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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상이변 따른 식량 부족이 ‘퍼펙트 스톰’ 부른다면…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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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35호 27면

[기후변화 리포트] 민주주의와 재난대응의 수준

전국적으로 극심한 가뭄이 이어지고 있는 5일 오후 경기 안성시 고삼면 고삼호수에 물이 말라 밑바닥을 점차 드러내고 있다. [뉴시스]

전국적으로 극심한 가뭄이 이어지고 있는 5일 오후 경기 안성시 고삼면 고삼호수에 물이 말라 밑바닥을 점차 드러내고 있다. [뉴시스]

예전에 영국의 광부들은 카나리아 새와 함께 광산에 들어갔다. 호흡기가 민감한 카나리아는 인간보다 유독가스에 빠르게 반응하므로 광부들은 카나리아를 보고 닥쳐올 위험을 미리 감지할 수 있었다. 미국 외교정책포커스 소장인 존 페퍼는 2008년에 ‘북한은 왜 지구 위기의 카나리아인가?’라는 논문을 일본 학회지에 실었다. 여기서 1990년대 북한에서 일어난 기아 사태를 다루었다. 앞으로 지구 위기도 북한과 같은 방식으로 일어날 가능성이 크므로, 이에 대한 종합적인 대책을 세우지 않으면 ‘북한 꼴’이 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90년대 북한 기아는 석유 부족 탓 #비료·농약·농기계에 석유는 필수 #유가상승·기상재해 겹쳐 고통 가중 #2010년 러시아 가뭄 따른 밀 수출 중단 #북아프리카·중동의 식량 폭동 불러 #지구 도시 인구 식량 비축분 1주일치 #기후변화는 환경 문제뿐만아니라 #식량·식수 확보 전쟁의 요인 될 수도

페퍼 소장은 북한 농업이 1990년대에 붕괴한 것은 경작 방식의 후진성 때문이 아니라 오히려 선진성 때문임을 주장했다. 북한은 석유를 기반으로 하는 농업이 발달한 편에 속했다. 위기가 발생하기 전까지 북한은 넉넉하지 않았지만, 식량을 자급자족할 수 있었다. 1980년대 말 이전까지 옛 소련과 중국으로부터 석유를 매우 싸게 공급받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갑자기 싼 석유 공급이 끊기면서 석유가 부족한 세상을 살아가야만 했다.

석유는 농업 생산성에 있어 결정적이다.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난 직후, 대략 20억 명이던 인구가 지금 70억 명 이상으로 늘어날 수 있었던 것은 단위 면적당 생산량을 2.5~3배 늘려준 석유 농업 덕분이었다. 농업에 석유가 투입되지 않았다면 전 세계 인구는 더욱 적고 만성적인 영양실조에 걸린 사람들의 비율이 더욱 높았을 것이다. 비료도 농약도 석유화학 제품이다. 논과 밭을 갈고 씨를 뿌리고 수확하고 찧는 기계는 모두 석유로 움직인다. 노동은 비싸고 석유는 싸기 때문이다. 석유는 온실 재배, 운반과 보관에도 빠질 수 없는 요소이다. 크게 보면 석유도 식량의 범주에 속한다. 쉽게 말해서 우리가 먹는 한 공기의 밥 대부분이 석유이므로 석유가 부족하면 배가 고파진다.

농사를 짓기에 좋은 평지가 부족한 북한은 석유 부족으로 인한 식량 생산 감소를 대처하기 위해 경사지의 나무를 베어 다락밭을 확대했다. 하지만 소중한 산림생태계를 희생하고 조성한 다락밭은 지속 가능하지 못했고, 지력이 떨어져 점점 황폐해졌다. 여기에 산림 훼손으로 호우에 산사태가 일어나고 농경지까지 피해를 보는 경우가 많아 식량 생산에도 피해가 심각했다. 이 상황에서 1995년 대홍수로 인해 급류가 표토를 쓸어 가고 그 자리에 돌과 나무가 덮쳐 논경작지 40% 이상이 불모지가 되었다. 이후 극심한 기아사태가 일어났다. 북한의 경직된 체제에서 석유 가격 상승, 기상재해, 식량 생산 감소라는 연속적인 삼중 타격을 대처할 여력이 없었다. 결국, 수많은 북한 동포가 끔찍한 기아에 시달려야 했다.

