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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 report] 밑창만 이탈리아산 … 루이비통 명품 맞니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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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2면

명품 브랜드라고 가방·의류·신발 등 모든 제품을 본사가 위치한 국가에서 만드는 것은 아니다. 오래전부터 명품 브랜드들은 최고의 노하우를 가진 곳에서 제품을 만들기 위해 품목에 따라 생산지를 달리했다. 이를테면 구두나 모피 제조 노하우는 유럽에서도 이탈리아를 최고로 친다. 국적을 막론하고 명품 브랜드들은 신발과 모피코트는 이탈리아에서 만드는 것을 선호한다.

영국 가디언, 르포 기사 통해 폭로 #인건비 싼 루마니아 중부서 생산 #거의 완성품 형태로 이탈리아 수출 #밑창만 붙여 수백만원대에 판매 #EU 원산지 표기 규정상으론 ‘합법’ #“비용 낮춰 수익 늘리려는 꼼수” 지적

프랑스 명품 브랜드 루이비통도 슈즈 라인은 주로 이탈리아에서 만든다. 베네치아 인근 작은 마을에 터 잡은 슈즈 공방 ‘피에쏘 아르티코(Fiesso d’Artico)’가 신발제작을 맡고 있다. 이 지역은 13세기부터 신발을 만들어왔으며, 대대로 전수된 신발 공예로 유명하다. 루이비통은 이런 노하우(savoir-faire)를 물려받은 장인들이 자사의 명품 구두를 만든다고 홍보한다.

하지만 실상은 전혀 다른 것으로 나타났다. 루이비통 신발의 상당수는 루마니아 중부 지방의 공장에서 만들어지고 있다고 영국 일간지 가디언이 17일(현지시간) 보도했다. 가디언은 카르파티아 산맥 아래에 자리한 소도시 시스나디에 있는 루이비통 신발 공장 ‘소마레스트’에 들어가 취재한 르포 기사를 실었다. 소마레스트는 루이비통이 속한 루이비통 모에 헤네시(LVMH)그룹의 자회사다.

루이비통은 이 공장에서 밑창을 제외하고 거의 완성된 신발을 만들어 이탈리아로 수출한다. 이탈리아 공장에선 여기에 밑창을 붙이고 원산지를 ‘메이드 인 이탈리아’로 표시한 뒤 전 세계로 판매한다고 가디언이 보도했다. 신문은 “매주 루이비통 로고가 있는 신발 수만 켤레가 공장에서 반출되는 것을 확인했으며, 신발은 사소한 디테일까지 모두 완성된 상태였다”고 전했다. 이곳에서는 연간 10만 켤레가 생산되는 것으로 추정된다.

공장 홍보 담당자도 이런 사실을 확인했다. 그는 “고위직은 프랑스인이 맡고 있으며, 원부자재도 모두 프랑스에서 수입해 온다”며 “조립을 마친 반제품을 프랑스나 이탈리아로 수출하면 그곳에서 마무리 작업을 하기 때문에 유럽연합(EU)법에 따라 ‘메이드 인 프랑스’ ‘메이드 인 이탈리아’ 라벨을 붙이게 된다”고 설명했다.

유럽의회는 2014년 ‘메이드 인 OOO’ 라벨 부착을 의무화하는 규정을 도입했다. 제품 생산이 여러 나라에 걸쳐 진행되는 ‘생산 과정의 세계화’가 심화되면서 원산지 표시 논란이 불거진 데 따른 조치다.

2개국 이상에서 상품이 생산된 경우 공정의 ▶마지막 단계에서 ▶실체적 변형이 이뤄지고 ▶경제적 정당성이 확인되면 해당 국가를 원산지로 표기해야 한다. 이에 따라 신발 제조 공정의 마지막 단계로 이탈리아에서 밑창을 붙이면 합법적으로 ‘메이드 인 이탈리아’로 인정받게 된다. 가디언은 “제조 비용을 낮춰 수익을 늘리기 위한 꼼수”라고 지적했다.

