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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취재일기

‘반려’의 의미에 합당한 이별을 …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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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9면

서준석 사회2부 기자

서준석 사회2부 기자

서울의 한 자치구 환경미화원 휴게실에 들어서자 고약한 냄새가 코를 파고들었다. 그 냄새를 따라가자 휴게실 옆에 있던 김치냉장고가 나타났다. 냉장고 안에는 검은색 봉투에 담긴 동물 사체들이 쌓여 있었다. 야산이나 길 위 등에서 죽음을 맞이한 유기견과 유기묘들이었다. 환경미화원 박성기씨는 “내 코는 이미 무뎌졌다”며 묵묵히 사체들을 의료용 폐기물 봉투에 옮겼다.

1983년 10월 오스트리아 빈에서는 ‘애완동물(pet)’로 불러 왔던 개·고양이·새들을 ‘반려동물(companion animal)’로 부르자는 제안이 나왔다. 노벨상(생리의학상)을 받은 동물학자 콘라트 로렌츠의 80세 생일을 기념하기 위해 열린 과학 심포지엄에서였다. 참석자들은 ‘애완’이라는 단어에는 동물이 사람의 즐거움을 충족시켜 주는 대상이자 도구라는 의미가 내포돼 있다고 지적했다.

우리 사회에서도 반려동물이라는 용어가 보편적으로 쓰이고 있다. 하지만 정말 ‘더불어 사는 존재’로 여기는지는 의문이다. 한 해에 죽는 약 15만 마리의 반려동물 중 장묘시설에서 화장되는 동물은 3만여 마리뿐이다. 나머지는 대개 쓰레기 종량제 봉투에 넣어 버려진다. 이를 꺼리는 주인들이 동물병원에 맡기기도 하지만 의료용 폐기물로 분류돼 다른 동물 사체, 주사기, 솜 등과 함께 소각된다. 박소연 동물권단체 케어 대표는 “종량제 봉투에 넣어 처리해야 한다는 것을 모르거나 20만원가량의 동물병원에 내는 비용 때문에 불법적으로 야산에 묻거나 몰래 버리는 경우도 많다”고 말했다.

[일러스트=김회룡 기자]

[일러스트=김회룡 기자]

‘주인이 버렸어도 강아지는 죽는 순간까지 주인만 기다린다.’ 반려동물 ‘장례’ 문제를 다룬 본지 기사(6월 27일자 10면)에 대한 댓글 중 가장 많은 공감 표시를 받은 글이다. 기사에 등장하는, 갈비뼈와 다리뼈가 부러진 상태로 종량제 봉투에 담겨 발견된 ‘희망이’도 기적적으로 회생한 뒤 사람의 손길을 반겼다.

이제 이들의 죽음에도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 이미 100여 년 전부터 반려동물 장례를 실시한 미국에서는 사람의 장례에 버금가는 의식을 치르고 있다. 공동묘지에 비석을 세우기도 한다. 독일에는 120여 개의 동물묘지가 있고, 약 180명의 동물 장의사가 활동하고 있다.

한국에는 동물 장묘시설이 24곳(1곳은 영업중지)밖에 없다. 모두 사설 업체가 운영하는 곳이다. 여러 지방자치단체가 화장 시설을 갖춘 공영 장묘시설을 만들려 했지만 이를 혐오시설로 보는 주민의 반발 때문에 성사되지 못했다. 이제 우리도 ‘반려’라는 의미에 합당한 이별 방법을 찾아야 한다. 반려동물 1000만 시대다.

서준석 사회2부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