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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 속으로] 군 동성애 처벌 조항 없앤 법 개정안 또 발의했지만 …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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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5면

군 동성애 논란 

동성애는 국가를 불문하고 여전히 논란의 대상이다. 전 세계적으로 인권을 앞세운 일부 인권단체와 성 소수자들이 끊임없이 목소리를 내면서 논란의 영역도 확대되고 있다. 군대도 예외는 아니다. ‘군 동성애’는 특히 더 금기시되는 영역이다. 우리 군의 경우 남북 분단, 징병제 등 대한민국의 특수한 전제조건이 작용한다.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군대에 온, 이제 갓 스무 살 넘긴 남성들이 내무반이라는 폐쇄된 공간에 머무는 상황에서 동성애를 상상한다는 것은 그 자체만으로 상당히 불편한 게 사실이다. “군 동성애만큼은 절대 용납할 수 없다”는 정서가 팽배한 이유다.

김종대 의원, 군형법 개정안 발의 #4년 전 진선미 의원도 같은 법안 내 #항의 빗발쳐 상임위 문턱도 못 넘어 #군 동성애 관련된 법적 다툼 #헌재, 세차례 위헌심판제청 다 기각 #집유 선고받은 장교 불법수사 의혹 #반대론자들, 국가안보 침해 우려 #“허용 땐 상급자의 하급자 추행 급증 #입대 기피해 징병제 위협받을 수도”

정의당과 시민단체가 지난달 25일 국회서 기자회견을 갖고 군형법 92조 6항 폐지를 촉구했다. [뉴시스]

정의당과 시민단체가 지난달 25일 국회서 기자회견을 갖고 군형법 92조 6항 폐지를 촉구했다. [뉴시스]

그런데 정의당 김종대 의원이 지난달 24일 ‘항문 성교나 그 밖의 추행을 한 군인은 2년 이하의 징역에 처한다’는 군형법 92조 6항을 삭제하는 군형법 개정안을 발의했다. ‘군 동성애’를 금기시하는 분위기에 도전장을 던진 셈이다. 이 군형법 조항은 명목적으론 동성애라고 명시하고 있지 않지만 사실상 동성 간 성행위를 처벌하는 조항이다. 김 의원은 “군형법 92조 6항은 장소(영내·영외)와 시간(일과 중·일과 후)을 불문하고 군인의 동성애를 범죄행위로 간주하는 차별조항”이라고 주장했다. 단지 군인이라는 이유로 개인의 성적 취향을 함부로 재단해서는 안 된다는 게 그의 논리다.

◆“군인도 성적 결정권은 있다”

최근 군 동성애와 관련된 법적 다툼이 두 차례 있었다. 지난해 6월 군 검찰은 부대 생활관 등지에서 약 1년 동안 11회에 걸쳐 동성 간 성행위를 한 혐의로 사병 2명을 기소했다. 두 사람은 “상호 동의하에 성행위를 했다”고 주장했다.

지난 4월에도 A대위가 군 법정에서 징역 6월, 집행유예 1년을 선고받았다. 점심시간을 이용해 독신자숙소(B.O.Q) 등에서 부사관 등 부하와 여러 차례 성행위를 했다는 이유였다. 두 사건의 처벌 근거는 모두 군형법 92조 6항이었다.

이와 관련, 인천지방법원 이연진 판사는 지난 2월 군형법 92조 6항에 대해 위헌심판제청을 했다. 이 판사는 “성(性) 정체성을 군 면제 사유로 인정하지 않고 군 복무를 강제하면서도 군인 간의 합의된 성행위를 금지하는 것은 성적 자기 결정권 침해”라고 제청 사유를 밝혔다. 또 “동성 간 성교가 군에 끼치는 직접적인 위험이 있다고 보기 어렵다”는 주장도 했다.

