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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낙연 총리, 협치와 통합에 모든 걸 걸어라

중앙선데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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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34호 02면

사설

어렵사리 국회 인준을 받은 이낙연 총리가 집무에 들어갔지만 두 어깨가 무겁다. 자신의 총리 임명동의안 처리보다 더욱 힘든 과제들이 첩첩산중으로 쌓여 있기 때문이다. 당장 강경화 외교부 장관 후보자 등의 인사청문회가 발등의 불인데 전망은 안갯속이다. 부풀어 오른 의혹들로 통과 여부를 장담하기 힘들다. 6월 국회선 추가경정예산안과 정부 조직 개편안이 시급한 과제다. 하지만 새 정부 골격에 해당하는 이들 사안에도 야권은 날을 바짝 세우고 있다.

그렇다고 청와대와 더불어민주당이 밀어붙일 경우 정국 냉각은 불 보듯 뻔한 일이다. 파행으로 얼룩진 총리 인준 절차야말로 날아가버린 협치 허니문 정국을 상징한다. 야당은 ‘우리가 당한 만큼 갚아주겠다’며 국회선진화법을 들먹이고 있다. 어차피 여소야대 국회다. 120석의 여당만으론 아무것도 할 수 없는 구조다. 입법부와 행정부가 대화하고 협력하지 않으면 원활한 국정운영을 기대하긴 어렵다. 무거운 짐이 이 총리의 어깨 위에 걸렸다.

협치와 통합 외엔 길이 없다. 매개는 다름 아닌 인사다. 문재인 정부 첫 총리에 오른 이 총리는 노무현 정부의 실패를 되새길 필요가 있다. 노무현 전 대통령도 화합과 통합을 강조했지만 코드 인사와 편 가르기로 자신이 내세운 가치를 스스로 훼손했다. 전철을 밟지 않으려면 탕평 인사와 함께 친문 패권세력이란 인의 장막을 과감하게 걷어내야 한다. 그래야 문재인 정부의 통합이 진정성을 인정받을 수 있다. 사실 인사를 통한 권력 분점은 새 대통령이 선거운동 기간 중 약속한 정책 과제를 실현하는 발판이기도 하다. 사상 최초의 통합 대통령이 되겠다고 다짐한 문재인 대통령은 이 총리를 발탁하며 “새 정부 통합과 화합을 이끌 적임자”라고 소개했다. 이 총리는 이런 기대에 부응해 호남 총리를 넘어 국민통합 총리를 행동으로 보여줘야 한다. 야당과 협치를 실현할 대범한 통합정부를 꿈꾸지 못할 이유가 없다. 진정한 국민통합과 새로운 세상을 엿볼 수 있는 지점이다.

총리 인준안 통과로 내각 구성의 첫 단추는 꿰어졌다. 이 총리는 앞으로 지명될 국무위원 등 주요 인사에 대한 인사 제청권을 곧 행사해야 한다. 과거와 같은 의전 총리를 뛰어넘어 실질적 권한 행사에 나서는 게 마땅하다. 장차관 추천과 거부권은 물론 새로운 인선 기준도 청와대와 적극 협의하는 게 필요하다. 그래야 내각을 효율적으로 통할할 수 있고 이를 바탕으로 국정의 균형추 역할에 나서는 게 가능하다.

그러자면 이 총리의 역할은 과거 총리와 완전히 달라야 한다. 명실상부한 국정의 2인자로서 권한과 책임을 다하는 책임총리가 돼야 한다. 그러려면 그런 역할을 보장해 주는 대통령의 의지가 확고해야 하지만 총리 스스로의 의지와 책임감도 중요하다. 문 대통령이 “일상적인 국정운영은 책임총리를 비롯한 내각이 담당하도록 하겠다”고 여러 차례 약속한 만큼 각 부처의 정책 결정과 집행도 총리와 장관이 주도하는 모습을 보여줘야 한다.

새 정부가 맞은 현실은 어느 때보다 엄혹하다. 대통령 탄핵 과정을 거치며 나라는 촛불과 태극기, 이념과 세대로 갈기갈기 찢겨 있다. 서로 삿대질하는 나라에 미래가 밝을 리 없다. 스위스 국제경영개발연구원(IMD)이 지난주 발표한 한국의 국가 경쟁력은 63개국 중 29위였다. 특히 사회통합 정도는 43위에서 55위로 추락했다. 최순실 사태 등 국정 혼란의 여파다. 국가 경쟁력을 높이는 방법은 간단하다. 잘되는 부분은 유지하고 모자라는 부분은 개선하면 된다. 분열과 대립을 끊어내고 대통합의 나라를 만들어야 한다.

이 총리는 제1야당의 피켓 시위 속에 취임했다는 사실을 무겁게 받아들이고 정부와 국회, 여야 간 협치에 매진해야 한다. 야당 주장과 요구를 경청하고 국정에 반영해야 한다. 그래야 말로만 ‘100% 대한민국’을 외치면서 독선과 불통으로 일관한 배제의 정치를 끝낼 수 있다. 그게 새 정부가 말하는 새 정치고 시대정신에 맞는 정치개혁이다. 때론 대통령에게 쓴소리를 해야 하는 어려운 길이다. 하지만 가야만 하는 길이다. 시대가 바뀌면 총리의 역할도 바뀌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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