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중앙시평

문재인 대통령의 ‘스타 만들기’

중앙일보

입력 2017.06.07 02: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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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1면

최 훈 논설실장

최 훈 논설실장

“반드시 성공한 대통령이 돼 임무를 다한 뒤 찾아뵙겠다. 우리는 다시 실패하지 않을 것이다.” 노무현 전 대통령 8주기 추도식에서 한 문재인 대통령의 다짐이다. 다시는 실패 않겠다는 각오가 의미심장하다. 길다면 길고 짧다면 짧은 5년. 아마도 그는 5년 뒤 묘소를 되찾아 이런 보고를 하고 싶은 듯하다. “진보의 재집권에도 성공했습니다.”

김부겸·김영춘 입각에 눈길
차기 양성 노무현의 데자뷔
‘10년 진보 고속도로’ 모색에
보수도 새 인물 키워나갈 때

그는 김부겸(행자·대구 수성갑), 김영춘(해양수산·부산진갑) 의원을 입각시켰다. 지역주의 극복에 도전해 온 대구·부산의 민주당 대표 주자들이다. 당내 비문(非文) 세력으로 분류됐던 이들이다. 노무현·문재인 등 ‘영남 출신 민주당 후보’가 필승카드로 입증된 흐름에서 경쟁을 통한 차세대 ‘스타 만들기’에 시동을 건 모양새다. “취약한 영남의 세력 확장이 진보엔 가장 중요하다”는 노무현 전략의 데자뷔다.

노 전 대통령은 비주류인 자신을 해양수산부 장관으로 발탁해준 김대중 전 대통령에게 평생 고마움을 간직했다. “장관 경험 8개월이 8년처럼 든든했다”고 만족해했다. 그 자신도 집권 뒤 정동영(통일), 유시민·김근태(보건복지), 정세균(산자), 강금실·천정배(법무), 김두관(행자) 등 차기 주자들을 대거 각료로 등판시켰다. 심지어 한나라당 사람인 김혁규 전 경남지사를 총리에 앉히려다 야권의 거센 반발에 물러났다. 당시 민정수석·비서실장을 지낸 문재인, 최측근 안희정, 외교장관 반기문은 이번 대선에서 가장 유력한 주자로 떠올랐다. 청와대의 수석·비서관·행정관으로 그가 스펙 관리를 해준 19명이 지난해 총선에서 대거 금배지를 달았다. 노무현의 ‘미래자산 육성’은 효험을 발휘했다.

당시 노 대통령이 참모들에게 이런 얘기를 했다. “민주주의의 최고 비극이 뭔지 아는가. 만들어놓은 기성품 중 하나를 고르라는 거야. 다 마음에 안 드는데…. 정작 필요한 이들은 정치를 안 하려 하고. ‘하고재비’들은 불나방처럼 쏟아지는 기라. 어느 구름에 비 들어 있는지 우예 아노. 모든 게 사람에서 시작되고 그래서 사람 키우는 게 제일 중요해. 방송이 키운 스타 말고. 지방의원·군수도 해보고 의원·도지사·장관을 거쳐 실적 갖고 대통령 되는 코스를 밟아야 돼. 하지만 결국엔 지가 알아서 커야지. 대통령 되려는 사람은 목숨, 돈, 양심 모두 걸어야 돼. 돈 걸고 패를 봐야지 패 보고 돈 걸려 하면 안 되지. 그리할 사람들은 쌔고 쌨어. 천지 삐까리라.”

그는 애정이 가장 깊었던 문재인 비서실장에게도 자주 정치를 권했다. 적성이 아니라는 문 실장에게 “아니 욕먹는 거 좋아하는 사람 누가 있소”라고 채근했다. 문 실장이 청와대를 떠나 있을 땐 은밀히 부산·경남의 기반 관리를 부탁하기도 했다. 2007년 임기 말 수석회의에선 갑자기 “우리 문 실장은 우째 TV에 안 좋은 표정이 한 번도 안 나올까요. ‘문재인 후보’ 어떻습니까”라고 농반진반 말을 꺼냈다. 누군가 “강남미용실 40대 주부에 인기투표하면 문 실장이 1등”이라고 맞장구치자 “강남스타일이네”라고 미소 짓기도 했다.

문 대통령이 이어가려는 진보의 ‘스타 만들기’는 그러나 양날의 검이 될 수 있다. 정책 경쟁을 통해 차기 후보군이 풍성해진다면야 마다할 이유가 없을 게다. 민주화 투사가 즐비한 민주당은 원래 스타 만들기엔 토양이 비옥한 터다. 오바마 미 대통령의 클린턴 국무장관, 빌리 브란트 독일 총리의 헬무트 슈미트 장관, 토니 블레어 영국 총리의 고든 브라운 장관 등 진보 정당의 이런 식 ‘후계자 키우기’란 서구에도 드물지 않다.

그러나 국정 관리에 실패한 현직 대통령의 인기가 하락하면 그 원심력은 걷잡을 수가 없다. 노무현 정권 말기 열린우리당을 깨고 대통합민주신당으로 건너가 대선후보를 거머쥔 정동영에게 노 전 대통령은 끝내 배신감을 토로했다. 오바마의 ‘클린턴 후계자 만들기’는 경제가 안 좋아지자 트럼프라는 ‘변종(變種)’의 칼날을 맞고 말았다.

자기 검증에 소홀하거나 스타를 과잉 보호하려다간 정권이 흔들거리기도 한다. 이해찬 전 총리의 3·1절 골프 낙마 이후 노무현 정권은 급격히 기울기 시작했다. 스타 장관이 인기만 챙기려 포퓰리즘으로 치닫거나, 친박·비박처럼 세력 키우기 정쟁으로 날 새우다간 인재가 가장 득실댔다는 조선 선조 때마냥 정권과 나라가 휘청거릴 수 있다.

큰일 난 집안은 보수정당이다. 문재인 집권을 지렛대로 여권이 10년 달릴 ‘진보의 고속도로’를 깔려는 마당에 보수엔 세대교체와 새 인물 육성을 거론하는 이조차 없다. 이회창 후보 때부터 늘상 장·노년 표와 노회한 측근들에 기대오다 보니 “그 나물에 그 밥”을 자초하고 말았다. 이명박·박근혜 정권에선 도대체 누굴 ‘보수의 인물’로 키워왔는가. 임기 중 대권의 ‘대’자만 들려도 치도곤을 안길 거라는 제왕적 통치자 아래 ‘사람의 성장’이 멈춘 게 보수였다. 10년 정권을 참혹하게 절단당한 터에 성찰도, 긴장도, 개혁과 도전도, 후대를 키울 원로도 찾아보기 어렵다. 시시콜콜 진보 정권 트집이나 잡으며 살려는 것인지…. 사람이 전부다.

최 훈 논설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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