군 동성애 문제를 다룬 이스라엘 영화 ‘요시와 자거 (Yossi & Jagger)’의 한 장면. 비극적 사랑을 한 장교 커플의 실화를 바탕으로 했다. [중앙포토]

군 동성애 문제를 다룬 이스라엘 영화 ‘요시와 자거 (Yossi & Jagger)’의 한 장면. 비극적 사랑을 한 장교 커플의 실화를 바탕으로 했다. [중앙포토]

익명을 요구한 성 소수자 단체 활동가는 “우리나라에선 ‘이성 간 행위는 정상, 동성 간 행위는 비정상’이라는 전제가 있기 때문에 군 동성애에 대해 엄격한 처벌을 내린다”며 “성 소수자들은 늘 ‘우리가 범죄자인가’고 되묻는, 자기 검열의 삶을 살고 있다”고 주장했다.

A대위 사건에 대해 불법 수사 의혹까지 불거졌다. 김종대 의원은 “부대 밖에서 벌어진 일을 추적해 성 정체성을 들춰내고 처벌했다”고 말했다. 임태훈 군인권센터 소장은 “사적 공간에서 둘만의 합의로 한 성관계를 알아낸다는 것 자체가 소름끼치는 일”이라고 말했다.

일각에선 법 조항의 모호성을 지적하기도 한다. “동성애자를 처벌한다”는 내용이 없어 ‘죄형법정주의’를 위반한다는 것이다. 이연진 판사는 “법에 명시된 ‘그 밖의 추행’은 지나치게 포괄적”이라고 말했다. 더불어민주당 금태섭 의원도 “현재 조항대로라면 강제적인 동성애의 경우에도 피해자가 강제성을 입증하지 못하면 동시에 처벌받게 돼 피해자도 신고를 꺼리게 된다”고 말했다.

[S BOX] 군 동성애 해외에선


군 동성애는 세계적으로 영국·독일 등 20여 개국 정도에서 허용되고 있다. 징병제 국가 중엔 이스라엘과 대만이 군 동성애를 인정한다.

미국에서 군 동성애 이슈가 부상한 건 1992년이다. 대선에서 민주당 클린턴 후보가 ‘동성애자 입대 허용’을 공약으로 내걸었다. 이전까지 미국은 통일군사재판법 제125조에 의거, 군대에서 동성애 행위를 처벌했을 뿐 아니라 동성애자의 입대 자체를 원천 봉쇄했다. 정작 클린턴도 백악관에 입성한 뒤엔 보수층의 강한 반발에 직면해 타협책을 내놓는다. 그게 유명한 ‘묻지도, 말하지도 않는다(Don’t ask, Don‘t tell)’ 정책이다. 이마저도 2011년 폐기되면서 2015년엔 미국 육군사관학교 웨스트포인트에서 개교 이래 처음으로 이 학교 출신 두 남성이 교내에서 동성 결혼식을 올렸다.

유럽에서도 90년대 중반 군 동성애가 이슈로 등장했다. 영국에서 군인 2명은 93년과 95년 복무 중 동성애자임을 시인한 뒤 강제 전역당하자 영국 정부가 유럽인권협약을 위반했다며 소송을 제기했다. 결국 유럽인권재판소는 99년 “동성애자에 대한 조사는 사생활에 대한 명백한 침해이며 군부대의 작전 효율성과 아무 상관관계가 없다”고 판결했고, 이듬해 영국 국방부는 동성애자 군복무 금지 정책을 폐기했다.

최민우 기자

◆“군 동성애 금지가 약자 보호”

군 동성애 찬성론자들이 인권을 강조하는 것만큼 반대론자 역시 인권을 강조한다.

“위계질서가 강한 군대 문화의 특수성으로 인해 군 동성애를 허용할 경우 상급자가 하급자를 성추행할 가능성이 더 커진다”는 논리다. 임천영 전 국방부 법무관리관(변호사)은 “이 조항이 폐지되면 상급자에게 저항할 수 없는 군 조직 특성상 강제로 이뤄지는 모든 추행이 ‘동성애’라는 이름으로 용인될 수 있다”며 “군인의 ‘성적 지향’이 아닌 ‘동성애 행위’를 규율하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 같은 주장은 군이라는 특수한 조직은 성적 자기결정권보다 국가 안보라는 공익이 우선돼야 한다는 결론으로 이어진다.

헌법재판소는 2002년부터 지난해까지 군형법 92조 6항에 대해 세 차례 제기된 위헌 심판 제청을 모두 기각하고 ‘합헌’ 결정을 내렸다. 헌재는 “동성 간 성행위는 ‘군이라 는 공동사회의 건전한 생활과 군기’라는 보호법익을 침해한다”고 규정했다.

