협치는 불가능한가. 협치를 막는 한국정치의 본질적 풍토 3가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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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 정부의 ‘협치’(協治)가 증발 위기에 처했다. 야 3당이 강하게 반대해 온 강경화 외교부 장관 후보자에 대해 15일 문 대통령이 임명 강행 의사를 분명히 밝히면서다. 자유한국당 정우택 원내대표는 이날 “국회 차원의 협치는 끝났다. 강경한 수단을 강구할 수밖에 없다”며 사실상 협치 폐기를 선언했다. 문재인 정부 출범 37일 만에 갈림길에 선 ‘협치’에 대해 전문가들은 “한국 정치 특유의 제도와 관행이 ‘협치’를 불가능하게 만들고 있다. 예견된 결과”라고 평가했다.

▶제왕적 대통령제의 한계=야권의 협조가 필수적인 여소야대 국면에서 문재인 정부는 출범 때부터 ‘협치’를 국정철학으로 내걸었다. 정치권의 대립에 염증을 느껴온 일반 국민들 역시 ‘협치= 시대정신'으로 인식하고 있다. 문 대통령도 취임 9일 만에 여야 원내대표를 청와대로 초청하고, 여·야·정 협의체를 선제적으로 제안하는 등 적극적이었다. 하지만 장관 인선과 관련된 갈등으로 ‘문재인식 협치’엔 제동이 걸렸다. 정치학자들은 “내각제 요소인 ‘협치’를 대통령제에 적용하려 했던 것 자체가 무리”라고 지적한다. 대통령제 원리가 ‘견제와 균형’이라면, 내각제는 ‘소통과 협치’를 표방한다.

김형준 명지대 교수는 “대통령제에선 입법부가 행정부를 감시하는 게 기본이다. 하지만 여당이 행정부와 한 몸이 돼 야당과 싸우는, ‘제왕적 대통령제’의 국내 정치에서 ‘협치’는 현실성이 떨어진다"며 "전적으로 권력자의 선의에 의존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이것이 '청와대ㆍ집권당 vs 야당'의 극한 대립이 반복되는 이유라고 설명했다.
박명호 동국대 교수는 “‘협치’의 개념이 포괄적이라 해석의 여지도 많다. 자기 뜻에 맞는 것만 ‘협치’라고 주장하는 소모전이 계속될 것”이라며 “차기 개헌에선 명확한 선 긋기가 필요하다”고 언급했다.

▶중간지대는 사쿠라,타협은 굴복=협상 자체에 대한 부정적 인식도 ‘협치’를 가로막는 요소다. '서로 주고 받는 것은 비겁한 거래'로 여기는 풍토가 정치를 선명성 경쟁으로만 몰아간다는 것이다. 15일 청와대 고위관계자는 중앙일보와의 통화에서 “인사와 민생(추경 예산)을 연계하는 것은 정치적으로 낡은 방식이다. 야당의 부당거래에 응수하는 것이 건강한 협치인가”라고 힐난했다. 반면 국민의당 박주선 비대위원장은 “협치를 할 수 밖에 없는 현실을 무시하고 외면하겠다는 것인가. 정부가 하는 일을 무조건 국회에서 수용해야 한다는 일방적 자세가 문제”라고 반박했다. 이런 대립이 격화될수록 완충지대는 약해질 수 밖에 없다. 더불어민주당과 자유한국당 사이에서 줄타기를 하며 입지를 구축해 오던 국민의당도 최근 ‘사쿠라’ ‘2중대’ 등으로 몰리자 강경모드로 선회하고 있다. 김광웅 서울대 명예교수는 “‘한번 물러서면 계속 밀린다’는 패권적 사고로는 협치는 불가능하다”고 꼬집었다.

▶실행전략의 부재=그럴듯한 레토릭(수사)만 있고, 구체적인 방안이 없다는 것도 ‘협치’의 걸림돌이라는 분석이다. 임혁백 고려대 명예교수는 “문재인 정부 초대 인사 면면에 대해 나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충분히 개혁적”이라고 전제한 뒤 “다만 자신이 다 임명하면 어떡하나. 협치를 하려면 야당의 요구도 일정부분 수용하는 정교함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최소 장관 자리 한두개는 국민의당과 바른정당에 내줬으면 이토록 시끄럽진 않았을텐데…”라고도 했다.
일단 붕괴된 ‘협치’가 다시 가동되기엔 적지 않은 냉각기가 소요될 전망이다. 문 대통령은 높은 지지율을, 야당은 의석수를 믿고 물러설 기세가 아니기 때문이다. 결국 꼬인 실타래를 푸는 것 역시 최종 국정책임자인 대통령의 몫이라는 지적이다. 임혁백 교수는 “대립정치에 익숙한 한국에서 협치가 쉽게 뿌리내릴 수 있겠는가. 인내심을 갖고 포기해선 안 된다”고 조언했다.
최민우ㆍ추인영 기자 minwoo@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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