앞으로 식량 사정은 어떨 것인가? 전 세계 경작지는 1961년 이래 고작 13%가 늘었지만, 세계 인구는 두 배 이상 늘었다. 그만큼 안정하게 식량을 공급할 수 있는 여력은 줄어들었다. 현재 만성적인 굶주림에 시달리는 10억 명 이상에게 음식물을 충분히 제공할 수 있어야 한다. 이에 더하여 앞으로 20년 이내에 전 세계적인 인구 증가와 생활 수준 향상으로 식량 수요가 35% 이상 증가할 것으로 전망된다. 이런 도전은 대부분 가난한 나라에서 이루어지므로 기후변화를 고려하지 않는다 해도 달성하기 어려운 일이다. 2014년에 발간된 기후변화에 관한 정부 간 협의체(IPCC) 보고서에서는 기후변화로 밀과 옥수수의 수확량이 감소할 가능성이 크다고 전망했다.

식량이 남아도는 우리나라의 곡물 자급률은 1990년 43%에서 현재 25% 아래로 떨어졌다. 북한은 여전히 식량난에 허덕이고 있으나 곡물 자급률은 75%를 오르락내리락한다. 우리는 부족한 70% 이상을 외국에서 사들일 경제력이 있는 데 반해, 북한은 부족한 25%를 보충할 여력이 없다. 이러니 자급률보다 구매능력이 더 중요해, 식량은 자동차와 휴대전화를 팔아 수입하면 된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그러나 식량이 부족하게 되면 곡물 생산국의 수출 제한 조치와 소비국의 수입 확대 노력으로 곡물 가격이 급등하고 이는 다시 추가 수출 제한과 수입 확대로 이어지는 악순환의 고리가 형성될 가능성이 크다. 식량 확보 경쟁이 격화되고 식량 자원 민족주의가 발발하는 것은 물론, 우리나라와 같은 식량 수입국에서는 물가상승 압력과 정치·사회적 불안으로 이어질 우려가 높다. 이미 2010년 러시아는 가뭄으로 밀 수출을 중단했었다. 이에 따른 밀 가격 상승은 멀리 떨어진 북아프리카와 중동 국가에 식량 폭동과 정치적 위기를 일으켰다.

또한, 이 지구에는 모든 인구가 60일 이상 먹을 만큼 충분한 양의 식량이 없다. 유엔식량농업기구(FAO)는 두 달분의 식량을 비축할 것을 권고하고 있으나, 도시에는 평균적으로 약 1주일 정도 먹을 수 있는 양의 음식만 있다. 우리나라 인구의 약 90%는 도시에 거주한다. 식량 위기 상황이 닥치는 경우를 대비해 낮은 식량 자급률과 함께 과도한 도시화도 함께 고려해야 한다. 안정적인 식량 확보와 함께 도시로 원활한 식량 전달을 위한 체계도 중요하기 때문이다.

기후변화는 독립적인 쟁점이 아니다. 이것은 인류가 직면한 다른 주요한 문제의 맥락에서 인식되어야만 한다. 기후 문제는 인구 증가와 별개의 문제가 아니며 에너지 문제와도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다. 물의 이용 가능성은 결정적으로 기후에 달려 있으며 생물 다양성도 마찬가지이다. 기후 문제의 복잡성은 우리 삶의 모든 면에 적용된다. 이것은 단순히 개별적인 위험으로 발생하는 것이 아니라 위험이 더해질 때마다 피해가 비선형적으로 증폭되는 ‘퍼펙트 스톰(Perfect Storm)’으로 나타난다. 이처럼 기후변화는 오랜 기간에 걸쳐 서서히 다가오지만, 어느 순간 다른 문제들과 합쳐 극단적으로 나타날 수 있는 위험이다. 이 위기는 대증적 차원으로는 해결할 수 없고, 반드시 미리 대비해야 하는 국가 전략적인 복합 해법이 필요하다.

