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506일만에 북한 접촉 허용,"향후 교류는 리턴 아닌 리셋"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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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일부가 대북 민간 지원단체인 우리민족서로돕기운동(우리민족)이 제출한 북한 주민 접촉 신청을 26일 승인했다.
정부가 민간단체의 북한 주민 접촉을 허용한 건 북한이 4차 핵실험을 한 지난해 1월 6일 이후 506일 만이다.
이유진 통일부 부대변인은 "정부는 북한의 도발에 단호하게 대응하면서도 인도지원 등 민간교류 분야는 유연하게 검토해 나간다는 입장"이라며 "우리민족의 접경지역 말라리아 방역을 협의하기 위한 접촉 신청을 승인했다"고 설명했다.
문재인 정부 출범이후에만 북한이 14일과 21일 두차례 미사일을 발사했다. 이를 규탄하면서도 민간 접촉을 허용 방침을 정한걸 두고는 새 정부의 대북정책 변화가 투영됐다는 분석이 나온다.
통일부는 21년째 대북 지원 사업을 진행하고 있는 우리민족 외에도 민간단체 10여곳이 낸 접촉 신청을 승인할지 검토중이다.  이에 따라 남북 민간 차원의 접촉이 늘어날 전망이다.

우리민족은 통일부 승인 직후 북한 민족화해협의회에 살충제, 진단 키트, 수동 분무기 등 말라리아 방역물자를 지원하겠다는 뜻을 팩스로 전했다. 강영식 우리민족 사무총장은 "말라리아 방역은 5월말부터 이뤄져야 한다"며 "시간이 없는 만큼 팩스로 협의를 하고, 조속히 물자를 지원할 수 있도록 노력할 것"이라고 말했다.

한편, 통일부는 이날 '문재인 정부 인수위'격인 국정기획자문위(국정기획위)에 남북관계 개선 방안 등을 담은 업무보고를 했다. 국정기획위 박광온 대변인은 “한반도 평화와 새로운 남북관계를 우리가 주도하기 위해 통일부의 적극적인 역할이 필요하다는데 (기획위와 통일부가)동의했다"며 "새 정부 정책과제들을 구체적, 체계적 방향에서 추진 계획을 검토하기로 했다"고 설명했다.
다른 인수위 관계자는 "대북정책은 북한이라는 상대가 있어 구체적으로 밝히기 어렵다"면서도 "핵 위협이 없는 항구적으로 평화로운 한반도를 만들기 위한 통일부의 역할에 대한 논의가 있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핵과 도발에 대해선 관용을 배풀지 않으면서도 남북관계를 개선하는 방안을 모색했다”고 덧붙였다.
통일부는 '대북 지원이나 남북교류가 국제사회의 대북 제재의 틀을 훼손하지 않으면서도 남북관계 복원을 위해 노력하겠다'는 뜻을 밝혔다고 한다. 통일부 관계자는 "대북 퍼주기 논란이 일었던 김대중ㆍ노무현 정부의 햇볕정책을 답습하는 ‘리턴’(return)이 아니라 점진적 통일을 위해 가장 효율적 방식을 찾는 ‘리셋’(reset) 작업을 하겠다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통일부는 대화재개와 함께 남북기본협정 체결도 추진해 나가기로 했다.
남북기본협정은 문재인 대통령의 핵심 공약으로, 7ㆍ4공동성명과, 남북기본합의서, 6ㆍ15공동선언, 10ㆍ4정상선언 등 기존 합의들을 정리해 남북이 합의하자는 내용이다. 국회 동의를 거쳐 구속력을 갖도록 해 정부 교체 때마다 남북관계가 출렁이는 걸 막겠다는 취지다.

통일부는 일방적 지원이 아닌 남북의 상생을 위해 남북한 시장을 하나로 통합하고, 남북 경제교류를 중국ㆍ러시아로 확대해 일자리를 창출하는 등 한반도 신경제 지도 구상도 실천해 나가기로 했다.
이수훈 국정기획위 외교안보분과 위원장은 “현재 경제위기를 돌파하기 위해선 북한으로 가는 수 밖에 없다”며 “한반도 신경제지도구상은 (현 정부의 역점인)일자리와도 관련이 있다”고 말했다.
정용수ㆍ김록환 기자 nkys@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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