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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에서] 문자폭탄에 … 총리 검증의원이 “제 아들 간질로 군면제” 해명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6면

25일 이낙연 국무총리 후보자 인사청문회에서 자유한국당 경대수 의원이 자기 아들의 병명이 ‘간질’이라고 공개하는 일이 벌어졌다.

경 의원이 이 후보 아들 병역 따지자 #“네 아들도 밝혀라” 수천 건 비난 글 #결국 공개 안해도 될 병명까지 밝혀 #질문자가 검증받는 ‘거꾸로 청문회’

전날 청문회에서 경 의원은 이 후보자가 아들 병역 면제와 관련한 자료를 제대로 제출하지 않았다고 추궁했는데, 그 후 경 의원 휴대전화에 “당신 아들도 군대 안 갔으면서 왜 남 보고 뭐라고 하느냐”는 내용의 항의 문자가 쏟아졌다. 게다가 경 의원이 아들의 병역면제 사유를 밝히지 않았다는 사실까지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등을 통해 급속히 퍼졌다.

국무총리 임명 동의를 위한 인사청문회 이틀째인 25일 오후 이낙연 후보자(왼쪽)가 자유한국당 경대수 의원과 함께 회의장을 나서고 있다. 전날 청문회에서 이 후보자 아들의 병역 문제를 제기했다가 ‘문자 폭탄’을 받았던 경 의원은 이날 신상 발언을 통해 자신의 아들 병역 면제 사유가 “간질 때문”이라고 밝혔다. [박종근 기자]

국무총리 임명 동의를 위한 인사청문회 이틀째인 25일 오후 이낙연 후보자(왼쪽)가 자유한국당 경대수 의원과 함께 회의장을 나서고 있다. 전날 청문회에서 이 후보자 아들의 병역 문제를 제기했다가 ‘문자 폭탄’을 받았던 경 의원은 이날 신상 발언을 통해 자신의 아들 병역 면제 사유가 “간질 때문”이라고 밝혔다. [박종근 기자]

이에 견디다 못한 경 의원은 이날 신상발언을 신청해 “제 아들의 병역면제는 뇌파의 병변으로 인한 경련성 질환, 흔히 말하는 간질 때문”이라며 “두 번의 신체검사를 받았고 객관적인 진료기록을 통해 군 면제 판정을 받았다”고 밝혔다.

경 의원은 “아들의 질환은 8살 때 발병했는데 그로부터 10여 년 동안 뇌파 검사를 포함한 진료를 반복해서 받아 왔고 지금도 재발 위험에 마음을 졸이고 있다”며 “이번 일로 충격을 받은 아들이 다시 또 재발 증상이 나타나지 않을까 아버지로서 참 마음이 무겁다”고 말했다.

경 의원은 “간질에 대한 사회적 인식이 통상의 질병과 다르기 때문에 ‘특정질병으로 병역면제를 받은 경우엔 면제사유를 비공개할 수 있다’는 법 규정에 따라 관보에 자세한 질병명을 밝히지 않았다”고 했다.

이낙연 국무총리 후보자에 대한 인사청문회 이틀째인 25일 야당 청문위원들의 휴대전화로 발송된 ‘문자 폭탄’. 청문위원마다 수백에서 수천 통에 이르는 항의·욕설 문자를 받았다고 한다. 박명재 위원은 “밤새 문자 폭탄에 잠을 못 잤다. 욕을 하도 먹어 배가 부르다”고 했고 경대수 위원은 아들의 병명을 공개하는 ‘거꾸로 검증’을 당했다. [박종근 기자]

이낙연 국무총리 후보자에 대한 인사청문회 이틀째인 25일 야당 청문위원들의 휴대전화로 발송된 ‘문자 폭탄’. 청문위원마다 수백에서 수천 통에 이르는 항의·욕설 문자를 받았다고 한다. 박명재 위원은 “밤새 문자 폭탄에 잠을 못 잤다. 욕을 하도 먹어 배가 부르다”고 했고 경대수 위원은 아들의 병명을 공개하는 ‘거꾸로 검증’을 당했다. [박종근 기자]

‘문자 폭탄’을 받은 청문위원은 경 의원뿐만이 아니다. 야당 청문위원 대다수가 수백 통에서 수천 통의 항의 문자를 받았다. 지난해 연말 탄핵정국 때 ‘문자 폭탄’으로 곤욕을 치렀던 자유한국당의 한 의원은 “애써 무시하려고 해도 막상 수백 통씩 욕하는 문자를 만나게 되면 사람인 이상 아무래도 심리적으로 위축될 수밖에 없다”고 털어놓았다.

문재인 정부에서 ‘문자 폭탄’은 상시적 현상이 될 조짐이 나타나고 있다. 여권에선 이를 두둔하는 목소리도 나온다.

더불어민주당 박광온 의원은 페이스북에 “깨어 있는 시민들의 직접적인 참여를 테러·폭탄으로 표현하고 정치쟁점화하는 것은 국민과 민주주의에 대한 모독”이라며 “국민을 혼내고 가르치려는 ‘갑질’적인 태도로는 소통이 불가능한 시대”라고 주장했다.

김어준 딴지일보 총수도 라디오에 출연해 문자폭탄에 대해 “자제할 필요가 없다고 본다. 정치에 대한 직접적인 참여가 자연스러워졌다”고 말했다. 문 대통령 스스로도 민주당 대선 경선 과정에서 불거진 ‘문자 폭탄’ 논란에 대해 “경쟁을 더 흥미롭게 만들어 주는 양념 같은 것”이라고 말한 일이 있다.

물론 야당 측 청문위원들의 공세를 못 마땅하게 생각한 유권자가 해당 의원에게 문자로 항의를 표시하는 건 이해할 수 있는 일이다. 해당 의원의 휴대전화 번호를 어떻게 구했는지는 알 수 없지만 말이다.

그러나 문자로 야당 청문위원들의 ‘허물’을 공격한다고 해서 총리 후보자의 도덕성이 자동적으로 검증되는 건 아니다.

무더기 문자의 목표가 비판자들의 입을 닫게 만드는 것이라면 확실히 효과적이다. 하지만 정부에 대해 쓴소리를 할 때마다 휴대전화 번호를 바꿔야 하는 상황이 온다면 그걸 ‘문자 민주주의’로 봐야 할지는 논란의 여지가 많을 것 같다.

국민을 대신해 공직 후보자를 검증해야 할 의원들이 ‘문자 폭탄’에 시달리며 오히려 검증대에 서야 하는 ‘거꾸로 가는 청문회’를 지켜본 소감이다.

김정하 기자 wormhol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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