일반적으로 명품이 ‘희소성’을 강조하는 것과 달리 루이비통은 ‘대중적’인 명품을 지향한다. 1980년대 브랜드를 확장하면서 중산층을 공략하는 전략을 택했다.

국내에서도 3초에 한 번씩 길에서 마주친다고 ‘3초 백’, 이름만큼 흔하다고 ‘지영이 백’으로 불렸다. 대량 생산하는 명품이라는 전략이 성공하면서 LVMH그룹은 럭셔리 브랜드 70개를 보유한 세계 최대 명품 그룹으로 성장했다.

루이비통이 루마니아로 눈을 돌린 것은 저임금 노동력을 활용하기 위해서다. LVMH그룹은 2002년 이 곳에 첫 공장을 세웠다. 생산량이 점점 늘어나자 2009년 인근에 제2공장을 설립해 핸드백과 트렁크에 사용하는 부속품을 만든다.

루마니아는 유럽에서 인건비가 가장 싼 곳 중 하나다. 공장 홍보담당자는 “공장 근로자 734명은 루마니아의 일반 의류 공장에서 옷을 만드는 노동자들이 받는 평균 임금을 받는다”고 말했다.

현지에서 활동하는 노동자 인권 단체에 따르면 루마니아 의류 노동자의 한 달 평균 임금은 133유로(약 17만원)다. 루마니아의 의류 공장들은 열악한 근무 환경 때문에 “유럽의 스웨트숍(sweatshop·착취 노동이 이뤄지는 곳)”으로 불린다. 방글라데시·스리랑카 등 아시아의 스웨트숍에 빗댄 표현이다.

이와 비교하면 루이비통 공장은 노동 환경이 좋은 편이다. 작업장은 밝고 깨끗하며, 직원들은 앉아서 일한다. 회사 관계자는 “루마니아에서는 이런 작업 환경을 근로자들이 원한다”며 “주말 휴무를 지키고, 초과근무 수당을 지급하며, 무독성 화학물질을 사용한다”고 소개했다. 현지 노동 감시당국도 이 공장에 대한 민원이나 신고가 접수된 것은 없다고 밝혔다.

자료: 밀워드 브라운, 2017 글로벌 톱 100 브랜드

자료: 밀워드 브라운, 2017 글로벌 톱 100 브랜드

럭셔리 브랜드들이 제조 비용이 싼 곳으로 생산기지를 옮기는 추세는 2000년대 이후 급증했다. 버버리·아르마니·프라다·미우미우·발리·돌체 앤 가바나 등은 일부 제품을 중국에서 만든다. 프라다는 가방·의류·신발 등 상품의 20%를 중국에서 제조하고, 베트남·터키·루마니아에도 생산 기지를 갖췄다. 프라다의 수석 디자이너인 미우치아 프라다는 월스트리트저널과의 인터뷰에서 “중국의 제조 기술이 좋기 때문에 머잖아 누구나 동참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유럽 명품 브랜드는 프랑스나 이탈리아에서 제품을 정교하게 만들면서 명성을 쌓았다. 인건비가 비싼 유럽에서 노하우를 갖고 만들었다는 점에서 비싼 가격이 어느 정도 정당화되기도 했다.

루이비통 신발 가격은 80만원대에서 시작해 300만원대까지 간다. 한 럭셔리 브랜드 소비자는 “대대로 전수받은 손 기술과 장인정신으로 만든 제품이라는 믿음 때문에 비싼 가격을 지불하는 것인데, 저임금 근로자가 단기 훈련을 받고 만든 신발을 프랑스산, 이탈리아산으로 포장해 판다면 불공정하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루이비통은

●1854년 프랑스 파리에서 루이 비통이 여행용 트렁크 회사로 창업
●핸드백·지갑 등 가죽 제품과 의류·신발·향수·시계로 확장
●1987년 코냑 브랜드 모에 헤네시와 합병, 세계 최대 명품 그룹 LVMH 탄생
●LVMH그룹은 크리스찬 디올, 지방시, 겔랑, 펜디 등 70여 개 브랜드 보유
●2016년 LVMH그룹 매출액 376억 유로
●명품 브랜드 가운데 최고 브랜드 가치

박현영 기자 hypark@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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