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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트코인 뜨자 … 다단계 ‘유사 코인’ 우후죽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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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1면

디지털 가상화폐인 비트코인ㆍ이더리움 등의 가격이 폭등하자 각종 유사 ‘코인’ 이 우후죽순 생기면서 피해 접수가 늘고 있다.

금융 다단계 피해 접수 늘어 #원코인·일코인·젬코인 등 #금감원, 수사기관에 통보 #상장 안 돼 거래 쉽지 않아 #무조건 고수익 약속 의심을

금융감독원은 “최근 피해 사례가 접수된 ‘원코인’ 관련한 사건에 대해 지난 25일 수사기관에 통보했다”고 5월 31일 밝혔다. 정성웅 금감원 불법금융대응단장은 “원코인을 내세워 가격이 상승할 것이라고 주장하며 자금을 모집한 유사수신 혐의 업체에 대해 2015년 말부터 최근까지 다섯 차례에 걸쳐 수사 의뢰를 했다”고 말했다.

금감원은 지난해 7월에도 금을 싸게 살 수 있는 권리와 코인을 채굴할 수 있는 권리를 패키지로 판매해 투자자 및 회원을 모집한 일코인(일가모스) 세력을 적발해 수사기관에 통보했다. 금감원은 또 최근 피해자 제보를 받고 젬코인ㆍ도시코인 등도 수사기관에 수사 의뢰했다.

서울 강남경찰서는 금감원이 수사 통보한 케이코인 발행업체 킹홀딩스의 회장 등 5명을 사기 혐의로 지난 4월 구속했다. 이들은 케이코인이라는 가상화폐의 전 세계 진출을 위해 홍콩의 네티캐쉬글로벌이라는 회사와 양해각서(MOU)를 체결했다고 광고하고 비트코인처럼 가치가 급등할 것이라고 하며 180억원어치의 코인을 판매했다.

앞서 법원은 지난해 11월에는 중국 국영은행(인민은행)이 발행하는 전자화폐 힉스코인에 투자하면 한 달 뒤 10배로 투자금이 불어난다고 속여 다단계로 300억원어치를 판 주범 2명에 대해 각각 징역 5년의 중형을 선고했다.

금감원에 따르면 신종 금융상품인 가상화폐를 앞세운 투자 사기는 인터넷 사용이 자유롭지 못한 노년층이 주요 타깃이다. 이들 금융 다단계 업자는 “비트코인처럼 대박 날 수 있다”며 비트코인과 관련한 검증된 언론 기사를 앞세워 투자자를 유인한다.

가상화폐의 대명사인 비트코인은 국내 거래 가격이 4월 말 150만원에도 못 미쳤지만 5월 25일엔 489만9000원까지 세 배 넘게 뛰었다. 2012년 초만해도 1비트코인 가격은 10달러 미만에서 거래됐다(당시엔 국내 가상화폐 거래소가 없었다). 직장인들 사이에선 “수년전 150만원 주고 산 100비트코인이 지금은 3억원이 됐다”는 무용담이 떠돈다. 다단계 업자들은 비트코인이 그랬듯 자신들이 미끼로 삼은 ‘코인’ 가격도 급등할 거라고 투자자들에게 홍보했다.

전문가들은 그러나 다단계 방식으로 판매하는 대부분의 가상화폐가 비트코인은 물론이고 이더리움 등과 같은 알트코인(비트코인을 제외한 다른 가상화폐) 등과는 전혀 다른 코인이라고 설명한다.

현재 가장 피해규모가 클 것으로 추정되는 원코인에 대해 국내 3대 가상화폐 거래소인 코인원의 기술 부문 관계자는 “비트코인처럼 블록체인 기반이면 소스 코드(일종이 컴퓨터 언어)가 공개돼야 하는데 (원코인 소스 코드는) 공개된 게 없다”고 말했다. 블록체인은 분산 원장 기술로 거래 참여자 모두가 거래 기록을 공유한다.

그는 또 “원코인이 세계 유일한 중앙집중형 가상화폐라고 하는데 블록체인 자체가 기존의 중앙집중형 관리 방식의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P2P(Peer to Peer, 개인 간 거래)를 기반으로 나온 기술인데 중앙집중형 가상화폐가 어떻게 비트코인과 같을 수 있느냐”고 반문했다.

다단계 판매 방식으로 가상화폐를 판매하기 때문에 마음대로 팔 수 없다는 것도 문제다. 대부분의 유사 코인은 거래소에 상장돼 있지 않다. 원코인은 ‘xCoinx.com’을 통해 판매할 수 있다고 하지만 지난 1월부터 사이트는 임시 중단된 상태다. 김상록 금감원 불법금융대응단 팀장은 “(유사) 코인으로 돈을 벌었다는 사람들 대부분은 코인을 팔아서가 아니라 회원 유치 수당으로 현금을 받은 것”이라며 “코인은 미끼일 뿐이고 회원 유치 다단계 수당을 받는 금융 피라미드에 불과하다”고 말했다.

