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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취재일기

‘열정페이’ 현장실습, 교육부에 책임 있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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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9면

남윤서 기자 중앙일보
남윤서 사회1부 기자

남윤서 사회1부 기자

“아, 원래 돈을 받는 거예요?”

얼마 전 취재 중에 만난 김모(20)씨는 수도권의 한 전문대에 재학 중이다. 그는 지난해 여름방학에 한 달간 중소기업에서 ‘현장실습’을 했다. 3학점짜리 ‘기업실무’를 이수하기 위해 필요해서였다. 그는 현장에서 식사만 제공받았을 뿐 실습비는 구경도 못했다고 했다. 또 교육은커녕 가끔 허드렛일을 도와주는 게 고작이었다.

이처럼 현장실습에 나선 대학생 10명 중 8명이 무보수 근무, 이른바 ‘열정페이’를 강요받고 있다는 본지 기사(6월 26일자 14면)가 보도된 뒤 온라인에는 “바로 내 사례”라는 반응이 대거 쏟아졌다. 댓글이 1900여 개나 달렸다. “오히려 돈을 내고 일하고 있다”는 하소연도 적지 않았다.

‘대학생 현장실습 운영 규정’에 따르면 기업은 실습생에게 실습지원비를 주는 게 원칙이다. 하지만 대부분은 힘들게 일하거나, 경력에는 도움 안 되는 허드렛일을 하면서 실습비는 한 푼도 받지 못하고 있다. 그런데 취재를 해보니 기업도 할 말이 많았다. 경기도의 한 중소기업 관계자는 “4주 실습생은 일을 가르치다가 실습 기간이 끝나는데 기업이 어떻게 돈까지 주느냐”고 말했다.

학생들을 ‘열정페이’로 내모는 대학들도 나름의 이유는 있었다. 실습생 숫자를 빨리 늘리기 위해서다. 교육부·고용부 등의 재정지원사업에서 지원 대상 대학을 선정할 때 재학생 중 현장실습생 비율이 얼마나 되는지 따지기 때문이다. 그러다 보니 한 푼이 아쉬운 대학들은 실습생 처우는 상관없이 숫자 늘리기에만 매달리고 있었다.

현장실습 대학생들의 ‘열정페이’를 다룬 본지 기사에 붙은 대학생들의 댓글. [사진 페이스북 캡처]

현장실습 대학생들의 ‘열정페이’를 다룬 본지 기사에 붙은 대학생들의 댓글. [사진 페이스북 캡처]

이렇게 하나씩 하나씩 취재해 가다 보니 결국 문제의 핵심에는 교육부가 자리하고 있었다. 재정지원사업 등의 평가지표에 단순 실습생 숫자만 끼워 넣는 식인 탓에 학생들만 실습비 한 푼 못 받고 현장에 내몰리는 셈이 됐다. 상황이 이런데도 교육부는 심각성을 인식 못하는 눈치다.

지난 3월 현장실습 제도 개선 계획을 발표했지만 엉뚱하게도 ‘실습비를 대학과 산업체가 협의해 결정하도록 자율성을 높인다’는 내용을 넣었다. 돈을 안 줘도 되는 근거를 오히려 마련해 준 셈이다. 그러면서 교육부는 당시 보도자료를 통해 “현장실습이 도입 취지에 맞게 운영되면 열정페이 문제는 자연스럽게 해결될 것으로 기대한다”고 적었다. 딴 세상에 사는 얘기나 다름없다.

교육부는 이제라도 현장실습 상황을 다시 점검하고 재정지원사업에서 불합리한 평가지표는 없는지 따져봐야 한다. 그래야 가뜩이나 극심한 ‘취업난’에 시달리는 대학생들이 현장실습에서마저 열정페이를 강요받는 상황을 조금이나마 줄일 수 있을 것이다.

남윤서 사회 1부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