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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억년 살아남은 식물 가져왔다, 지구를 꽃꽂이 하는 이 남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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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7면

호텔의 첫인상은 흔히 문을 열고 들어와 맨 처음 보는 로비 분위기로 좌우된다. 특급 호텔들이 화려한 조형물과 샹들리에 등으로 로비 인테리어를 꾸미는 이유다.

‘플랜트 헌터’니시하타 세이준 #재개장한 ‘비스타 워커힐 서울’ #고생대 고사리과 나무 ‘딕소니아’ #800년 된 올리브 등으로 꾸며

지난 4월 재개장한 서울 광진구 광장동 비스타 워커힐 서울(구 W서울 워커힐 호텔) 로비에선 꽤 낯선 풍경이 펼쳐진다. 신비한 풍채의 올리브 고목(枯木)이 제일 처음 고객을 맞는다. 지중해 시칠리아 섬에서 옮겨왔다. 21세기 영상 미디어 아트를 배경으로 11세기 말 싹을 틔운 수령 800살 올리브 나무가 서 있는 이색 조합은 ‘자연·사람·미래가 공존하는 라이프스타일 공간’을 지향하는 비스타 워커힐 서울의 상징이다.

4층 스카이야드 야외 정원에서도 독특한 식물을 볼 수 있다. 꼬마 당근을 거꾸로 꽂은 듯한 ‘딕소니아’다. 고생대 고사리과 나무로 약 4억년 전부터 생존해 온 가장 오래된 육상 서식 식물이다. 호주와 뉴질랜드에서 옮겨 왔다.

플랜트 헌터’ 니시하타 세이준의 오른쪽으로 꼬마 당근을 꽂아놓은 듯 보이는 나무가 4억년 전부터 서식했다는 고사리과 식물 ‘딕소니아’다. [신인섭 기자]

플랜트 헌터’ 니시하타 세이준의 오른쪽으로 꼬마 당근을 꽂아놓은 듯 보이는 나무가 4억년 전부터 서식했다는 고사리과 식물 ‘딕소니아’다. [신인섭 기자]

한국에선 쉽게 볼 수 없는 식물들을 이곳에 옮겨심은 주인공은 일본인 ‘플랜트 헌터(Plant Hunter)’ 니시하타 세이준(西畠清順·37)이다. 플랜트 헌터란 전 세계 희귀식물을 탐험·채집·보급하는 전문가로 17세기 유럽 왕족과 귀족의 의뢰로 처음 등장했다. “테마에 맞는 식물로 공간을 꾸미거나, 전 세계 희귀식물을 찾아내 식물 자체가 주인공이 되는 이벤트를 기획·실행하는 게 제 일이죠.”

니시하타는 150년 된 일본 조경업체 하나우의 5대 사장이다. 그가 유명해진 건 2012년 3월 22일 도쿄 긴자의 한 쇼핑가에서 진행된 ‘사쿠라 프로젝트’ 때문이다. 일본 전 지역에서 자생하는 벚꽃나무 47종을 옮겨와 한날한시에 개화시킨 행사였다. 기후환경이 다른 지역에서 자란 여러 종류의 벚꽃을 동시에 개화시키려면 기온·습도조절 등 고도의 전문적인 손길이 필요하다. 니시하타는 “당시 동일본 지진으로 상처받은 사람들에게 ‘다시 희망의 꽃을 피울 수 있다’는 메시지를 주고 싶었다”고 말했다.

니시하타는 현재 다수의 국내외 기업·단체·아티스트와 함께 연간 50건 이상의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다.

전 세계 희귀식물을 찾아 그가 이동한 거리는 지구 둘레 세 바퀴 반. 젊은 층의 주목을 받으며 2015년에는 패션 브랜드 유니클로 광고에도 출연했다. 일본 NHK 다큐멘터리에선 니시하타를 ‘지구를 꽃꽂이 하는’ 인물로 소개한 바 있다.

그의 일에 곱지않은 시선도 있다. 식물은 원래 자리에 있어야 자연스럽다고 생각하는 이들은 낯선 땅으로 옮겨지는 과정에서 많은 식물이 적응 못하고 죽어간다. 그는 이 질문에 “알고 보면 우리가 일상에서 쉽게 만나는 식물·과일의 90%가 외래종”이라며 “식물은 씨앗을 멀리까지 보내 싹 틔우려는 본능을 갖고 있고 플랜트 헌터는 이를 돕는 역할”이라고 답했다. 이어 “우리 세대는 식물로부터 감동과 힐링, 위안을 더 찾을 것”이라며 플랜트 헌터의 비전과 책임감을 강조했다.

이번에 한국을 처음 찾았다는 그는 “한국 자생 식물에 관심이 생겼다”면서도 “조경업체 시장에 가보니 비슷한 식물들만 잔뜩 있더라”는 쓴소리도 잊지 않았다.

서정민 기자 meantre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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