금감원 추정에 따르면, 연간 유사수신 시장 규모는 10조원을 웃돈다. 그렇지만 유사수신 혐의로 이들을 단속하기는 쉽지 않다. 유사수신은 인허가ㆍ등록ㆍ신고 없이 불특정 다수에게 원금 보장과 고수익을 약속하며 자금을 모집하는 행위다. 이 과정에서 ‘투자’ 행위가 일어나면 유사수신으로 단정하기 애매한 부분이 있다. ‘도나도나’ 사건이 대표적이다. 돼지사육업체인 도나도나 대표 최모(70)씨가 지난 2009~2013년 “어미 돼지 한 마리에 500만~600만원을 투자하면 새끼 20마리를 낳게 해 수익을 낼 수 있다”며 투자자 1만여명으로부터 2400억여원을 가로챈 사건이다. 검찰은 유사수신 혐의로 최씨를 기소했지만 1심과 2심에서 모두 무죄 판결을 받았다.

무죄 판결의 취지는 “실물 거래의 외형을 갖췄다”는 것이다. 곧, 돈을 주고 돼지라는 실물에 투자한 것이기 때문에 단순히 돈만 모집한 유사수신으로 보기 어렵다는 얘기다. 그러나 대법원은 지난해 무죄로 선고한 원심을 파기하고 유죄 취지로 사건을 서울고법에 돌려보냈다. 대법원은 “거래의 실질에 비춰보면 사실상 금전거래에 불과한 만큼 유사수신행위에 해당한다”고 판결했다.

유사 코인을 이용한 금융 다단계도 비슷하다. 돈을 받는 대신 코인을 주기 때문에 유사수신이 아니라 투자로 볼 수 있기 때문이다. 김상록 팀장은 “시연회 때 주변 편의점을 섭외해 미리 결제를 한 뒤 투자자들에게는 마치 코인으로 물건을 구매할 수 있는 것처럼 속인다”며 “혹은 자체 쇼핑몰을 열고 코인으로 결제할 수 있게 해서 유사수신을 규정한 법의 틀을 교묘히 피해간다”고 말했다.

코인을 현금화하기 전까지는 피해자가 피해 사실을 인지하지 못하는 것도 수사를 어렵게 만든다. 김 팀장은 “코인을 사면 스마트폰으로 코인 가격 상승에 따라 투자금이 얼마나 불어났는지를 실시간으로 확인하게 해 준다”며 “가상계좌에 찍힌 돈이 매일 불어나니 피해자들은 실제 자신의 투자금도 불어났을 것으로 믿는다”고 말했다. 그는 “금융 다단계 특성상 신규 회원 유입이 이어지고 기존 회원들이 투자금을 인출하지 않는 이상 피해자 스스로 자신을 피해자라고 인식하지 않는다”고 덧붙였다. 피해 규모가 작으니 인력이 부족한 수사 기관 입장에서는 수사 우선 순위에서 뒤로 밀릴 수밖에 없다.

금융당국이 유사수신 행위와 관련한 조사권이 없는 것도 문제다. 금감원은 유사수신 혐의 업체에 대한 조사ㆍ감독 권한이 없다. 피해자 신고와 제보에 의존한 조사를 한 뒤 이를 수사기관에 통보할 뿐이다. 또 유사수신업체가 금감원의 현장 조사를 피하거나 거부할 경우 이를 강제할 방법이 없다. 금감원은 이에 따라 금감원이 보험사기를 조사할 수 있는 것처럼 직접 유사수신 의심 행위를 조사할 수 있도록 하는 유사수신 규제법 개정을 추진하고 있다.

김진형 코인원 마케터는 “가상화폐에 투자하겠다면 폴로닉스(세계 최대 가상화폐 거래소·poloniex.com) 등에 상장된 코인인지를 확인하거나 코인힐스(가상화폐 정보 사이트·coinhills.com) 등에서 현재 거래되고 있는 코인인지를 확인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가상화폐 가격이 하루에도 몇십 %씩 급등하기도 하지만 몇십 %씩 급락할 수도 있다”며 “가상화폐 가격이 오르기만 한다고 무조건 대박을 약속하면 의심해 봐야 한다”고 덧붙였다. 실제로 지난 25일 489만9000원까지 갔던 비트코인 가격은 27일 249만500원으로 이틀 새 반토막나기도 했다.

고란 기자 neora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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