북한처럼 석유 부족과 이로 인한 농업 생산성 저하, 여기에 기후변화로 인한 식량 생산 감소는 국가를 위기로 몰고 갈 수 있다. 그리고 기후변화는 단순히 폭염과 가뭄, 태풍과 홍수, 해수면 상승으로 인한 환경 난민의 문제뿐만이 아니라 석유와 식량, 식수를 확보하기 위한 국제적 또는 지역적 갈등과 전쟁의 원인이 된다. 이에 대한 이해와 대비가 없으면 정치 사회적인 갈등이 더욱 증폭될 수 있고 결과적으로 국가의 운명에까지 영향을 미칠 가능성도 있다. 그러므로 오늘날의 국가 안보는 더는 영토 범위나 무기 기반의 위협에 한정되지 않는다. 기후변화의 직·간접적 영향으로 발생하는 문제는 군사적 위협과 마찬가지로 안보 관점에서 인식해야 한다.

노벨 경제학 수상자 아마르티아 센은 민주주의 체제에서는 흉년이 와도 기근을 겪지 않지만, 권위주의 체제라면 쉽게 기근이 발생한다고 주장했다. 기아가 발생하는 까닭은 식량 부족보다도 식량을 확보하고 통제할 능력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20세기 말에 기아를 겪은 북한과 수단 모두 독재국가라는 공통점을 갖고 있다. 기근으로 수많은 사람이 죽지만 지배자가 죽는 일은 없다. 만일 선거도 없고 야당도 없고 검열받지 않은 공개적 비판도 없다면, 권력을 쥔 자들은 기근을 막지 못한 실패에 대해 정치적 책임을 질 이유가 없다.

민주주의는 이와 달리 기근의 책임을 지도층과 정치 지도자에게 돌린다. 이 때문에 이들은 예상되는 기근을 막기 위해 필사적으로 노력한다. 이는 단지 기근뿐만 아니라 재난 일반에도 확대 적용된다. 따라서 민주주의는 사치가 아니라 생존을 위해 필수불가결한 조건이다.

복합적 위기가 결합하여 북한에서 끔찍한 기아가 발생했고 그 위기는 완전히 해결되지 않아 여전히 북한은 지구 위기의 카나리아 역할을 하고 있다. 북한은 우리로부터 먼 나라가 아니라 같은 자연환경에서 같은 말과 같은 음식으로 살아가는 같은 민족이다. 민주주의의 수준이 재난 대응의 수준을 결정한다. 이것이 기후변화 시대에 최저 자원 빈국에 초과다 인구밀도를 가진 우리나라에서 민주주의가 더욱 절박하게 필요한 이유이다.

나쁜 요인 겹쳐 최악, 퍼펙트 스톰 

1991년 미국 동부 해안에서 약한 태풍이 저기압과 합쳐지면서 강력한 태풍으로 발달해 엄청난 피해를 일으켰다. 이때 참치잡이 배에 탔던 6명의 선원이 목숨을 잃었는데 이 상황을 바탕으로 1997년에 서배스천 융거가 소설 『퍼펙트 스톰(Perfect Storm)』을 썼고 2000년에는 이를 영화로 만들었다. 원래 퍼펙트 스톰은 개별적으로 보면 위력이 크지 않은 태풍 등이 다른 자연현상과 동시에 발생하면서 엄청난 파괴력을 갖게 되는 기상현상을 의미했었다. 2008년 미국발 금융위기를 예견한 누리엘 루비니 뉴욕대 교수가 악재가 한꺼번에 밀려와 손쓸 수 없는 경제 위기를 빗대어 사용하면서 널리 알려졌다. 이후 퍼펙트 스톰은 다양한 분야에서 쓰이고 있는데 안 좋은 요소들이 겹쳐 최악의 상황이 닥친 경우를 비유적으로 표현하는 용어가 됐다.

조천호 국립기상과학원 원장. 연세대 대기과학 박사. 국립기상연구소 지구대기감시센터장, 지구환경시스템연구과장, 기후연구과장 역임. 미국 지구시스템과학원 지구대기감시연구소 탄소순환연구실 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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