까 아빠 생각에 마음이 많이 흔들리고...”
대니얼 강은 새벽까지 컴퓨터 속 아버지의 사진을 보면서 깨어 있을 때도 많단다. 그래도 골프장에 나와 있는 것이 도움이 된다. 코스에 있으면 아버지와 함께 있는 것 같은 느낌이 든다는 것이다.
2014년 첫 번째 홀인원 자동차를 받은 날은 그의 생일이었다. 대니얼 강은 “아빠가 돌아가신 후 첫 생일날이어서 하늘에 계신 아빠가 주신 거라고 생각해요”라고 말했다.
대니얼 강은 드라이브샷 길이가 아주 긴 편은 아니지만 2014년 이글을 12번 잡았다. LPGA 투어에서 2위다. 홀인원도 2014년 세 번을 했다. 1위다. 아버지의 가르침대로 화끈하게 경기한 덕이다.
2015년엔 아버지에게도 선물을 해야할 때라고 여긴다. “아빠가 골프를 많이 좋아하셨잖아요. 아빠를 위해서라도 우승 해야 하잖아요”라고 했다. 그가 우승을 한다면 아버지 스타일대로 화끈한 우승일 것 같다.
대니얼 강은 오른손을 다시 보여줬다. 손날 부분에 무언가가 보였다. 한글로 쓴 살색문신이었다. ‘아빠’라고 적혀 있었다. 대니얼 강은 그 손을 내밀어 악수를 청했다. “사람들이 내 손을 잡으면 우리 아빠를 만나는 거잖아요.”

피부와 같은 색깔로 새겨넣은 '아빠'라는 문신. [중앙포토]

피부와 같은 색깔로 새겨넣은 '아빠'라는 문신. [중앙포토]

여자 PGA 챔피언십에서 대니얼 강의 우승은 짜릿했다. 10번 홀 보기로 밀리나 했으나 11번홀부터 4연속 버디를 잡아냈다. 브룩 헨더슨과 동타로 맞은 마지막 홀(파 5)에서 대니얼 강은 233야드에서 2온을 시키고 버디를 잡아 챔피언이 됐다. 대니얼 강은 아버지가 세상을 뜨고 나서 목과 손목, 눈 등의 부상으로 부진했다. 대니얼 강은 치료도 하고 재활도 했지만 아직도 “통증은 멘탈”이라고 하면서 이겨내는 파이터형이다. 대니얼 강은 “올해 들어 우승이 전부가 아니라는 생각을 하면서 성적이 좋아졌다”고 말했다. 하키의 전설인 웨인 그레츠키, 남자 골프 랭킹 1위 더스틴 존슨, 1976년 몬트리올 올림픽 10종 경기 우승자로 성전환을 한 케이틀린 제너와 친분이 있다. 그들이 대회를 앞두고 대니얼 강에게 문자 메시지를 보내 선전을 기원했다. 또 한국계 골프 스타인 미셸 위, 리디아 고와 절친이다. 골프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여성으로도 뽑혔다.
최운정(27)이 10언더파 3위, 이미향(24)과 김세영(24), 양희영(28)이 9언더파 공동 4위에 올랐다. 3타를 잃은 신지애(29)는 5언더파 공동 11위로 밀렸다.

성호준 기자
sung.hoju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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