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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중앙시평

다원적 민주주의 시대의 풍경-화광동진<和光同塵>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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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7면

승효상건축가·이로재 대표

승효상건축가·이로재 대표

서울역 고가로를 보행전용으로 바꾼 ‘서울로7017’의 개통 전날인 5월 19일자 영국의 ‘가디언’지가 큰 지면을 할애해 이 프로젝트를 실었다. “한국의 전 대통령이 뇌물 혐의로 구속된 어지러운 정세 속에 이 ‘스카이가든’은 새로 선출된 문재인 대통령과 그의 동지인 박원순 시장이 마련한 국면전환의 상징처럼 보인다”가 머리글이었는데, 이 언급이 다소 과장이라고 해도 템스강을 지나는 ‘가든 브리지’가 수년 동안 논란만 무성한 채 착공조차 하지 못한 것과 비교하며 불과 2년 만에 완성한 서울의 실천을 부러워하며 조명한다. 지난 수십 년간 급속도로 팽창하며 도시의 정체성을 잃은 서울이 새 모습을 찾는 신호라 했으며, 헐릴 뻔했던 세운상가의 재생도 아울러 소개했다.

찻길을 재생해 사람길로 바꾼 #‘서울로7017’ 본질은 도시 연결 #동주민센터 재생 프로젝트도 #소통을 통한 공동체 복원이 핵심 #벼와 빛·먼지까지 골고루 나누는 #화광동진의 아름다운 공유 도시

개통 첫날 수만 명의 인파가 몰려들어 북새통을 이룬 서울로7017은 사업 시작 초기에 일부의 극심한 반대와 중앙정부의 비협조로 진통을 겪었다. 그러나 수명이 다한 찻길을 재생해 사람길로 바꾸는 이 일은 속도와 효율에 매몰되었던 과거의 기계시대 극복, 인간 중심과 공동체 회복이라는 발상 자체가 새로운 시대적 가치를 담는 일이어서 성공은 이미 보장되어 있었다. 이 일의 우선 목적은 파편화된 서울의 도시구조를 봉합하고 연결하는 데 있다. 철길과 10차선의 간선도로로 단절된 서울역 주변의 도시 공간들, 도시의 섬처럼 사방이 차량으로 둘러싸인 대형 건물들이 이 고가를 통해 모두 쉽게 연결된다는 것이다. 실제로 서울역에서 이 길에 오르면 10분, 20분 만에 남산과 남대문시장까지 걸어 도달한다. 그러니 도시의 철길을 이용해 선형공원을 만든 뉴욕의 하이라인과 비교하는 것은 본질의 오독이다. 이 프로젝트를 가디언지는 스카이가든이라고 이름했고 건축가 비니마스는 서울수목원이라는 제목으로 지명공모에 응했지만 가든이나 수목원 같은 말은 수식어일 뿐 이 일의 핵심이 아니다. 이 네덜란드 건축가가 당선된 까닭은 지금 실현된 것보다 훨씬 더 많은 지선으로 주변의 시설들을 적극적으로 연결시킨 제안이 주어진 과제에 가장 적합했기 때문이었다. 단순한 조형? 빈약한 수목? 부족한 시설? 그런 지적이 맞다 해도 이는 사용하면서 고치고 다듬으면 되는 부차적 일이다.

가디언지 기자는 내 말을 인용해 지금 서울의 가장 중요한 프로젝트로 동주민센터 재생사업을 소개한다. 아직 잘 알려지지 않았지만 일명 ‘찾동’으로 부르는 이 사업은 서울시의 424개 동사무소를 개조하는 작업이다. 주민등본 같은 기초서식 발급도 인터넷을 통하면 쉽게 되는 지금 행정말단 기관인 동사무소는 거의 잊혀진 기관이다. 이 사업은 서울시가 복지 사각지대를 없애고자 소외가정으로 찾아가는 복지사를 증원함에 따라 이들의 사무공간 확충을 위한 동사무소 개조가 발단이었다. 그러나 이 일에 참여한 건축가들은 기능이 거의 소멸된 동사무소를 공동체 복원을 위한 주민센터로 변환할 수 있는 좋은 기회라 판단한다. 물을 같이 쓴다는 뜻의 동(洞)은 우물이나 개천을 공유하는 마을에서 비롯된 말이니 동네는 나누어 쓰며 모여 살던 공동체였지만 도시인프라나 정보인프라가 개인의 밀실과 직접 연결된 지금은 그저 붙어 사는 집합체일 뿐이다. 더구나 집주소마저 서양식 도로명 주소로 바꾸어 안 그래도 위태하던 전통적 공동체는 거의 소멸되고 만 상태다. 건축가들은 해당 주민들과 수없이 많은 소통을 통해 공동체 복원에 필요한 프로그램과 기능을 찾으며 개념을 재정립하게 된다. 결국 어떤 곳은 도서관 같은 주민센터가 되었고 또는 영화관처럼 바뀌었으며 더러는 공연장으로, 카페로, 놀이터로, 그 지역에 맞춘 시설로 변모하게 된 것이다. 작지만 모두가 성격이 달랐고 독립적이었으니 어쩌면 하나하나가 다 작은 서울이었다. 주민협의체가 생기고 주민들이 적극적으로 찾게 되면서 마침내 동네에 활기가 돌았다. 만약 이들 모두를 연결해 서로의 프로그램을 교환하며 공유한다면 수평적 네트워크의 공동체가 된다. 그야말로 공유도시의 실현이며 이는 수직적 명령체계의 전시대적 도시 모습과 결별하는 것이다. 재작년에 이미 73개소가 그렇게 바뀌었고 그 성취에 고무되어 작년에 202개소가 마쳤으며 올해까지 몇 군데를 제외한 거의 모든 동사무소가 그렇게 바뀐다.

그렇게 서로가 다른 작은 마을과 시설들이 모두 연결되고 나누는 도시, 도시학자 리처드 세넷에 의하면 바로 다원적 민주주의 시대의 도시 풍경이며 서울이 이를 실현하기 시작한 것이다. 얼마 전 이 내용을 들은 어느 한학자가 노자의 도덕경에 나오는 화광동진(和光同塵)을 해석해 주었다. 화를 글자 뜻 그대로 벼를 골고루 나누어 먹는다고 읽어 빛도 나누고 먼지도 같이 한다는 뜻이라며 이는 공유도시·공유사회의 풍경에 대한 서술일 것이라 했다. 생각만 해도 따뜻하고 아름답다.

승효상 건축가·이로재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