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일기] 새 공정위원장 ‘메기 효과’를 기대한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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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진석경제부 기자

박진석경제부 기자

“교수님, 이렇게 바쁘신데 수업하실 시간은 있습니까?”

“ 딴짓한다는 소리 듣기 싫어서 수업만큼은 제대로 챙기고 있습니다.”

2010년 4월의 서울중앙지검 1층 흡연실에서 김상조 한성대 교수와 나눈 대화다. 한 대기업 전·현직 대표이사의 불법행위 의혹 고발 사안에 대한 김 교수의 기자회견이 끝난 뒤 찾은 그곳에 그가 있었다.

‘분식회계와 배임 등 복잡한 법리에 대한 깊이 있는 질문을 추가로 던져야겠다’는 다짐도 잠시, 기자의 입에서는 엉뚱한 질문이 튀어나왔다. 미디어 노출이 많은 교수는 수업을 제대로 챙기지 않을 것이라는 선입견을 무심코 토해낸 것이다. 기분 나쁠 수 있었던 질문이었지만 그는 불쾌한 기색 없이 성실히 답변을 해줬다. 이후 그를 신문이나 TV에서 볼 때마다 기자의 머릿속에는 그 장면이 자연스럽게 떠올랐다.

김상조 신임 공정위원장은 1990년대 중반부터 그 누구보다도 열심히 부조리한 사회 현실에 대해 목소리를 높였던 대표적 현실 참여 학자였다. 그랬던 그가 어떤 생각에서였는지 관에 몸을 담기로 결정했다. 과거 정부에서도 김 위원장 정도의 파격 입각이 드물었던 건 아니다. 하지만 그 중 상당수는 전문성과는 무관하게 눈길끌기 용 ‘깜짝 스타’로 영입된 경우였다. 그들은 정해진 수순처럼 초반에만 시선을 끌다가 이내 해당 부처 관료들에게 녹아나면서 소리 없이 사라졌다.

김 위원장은 20년 이상 공정위의 업무를 지켜보고 조언하고 비판해왔다. 업무 관련성이나 전문성에 대해 우려를 할 필요는 없어 보인다. 기자는 거기서 한 발 더 나아가 그가 제대로 된 ‘메기 효과’를 내주길 바란다. 불공정 경쟁, 갑을 관계, 기업지배구조 등 공정위가 다루는 사안들은 현 단계 한국 사회 모순의 근원으로 지목될 정도로 중요하다. 이 사안들에 대한 해법을 찾지 못하면 실타래처럼 얽힌 다른 문제들의 해결 역시 기대하기 어려워진다.

마침 시장에서는 지주회사의 주가가 올랐다. 김 의원장의 주도로 대기업 개혁이 이뤄지면 각종 병폐 때문에 ‘디스카운트’된 국내 대기업이 제 가치를 인정받을 것이라는 기대감이 반영된 결과다.

다른 한편으로는 과잉 규제에 대한 불안도 있다. 경제 성장의 한 축은 기업이다. 기업에 대한 무차별적인 공세는 성장의 씨앗을 죽이는 결과가 될 수 있다.

적절한 제도를 통해 불공정한 경쟁 환경을 개선하면서도 성장의 온기를 지피는 게 김 위원장에게 주어진 임무다.

박진석 경제부 기자 kailas@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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