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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르포]씨랜드 참사 18년만에 화성 현장 첫 추모제, 폐허에 청소년수련원 짓는다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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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있었으면 지금 25살이에요. 공부를 엄청 잘했을 것 같아요."
30일 오전 경기도 화성시 서신면 궁평리 솔밭에서 열린 화성 씨랜드 희생 어린이 18주기 추모제에 참석한 신모(53·여)씨는 먼저 간 7살 아들을 떠올리며 이렇게 말했다.
강산이 두 번 바뀔 만큼 시간이 흘렀건만 어머니의 마음속에 아들은 영원히 살아있었다. 아니, 오히려 더 또렷해졌다.
"마음이 우울할 때 유독 생각이 많이 나요. 죽기 전까진 평생 생각이 날 것 같아요." 미소를 지으며 말하던 신씨의 목소리엔 어느새 울음이 섞였다.

화성 씨랜드 참사 희생자들의 18추기 추모식이 30일 화성시 서신면에서 열렸다. 사진은 분향소 모습. 최모란 기자

화성 씨랜드 참사 희생자들의 18추기 추모식이 30일 화성시 서신면에서 열렸다. 사진은 분향소 모습. 최모란 기자

세월호 참사와 함께 대표적인 안전불감증 사례로 꼽히는 씨랜드 화재 참사 희생자들에 대한 추모식이 이날 처음으로 화성에서 열렸다.
씨랜드 참사는 1999년 6월 30일 새벽 당시 경기도 화성군의 씨랜드 청소년수련원 컨테이너 가건물에서 불이 나 유치원생 19명과 인솔교사 등 23명이 숨진 사건이다. 사망자 대다수가 송파구 한 유치원의 원생들이었다.

화성 씨랜드 참사 18주기 추모제 30일 화성서 열려 #1999년 6월 수련원 화재로 유치원생 등 23명 사망 #희생자 상당수가 송파구에 있던 어린이집 원생 #유가족들, 보상비로 안전재단 설립해 그동안 송파서 추모행사 #채인석 화성시장 제안으로 올해 처음 참사 현장 인근서 추모제 #유가족들 참석자들에게 "고맙다" 답례 떡과 수건 건네기도

이후 수련원 인허가 과정에서 화성군 공무원들의 비위 사실이 드러났다.
6살 아들을 잃은 전 국가대표 하키선수 김순덕씨는 정부의 무성의한 대응에 실망해 국가로부터 받은 훈장을 모두 반납하고 뉴질랜드에 이민을 떠나기도 했다.

이 참사로 두 자녀를 잃은 고석씨 등 유족들은 보상비를 모아 2000년 한국 어린이안전재단을 설립했다. 서울시도 씨랜드 참사를 계기로 송파구 마천동에 어린이안전체험관을 건립했다. 씨랜드 희생자 추모식도 매년 어린이안전체험관에서 개최됐다.

추모식에 참가한 한 유가족이 헌화를 하고 있다. 최모란 기자

추모식에 참가한 한 유가족이 헌화를 하고 있다. 최모란 기자

하지만 매년 서울에서 열린 추모 행사에 참석했던 채인석 화성시장이 지난해 유족들에게 "내년에는 화성시에서 추모제를 열고 싶다"고 제안하면서 18주기 추모제는 처음으로 화성시에서 열리게 됐다. 행사 장소도 수련원이 있던 곳 인근이다.

추모제에는 유가족 50여 명을 비롯해 화성시민·공무원 등 300여 명이 참석했다. 화성시는 이날 유가족들이 행사장에 안전하게 올 수 있도록 오전에 송파구로 25인승 버스 2대를 보냈다고 한다.

화성시 소년소녀 합창단이 부른 넥스트의 '날아라 병아리'를 시작으로 본격적인 추모제가 열렸다. 유가족 대표인 고석 한국어린이안전재단 대표는 "18년 전 19명의 어린이가 희생됐는데 당시 희생된 1명의 교사와 아이들을 구하려다 숨진 청년 3명도 함께 기억해 달라"고 말했다.

아이들의 사진이 담긴 추모영상이 상영되자 애써 감정을 추스리던 유가족들의 눈에서 눈물이 흘렀다. 앞에 마련된 작은 분향소에선 헌화를 마치고도 아이들의 사진을 한번 쓰다듬는 등 쉽게 떠나질 못했다.

한 유가족은 채인석 시장과 공무원들의 손을 잡으며 "너무 고맙다"고 인사했다. 유가족들은 이날 추모제에 참석한 사람들에게 "참석해줘서 고맙다"는 의미로 떡과 수건 등이 담긴 답례품 200개를 손수 준비했다고 한다.

화성 씨랜드 참사 희생자 유가족이 분향을 하고 있다. 최모란 기자

화성 씨랜드 참사 희생자 유가족이 분향을 하고 있다. 최모란 기자

추모제를 마치고 유가족들은 참사 현장인 씨랜드를 직접 찾았다. 오랜 기간 사용하지 않았는지 수풀이 우거져 있었다. 불이 났던 가건물은 검은색 차광막 등으로 둘러싸여 있었다.

참사로 6살이던 막냇딸을 잃은 김모(59)씨는 "참사 당시 오고 이번이 두 번째"라며 "당시 뉴스로 사고 소식을 듣고 현장에 왔을 당시 불에 탄 가건물에서 나오던 연기와 열기가 기억이 지금도 생생하다"고 했다.

화성시는 이 곳에서 유가족들에게 '궁평 종합관광지 조성사업 및 청소년수련원 건립' 계획을 설명했다. 시비 497억원을 투입해 개인 소유인 씨랜드 부지를 사들여 희생자 추모공간(330㎡)을 만들고, 인근 궁평리 해송지대 15만㎡에 청소년수련원과 숲속놀이터·캠핑장을 만드는 사업이다. 2019년 12월 완공이 목표다.

희생자 가족들은 "청소년 수련원을 만들기 전에 주변 도로부터 확대해 달라"고 했다. 참사 당시 길이 협소해 소방차가 한꺼번에 들어오지 못해 화재 진압이 늦어졌던 기억을 떠올린 것이다.

씨랜드 화재 희생 어린이 18주기 추모제가 열린 30일 오전 경기도 화성시 서신면 화재 현장에 유가족이 갖다 놓은 꽃다발이 놓여 있다. [연합뉴스]

씨랜드 화재 희생 어린이 18주기 추모제가 열린 30일 오전 경기도 화성시 서신면 화재 현장에 유가족이 갖다 놓은 꽃다발이 놓여 있다. [연합뉴스]

채 시장은 "주변 도로도 정비해 안전에 문제가 없도록 하겠다"며 "어린아이들이 희생된 현장이지만 다른 어린이들이 안전의 중요성을 배우고, 보호받고 성장할 수 있는 공간으로 조성하겠다"고 했다.

화성=최모란 기자 mora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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