이는 군 동성애를 방치할 경우 국가 안보마저 침해할 수 있다는 전제가 깔려 있다. 김영길 바른군인권연구소 소장은 “24시간 내내 부대 생활을 하는 한국 군 특성상 동성애 행위는 대부분 영내에서 일어나지 않겠는가”라며 “자유로운 군 동성애를 허용하게 되면 부대의 보건과 안전감, 준비태세 유지등에 부정적 영향을 미치게 될 수밖에 없다”고 강조했다.

시민단체 ‘건강한 사회를 위한 국민연대’한효관 대표도 “이상과 현실은 다르다. 이미 군대 내 동성애 문제는 집단난교까지 벌어질 정도로 심각한 상황”이라며 “군대 내 성적문란을 제어할 수 있는 마지노선인 군형법 92조 6항마저 폐지된다면 건전한 일반인의 입대 기피 현상마저 벌어져 궁극적으론 징병제 자체를 위협받게 된다”고 말했다. 임천영 전 법무관리관도 “통계적으로 신규 에이즈 환자의 대부분이 남자 동성애자”라며 “성교육을 강화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실제로 ‘울타리가 되어주는 학부모 모임’등 학부모 단체와 인천기독교총연합회 등 은 지난달 31일 기자회견을 열고 “군대 내에서 동성애가 합법화된다면 군 기강이 와해될 것”이라며 군형법 폐지, 위헌 제청 등이 철회되지 않는다면 “아들 군대 안 보내기 운동을 벌이겠다”고 강조했다.

◆문재인 대통령도 군 동성애 ‘반대’ 입장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 대선 기간 동안 군동성애에 ‘반대’ 입장을 명확히 밝혔다. 지난 4월 25일 대선후보 TV토론회에서다. 당시 자유한국당 홍준표 후보가 더불어민주당 문재인 후보에게 “군 동성애는 국방 전력을 약화 시킨다. (군 동성애 합법화에) 동의하나?”라고 물었고, 문 후보는 “반대한다”고 답했다.

문 대통령은 군형법 92조 6항의 폐지를 권고해 온 국가인권위의 위상을 강화하겠다고 밝혔지만, 청와대는 “인권위 위상 강화와 군 동성애는 별개 사안”이라고 선을 그었다.
군형법 개정안이 국회 문을 두드린 건 이번이 두 번째지만, 국회 본회의에서 통과될 가능성은 크지 않다. 지난 2014년 민주당(현 더불어민주당) 진선미 의원은 같은 내용의 개정안을 발의했지만 상임위 문턱도 넘지 못했다. 당시 이에 반대하는 시민들의 항의전화와 문자폭탄, 낙선운동 등이 빗발쳤다고 한다.

20대 국회에서도 김종대 의원은 공동 발의자 10명을 제대로 채우지 못해 개정안을 발의하기까지는 3개월 넘게 걸렸다. ‘군 동성애’에 대한 반감은 국회에서도 높았다는 방증이다. 개정안 공동발의자 10인은 정의당 김종대·심상정·노회찬·추혜선·윤소하·이정미, 더불어민주당 진선미·권미혁, 무소속 윤종오·김종훈 의원 등이다. 이번 개정안을 받고 서명할지 고민했다는 한 의원은 “자칫하다간 ‘군 동성애’에 찬성하느냐는 비난을 살 수 있다”며 “특히 다음 선거를 생각해야 하는 지역구 의원이 개정안에 찬성하기는 어렵다”고 말했다.

이런 가운데 문재인 정부에서 새로 임명된 인사들 중 눈길을 끄는 이들이 있다. 김이수 헌법재판소장 후보자는 지난해 군형법 위헌심판에서 “강제성을 수반하지 않는 당사자 간의 음란행위는 원칙적으로 형사처벌에서 제외해야 한다”며 ‘위헌’ 의견을 냈다.
조국 청와대 민정수석도 교수 시절 형사법 관련 논문에서 이 조항의 폐지를 주장했다.

추인영 기자 chu.inyou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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