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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25층 이상 건물에 물 뿌릴 수 있는 사다리차 전국 2대뿐…런던 화재참사 남의 일 아니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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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런던 아파트 화재사고가 스프링클러 때문에 피해가 컸다는 뉴스를 보고 우리 아파트 얘기 같아 안타까웠죠.”

지난해 2월 부산시 해운대구 반여동의 한 아파트 15층에서 화재가 발생하자 굴절사다리차가 출동, 주민을 구조하고 화재를 진압하고 있다. [사진 해운대소방서]

지난해 2월 부산시 해운대구 반여동의 한 아파트 15층에서 화재가 발생하자 굴절사다리차가 출동, 주민을 구조하고 화재를 진압하고 있다. [사진 해운대소방서]

지난 16일 오후 만난 부산시 해운대구에 있는 38층짜리 A오피스텔 주민 김모(63)씨의 말이다. 이 오피스텔은 2010년 10월 1일 발생한 화재로 54억원이 재산피해가 발생했다. 당시 불이 30분 만에 38층까지 번지면서 주민들이 대피하는 소동이 벌어졌다.

사다리차 최대한 높여도 25층…고층 건축물 화재 속수무책 #50층(200m) 이상 초고층 건축물 107동, 30층(85m)이상도 3266동 #전국 사다리차 453대 중 25층 이상 직접 직화 가능한 건 2대 #전문가 "1년에 한번 사용해도 고가 사다리차 확충해야" 지적

고층 건축물이 많은 부산에는 화재 때 진압할 수 있는 굴절사다리차가 부산 해운대소방서(센텀 119안전센터)에 배치돼 있다. 2012년 7월 핀란드에서 18억원에 사들인 70m 높이다. 일반 아파트 기준으로 23~25층까지 닿을 수 있다.

 지난 2010년 10월 발생한 화재로 수십억원의 재산피해와 인명피해를 가져온 부산 해운대 마린시티 우신골든스위트. 해운대소방서가 고가사다리차를 이용해 화재 진압과 인명구조 훈련을 하고 있다. [중앙포토]

지난 2010년 10월 발생한 화재로 수십억원의 재산피해와 인명피해를 가져온 부산 해운대 마린시티 우신골든스위트. 해운대소방서가 고가사다리차를 이용해 화재진압과 인명구조 훈련을 하고 있다. [중앙포토]

이 굴절사다리차는 지난해 2월 부산 해운대구 반여동 15층 아파트에서 화재 때 출동해 진가를 발휘했다. 당시 현장에 출동했던 해운대소방서 배봉호(51) 소방위는 “굴절사다리차를 35m까지 펼쳐 화염에 휩싸여 있는 15층 주민을 구조했다”며 “30초만 늦었어도 2차 폭발로 50대 남성이 목숨을 잃을 수 있었다”고 회고했다.

이 굴절사다리차는 매년 300회가량 출동한다. 55m 높이의 사다리차보다 출동횟수가 3~4배 정도 많다. 배 소방위는 “굴절사다리차는 활용도가 높아 과부하가 걸린 상태”라며 “같은 크기의 굴절사다리차를 더 확충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지난 14일(현지시간) 영국 런던에서 발생한 고층 아파트 화재를 계기로 고층 건축물의 소방 안전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한국에서는 지난 2월 경기도 동탄신도시 주상복합건물 메타폴리스 화재가 발생, 40여 명의 사상자가 발생하기도 했다.

지난 2월 4일 화재가 발생한 경기도 화성시 동탄 메타폴리스 화재 현장. [중앙포토]

지난 2월 4일 화재가 발생한 경기도 화성시 동탄 메타폴리스 화재 현장. [중앙포토]

국민안천저는 런던 고층 아파트 화재가 발생하자 국내 고층 건축물에 대한 특별 안전대책을 마련했다. 국내 30층 이상 고층 건축물 3266곳의 화재예방을 위해 안전분야 관련부처 합동으로 긴급 안전점검에 나설 방침이다. 점검은 소방시설과 피난·방화설비, 건축 외장재, 가스·전기설비 등을 중심으로 이뤄진다. 고층 건축물 안전 관리자를 불러 교육하고 화재위험이 높은 내부 인테리어 공사 때는 사전에 허가를 받도록 했다.

