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ㆍ미동맹은 생존 위한 도구이지 목적 아니다"

중앙일보

입력

문정인 특보(가운데)가 16일 워싱턴특파원 간담회에서 함께 방미했던 홍익표 더불어민주당 의원(왼쪽), 김종대 정의당 의원과 함께 미군 전략자산의 전개 문제를 설명했다. [채병건 워싱턴 특파원]

문정인 특보(가운데)가 16일 워싱턴특파원 간담회에서 함께 방미했던 홍익표 더불어민주당 의원(왼쪽), 김종대 정의당 의원과 함께 미군 전략자산의 전개 문제를 설명했다. [채병건 워싱턴 특파원]

문정인 특보 워싱턴서 파격 발언 쏟아내 #"항공모함, 핵잠수함 올 필요 없어" #"신도 사드 환경영향평가 뛰어 넘지 못해"

 문재인 대통령의 통일외교안보 특보인 문정인(66) 연세대 특임명예교수가 지난 16일(현지시간) 워싱턴에서 파격적인 발언을 쏟아냈다. 문 특보는 동아시아재단과 우드로윌슨센터가 공동 주최한 세미나와 이어진 특파원 간담회에서 한ㆍ미동맹, 고고도미사일방어(THAADㆍ사드)체계, 한ㆍ미 군사 훈련 등 양국 간 주요 현안마다 직격 발언을 내놨다.

  문 특보는 “한ㆍ미동맹은 우리의 생존을 위한 수단이자 도구이지 그게 목적 자체는 아니다”라고 밝혔다. “사드 배치를 주장하며 (이를 동맹에 연결해) 동맹이 목표 그 자체처럼 돼 버린 상태”라는 비판도 했다. 문 특보는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하는 것을 보라. 민생이 중요하니 동맹을 갈아치울 수 있다(는 것 아닌가)”라며 “그건 수용하면서 우리 대통령이 민주주의와 민생 때문에 사드 문제를 보다 신중하게 고려하겠다고 하면 나쁜 게 될 수 있나”라고 밝혔다.

 그러면서 고고도방어(THAADㆍ사드)체계 배치와 관련해 “사드가 해결되지 않으면 한ㆍ미동맹이 깨진다는 데 그게 무슨 동맹이냐”고 반문했다. 그는 “사드가 동맹의 전부인 것처럼 말하면 수용하기 어렵다”며 “방어용 무기 체계인 사드 때문에 동맹이 깨진다면 유사시 미군이 온다는 데 대해 회의감이 든다”고 말했다. 문 특보는 “사드의 군사적ㆍ기술적 유용성을 놓곤 논쟁이 한창 일고 있다”고도 언급했지만 “이건 교수로서의 입장”이라고 단서를 달았다.

  문 특보는 사드 배치에 앞선 환경영향평가는 4계절이 소요돼 최소 1년이 걸린다는 점을 강조하면서 “주한미군도, 우리 대통령도 한국법 위에 있을 수 없다. 신도 그 규정을 건너뛸 수 없다”고 단언했다.

 문 특보는 북한이 핵ㆍ미사일 활동을 중단하면 한ㆍ미 합동군사훈련과 미군 전략자산의 한반도 전개를 줄일 수 있다는 입장을 밝히면서 “항공모함이 올 필요가 없다는 것이고, 핵잠수함이 꼭 전개할 필요가 있느냐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그럴수록 북한이 핵과 미사일 도발을 강화해 긴장이 고조된다. (전략자산을 보내지 않았던 과거와 같이) 기존처럼 하면 위기가 완화되지 않겠는가”라고 논리를 들었다.
 문 특보는 “칼 빈슨 항공모함이 지난 4월 훈련이 끝나면 떠나야 하는데 5월까지 있었다”며 “한반도를 안정시키려면 불필요하게 할 필요가 없다”고도 했다. 또 “한ㆍ미는 동맹인 만큼 동맹의 한 축이 요구하면 다른 한 축이 일방적으로 거부하지 못할 것”이라고도 말했다. 문 특보는 이날 대부분의 발언을 놓고 “정부 입장이 아니라 교수로서의 입장”이라고 전제했다.

 문 특보는 정부 출범 직후 국가안보실장으로 유력하게 검토됐다. 청와대 관계자는 “문 특보에 대한 문 대통령의 신뢰는 각별하다”며 “국가안보실장 임명 직전까지 고심을 했고, 그를 안보실장에 앉히기 위한 인사회의도 열었다”고 전했다. 김대중ㆍ노무현 정부 시절 두 차례의 남북정상회담 당시 대표단으로 평양을 방문하는 등 여권내 외교안보라인에서 막강한 문 특보의 비중을 감안한 고민이었다. 결국 문 특보가 자유로운 위치를 원해 특보로 대통령을 보좌하는 쪽으로 결론났다.

 하지만 지난 19대 대통령 선거에서의 역할은 크지 않았다고 한다. 문재인 캠프에서 활동했던 인사는 “2012년 대선때 문 특보는 캠프에서 거의 좌장 역할을 하며 다양한 아이디어와 정책들로 조언했지만 지난해 연세대를 퇴임한 이후 상당 시간 미국에서 머무는 등 이번 선거에선 역할이 미미했다”고 전했다.

 그럼에도 문 대통령 캠프의 외교안보 분야에서 핵심 역할을 한 김기정 연세대 교수 등과 수시로 의견을 나누며 막후 역할을 했다고 한다. 이때문에 정권 초반 그와 김 교수로 이어지는 ‘연ㆍ정 라인’이 주목을 받기도 했다.

  그는 특보로 임명된 이후 각종 언론을 통해 “아직 환경이나 여건이 조성되지는 않았지만 남북정상회담은 당위” 등 문 대통령의 구상과 비슷한 말을 쏟아 냈다. 북한에도 라인을 구축하고 있다는 게 주변의 이야기다.

 미국 국무부는 문 특보의 발언을 사실상 일축했지만 문 특보를 만나 설명을 들은 프랭크 자누지 맨스필드재단 대표는 “문 특보는 한ㆍ미동맹은 ‘강철같이 단단하다’는 점을 분명히 했으며 전략자산 전개와 한미 합동군사훈련 축소도 북한이 핵ㆍ미사일 시험을 중단할 경우로만 한정했다”고 옹호했다.
워싱턴=채병건 특파원, 서울=정용수 기자 mfemc@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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