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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더우먼’이 이스라엘 여전사라고?…주연 갤 가돗을 둘러싼 논란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DC 자존심 되살릴 ‘원더우먼’ 개봉 앞두고 악재 터져

지난해 3월, ‘배트맨 vs 슈퍼맨: 저스티스의 시작’(잭 스나이더 감독)이 개봉했을 때다.

DC의 자존심 건 '원더우먼' 주연 배우 갤 가돗 #2014년 이스라엘 가자지구 폭격 당시 이스라엘 옹호 #레바논서 '원더우먼 보이콧 운동' 일어

DC코믹스(배트맨ㆍ슈퍼맨ㆍ원더우먼 등 수퍼히어로 캐릭터를 탄생시킨 미국 출판사로 현재 할리우드 거대 제작사 워너브러더스의 자회사)의 가장 대표적인 두 영웅이 맞붙었는데 결과는 기대에 미치지 못했다.

영화 배트맨 대 슈퍼맨:저스티스의 시작.

영화 배트맨 대 슈퍼맨:저스티스의 시작.

물론 흥행엔 성공했다. 그러나 평단에선 혹평이 잇따랐고 DC의 오랜 팬들도 실망감을 감추지 못했다. DC와 더불어 수퍼히어로물의 양대 산맥이라 할 수 있는 마블 스튜디오(마블 코믹스 기반의 영화 제작사로 월트 디즈니의 자회사)가 일군 경이로운 성공과 비교돼 더욱 그랬다. ‘아이언맨’과 ‘어벤져스’ 시리즈의 어마어마한 흥행을 생각하면 DC의 세계는 위태로워보였다. 배트맨과 슈퍼맨은 아이언맨과 스파이더맨, 헐크, 토르 등 마블의 히어로들에게 밀리는 듯했다.

그럼에도 팬들은 ‘배트맨 vs 슈퍼맨’에서 희망을 발견했다. ‘DC유니버스(DC코믹스 만화 스토리가 공유하는 세계관)’의 시작이라 할 수 있는 이 영화에서 원더우먼(갤 가돗)이란 보물을 건졌기 때문이다.

갤 가돗이 출연한 영화 '원더우먼' 스틸 이미지.

갤 가돗이 출연한 영화 '원더우먼' 스틸 이미지.

갤 가돗은 짧은 분량에도 압도적인 존재감을 뽐냈고, 이 배우에 대한 기대감은 곧 단독 주연 영화 ‘원더우먼’(5월 31일 개봉, 패티 젠킨스 감독)에 대한 기대로 이어졌다.

게다가 제작 단계부터 “DC가 절치부심해 만든 수작”이란 소문이 여기저기서 흘러나왔다. 여성 감독이 연출하고 여성 배우가 주연을 맡은 첫 수퍼히어로물이란 점에서도 높은 점수를 받았다.

그러나 개봉을 얼마 남겨두지 않고 악재가 터졌다.

이스라엘 출신의 할리우드 배우 갤 가돗이 시오니스트(유대민족주의자)라며 레바논에서 ‘원더우먼 보이콧 운동’이 일어난 것이다.

미국 연예 전문 매체 할리우드리포터는 30일(현지시간) “레바논에서 ‘원더우먼’ 보이콧 운동이 확산하고 있다”며 “아직 상영 금지 요청이 접수한 것은 아니지만, 반감은 무척 심하다”고 보도했다.

대체 왜일까.

갤 가돗이 누구기에

갤 가돗은 이스라엘 출신의 배우다. 19세 때 ‘미스 이스라엘’에 선발된 후 학업과 모델 일을 병행했다.
이후 가돗은 그의 배우 인생에서 무척 중요한 ‘스펙’을 쌓게 된다. 이스라엘에서 여군에 입대해 2년간 군 복무를 한 것이다. (이스라엘에선 여성도 군에 의무적으로 입대한다.)

이 경력은, 가돗의 배우 생활에 날개를 달아줬다. 액션 연기에 능할 수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블록버스터 ‘분노의 질주’ 시리즈 등에서 활약하며 그는 뛰어난 외모와 화려한 액션 감각으로 점차 입지를 넓혀갔다.

군 복무 경험 자체는 좋았다. 문제는 엉뚱한 곳에서 터졌다. 그가 2014년 페이스북에 올린 글이었다. 당시 이스라엘군은 가자지구에 폭격을 가해 수백명의 사상자를 냈고, 이들 중 상당수는 어린이로 밝혀졌다. 이스라엘에 국제사회의 비난이 쏟아지는 상황에서, 가돗은 이스라엘군을 옹호하는 듯한 포스팅을 남겨 ‘시오니스트’란 비난에 시달렸다.

2014년 당시 논란이 된 갤 가돗의 페이스북 글.

2014년 당시 논란이 된 갤 가돗의 페이스북 글.

나의 사랑과 기도를 이스라엘에 보냅니다. 특히 어린이와 여성 뒤에 숨어 끔찍한 테러를 저지르는 하마스(이스라엘에 저항중인 팔레스타인 무장단체)에 맞서 조국을 지키려 위험을 무릅쓰는 소년과 소녀들을 위해 기도합니다. 우리는 극복할 수 있습니다. 샬롬! #우리가옳다 #가자를하마스로부터자유롭게 #테러를멈춰라 #공존 #이스라엘군에사랑을

레바논서 극렬 반대… 여타 중동 국가에선 개봉

할리우드리포터는 “당시 일었던 논란이 다시 레바논에서 문제가 되고 있는 것은, 레바논이 현재 공식적으로 이스라엘과 전쟁 중이기 때문”이라며 “레바논은 2006년 이스라엘과의 전쟁으로 큰 피해를 보는 등 여러 차례 부딪쳤고, 레바논 시민들에겐 이스라엘로 여행하거나 이스라엘인과 접촉하는 것이 불법”이라고 보도했다.

또 “2015년 ‘미스 레바논’으로 뽑힌 샐리 그레이지가 ‘미스 이스라엘’ 마탈론과 셀카를 찍었단 이유로 혹독한 비난에 시달릴 정도로 두 국가간 사이가 나쁘다”고 덧붙였다.

이 매체는 또 “레바논은 중동 지역 내 타국가에 비해 비교적 표현의 자유가 지켜지는 나라지만, 이스라엘 문제와 종교, 동성애 문제만큼은 검열이 심하다”고 보도했다. ‘원더우먼’ 상영 금지 운동이 격렬해지고 있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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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레바논 내에서도 보이콧에 대한 찬반 논쟁이 벌어지고 있다. 레바논의 한 유명 블로거는 “70년 넘게 사랑받은 수퍼히어로일 뿐이다. 주연 배우가 이스라엘 사람이라고 해서 이 영화가 그의 ‘국가’를 묘사하는 것은 아니지 않느냐”고 반문했다.

이런 논란에도 불구, 이 작품은 오는 6월 1일 아랍 에미리트 연합ㆍ카타르ㆍ쿠웨이트에서 개봉한다. 6월 말에는 오만과 바레인 등 여타 중동 국가에서도 속속 선보일 예정이다.

‘원더우먼’을 만든 제작사 워너브러더스는 어떤 입장도 내놓지 않고 있다.
임주리 기자 ohmaju@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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