매년 늘어나는 고층 건축물의 화재발생을 효과적으로 예방하기 위해서는 안전점검 외에도 고가사다리·굴절사다리차 등 대형 소방장비를 확충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지난해 말 기준 국내 초고층(50층 또는 200m 이상) 건축물은 107개 동으로 집계됐다. 부산이 28개 동으로 가장 많고 서울 22개 동, 인천 19개 동, 경기 19개 동이다. 초고층 건축물은 2012년 69개 동에 불과했지만 2014년 89개 동, 2015년 95개 동으로 매년 증가세를 보이고 있다.

현재 전국에 30층 이상 고층 건축물은 3266개 동이다. 2010년(753개 동)에 비해 4배 이상으로 늘었다. 고층 건축물은 경기도가 1274개 동으로 가장 많고 인천 533개 동, 서울 439개 동, 부산 362개 동 순이다.

지난 2월 4일 화재가 발생한 경기도 화성시 동탄 메타폴리스 화재 현장. [중앙포토]

지난 2월 4일 화재가 발생한 경기도 화성시 동탄 메타폴리스 화재 현장. [중앙포토]

하지만 소방당국이 보유 중인 고가사다리차는 50층 이상 초고층 건축물 화재진압이 사실상 어려운 실정이다.

국민안전처에 따르면 전국 소방서들이 보유 중인 사다리차는 모두 435대다. 이 가운데 아파트 25층(72m) 이상을 직접 진화할 수 있는 장비는 굴절사다리차(70m) 2대 뿐이다. 서울과 부산에 각각 1대씩 보유 중이다. 사다리차 가운데 가장 많은 장비는 55m짜리로 전국에 160대가 있다. 이 사다리차는 아파트 20층까지만 접근이 가능하다.

전국 소방서에서 운영 중인 사다리차 현황 및 전국 고층 건축물 현황.

전국 소방서에서운영 중인사다리차 현황 및 전국 고층 건축물 현황.

경기소방본부는 물을 고압으로 분사할 수 있는 소방헬기 도입을 검토했지만 고층건물 주변에서 발생하는 급격한 기류변화로 위험이 높다고 판단, 추진을 중단했다.

소방대원이 공기통을 메고 건물 옥상이나 고층으로 진입해 불을 끄는 데도 한계가 있다는 게 현장 소방관들의 설명이다. 지난 2013년 현장훈련에서 소방관이 20㎏짜리 공기통을 메고 계단을 걸어 67층 화재현장에 도착하는데만 22분이 걸렸다. 계단을 뛰다시피 올라가다보니 50분을 버틸 공기통이 10분만에 바닥을 드러내기도 했다.

2012년 3월 건축법 개정 시행령에 따라 초고층 건축물은 30층마다 피난안전구역을 설치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소방당국은 고층 건축물 화재 피해를 줄이기 위해서는 철저한 점검과 예방, 반복된 훈련이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세계적으로 가장 긴 굴절사다리차는 100m짜리(약 35층까지 화재 진압 가능)로 핀란드가 보유중이다.

지난 14일(현지시간) 영국 런던 서부 켄싱턴 24층 임대아파트에서 발생한 화재. [AP=연합뉴스]

지난 14일(현지시간) 영국 런던 서부 켄싱턴 24층 임대아파트에서 발생한 화재. [AP=연합뉴스]

국민안전처 손정호 소방제도과장은 “고층 건축물 대상으로 정밀 안전점검을 실시해 위험요소를 사전에 제거할 방침”이라며 “화재예방은 건축주 등 이해관계자들의 안전의식이 무엇보다 중요하기 때문에 안전관리를 더 철저히 해야 한다”고 당부했다.

전문가들은 고층 건축물 등의 화재를 신속하게 진화하기 위해 노후장비의 교체가 필요하다고 지적한다. 주요 대도시에 고가사다리차를 추가로 배치하는 것도 화재 발생 때 피해를 줄이는 방법이라고 주문한다.

황철홍 대전대 소방방재학과 교수는 “1년에 1회 사용하더라도 고층 건축물의 효과적 화재진압을 위해서는 고가사다리차의 추가 확보가 필요하다. 고층 건축물의 재난 안전 대비책을 심의할 때 건물 특성에 맞는 기준을 엄격하게 적용하는 방안도 검토해야 한다”고 말했다.

세종·부산=신진호·이은지 기자 shin.jinho@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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